코로나 백수를 혼자 두면 별 걸 다 한다
"니들이 갈 데가 어딨어"
라는 관리자들의 예상을 보란 듯이 깨고, 직원들은 지금이야말로 기다린 때가 왔다는 생각으로 탈출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말하지 않았지만 이유는 다양했을 것이다.
회사의 가세가 기울어서, 사람 귀한 줄 모르고 막대하는 작태가 더러워서, 앞으로 떠맡게 될 많은 양의 일을 감당할 수 없어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자르는 회사에 대해 믿음이 사라져서, 일상처럼 반복되는 가스라이팅을 벗어나기 위해.
사내 메신저는 불이 난 것처럼 알림이 끊이지 않았고, 사무실은 키보드를 난타하는 타자 소리로 가득했다. 단체 메신저 방은 얼른 나가고 싶다는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퇴사 파티를 벌일 장소를 물색하느라 회사 근처의 식당 후기 링크가 줄줄이 올라오기도 했다. 퇴사할 때 받아낼 서류를 잊지 말라며 서로에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코로나를 탓하며 여행업이니만큼 회사도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동정하기에는 한순간에 무너지는 회사의 꼬락서니가 참으로 가관이었다.
대표는 직원들의 출근을 맞이하던 사무실의 입구 자리에서 6인실 골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언제 자리를 옮겼는지도 모르게, 직원들이 나가 텅 빈 6인실 골방을 어느 순간 그 혼자 쓰고 있었다.
떠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을 낯짝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놀랍게도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회피형인 기질이 또 발동된 것인지. 어쨌든 아침마다 그 얼굴에 대고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만큼은 좋았다.
관리자들은 정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남는 사람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가 회사를 나가겠다고 자원했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이는 관리자들이 예측했던 숫자의 두 배가 나가겠다고 한 셈이기도 했다.)
팀원이 한 명도 남지 않고 통째로 날아가는 팀마저 있었다(놀랍게도 하나가 아니었다). 공중분해된 팀을 채워넣기 위해 다른 팀에서 인력을 빼와야 했지만, 그나마 한 손에 꼽을 정도의 인력이 남은 다른 팀도 인수인계 받을 사람이 부족해 허덕이고 있었다.
남는 인원으로 팀 구성이 끝나고, 인수인계 스케줄이 나왔다.
인수인계를 받을 사람은 적은데, 인수인계를 하고 나갈 사람은 많아서 인수인계가 먼저 잡힌 사람은 먼저 퇴사하고, 늦게 잡힌 사람은 늦게 퇴사하는 우스꽝스러운 꼴이 펼쳐졌다.
"제 업무도 받으셨는데, 저 분 업무도 인수인계 받으시는 거에요? 업무 배정 어떤 거 받으셨길래?"
"모르겠어요. 일단 들으라고 해서 듣고는 있는데...."
근속을 선택한 직원들은 일단 급한대로 엄청난 양의 인수인계를 받아내야 했다. 그전에 각각 나뉘어 맡았던 업무를 한 사람이 서너 개씩 떠안는 것을 보며, 떠나는 직원들은 역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준비없이 퇴사하지 마세요."
전업 유튜버나 블로거들, 아니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플랫폼 '브런치'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홧김에 퇴사를 결정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깊이 동감하는 바이다.
아니, 내가 그걸 모르고 나왔겠느냐고!
우리의 퇴사를 어린 치기라던가, 짧은 시야라던가, 다수에 휩쓸린 선택이라고 치부하지 말기를 바란다.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누가 우리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음 권고사직 명단에 꼭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기를 바라며,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1차 정리 때, 우리는 2차 정리를 직감하고 있었고,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본사에서 대안책이라고 내놓은 새 업무(이것은 기존에 하던 것보다 100배 이상의 양이었으며, 인원은 1차 정리로 인해 줄어든 상태였다)를 힘겹게 쳐내며 이 날만을 이를 갈고 고대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답지 않은 취급을 '존버는 승리한다'는 말 한 마디로 근성을 시험하는 것처럼 버틸 만큼 어리석지도, 자존감이 없지도 않았다.
놀랍게도 우리들의 상사는 자신들의 직원들이 어리석고, 자존감이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