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수를 혼자 두면 별 걸 다 한다
때는 2020년 6월, 국내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50명 안팎을 웃돌던 시기.
넘치는 체력과 활동성을 코로나 때문에 묶어두어야 했던 나는 마스크를 쓰고 동네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찾았다.
앞서 말했듯, 쇼핑몰 문화센터에서 베이킹, 피아노, 영어회화 수업을 듣고, 카페에 가서 실업 급여 수급 방법을 알아보거나 백수 기간을 잘 보낼 계획표를 만들기도 하고, 평소에 버스를 타고 다니던 길을 두 발로 하염없이 걸으며 산책을 하기도 했다(신나게 출발을 했다가 너무 멀리 가버린 탓에 돌아오는 길이 힘겨웠던 적도 있다).
그리고 오랜 숙원 사업, 내 방 리뉴얼이 시작되었다.
10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내 방은 하얀 천장을 제외하고는 톤다운된 하늘빛 실크 벽지로 도배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미 엄마가 정해버린 것이라 바꿀 수도 없었고,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대학생 때는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넓은 내 방은 늘 공실이었고, 졸업 후에야 내 방은 주인을 온전히 되찾았다. 내게 있어 내 방은 '나만의 공간'이기는 했으나, 딱히 애정이 담긴 말은 아니었고, 그냥 말 그대로 나의 모든 물건이 있는 내 공간일 뿐이었다.
백수가 되어 가장 많이 생활할 내 방이니만큼, 이전과는 다른 리뉴얼이 필요했다. 퇴사를 하고 새 시작을 하는 첫 출발로도 아주 적절한 계획이었다.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이처럼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새 단장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연초에 시작한 PT와 바디프로필 도전 덕분에 나는 체력에 꽤 자신이 있었다. (퇴사는 내가 바디프로필을 찍은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이루어졌다.)
주말 아침마다 아침에 눈을 뜨고도 한참을 침대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던 평생 습관이 온데간데 사라지고, 개운하게 일어나 가벼운 몸으로 아침을 맞았다. 연초부터 운동을 시작한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아침 잠이 많은 데다가 강제성이 없으면 당최 침대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던 내가 백수가 되고 나날이 늘어질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연초부터 운동으로 빡세게 갈고 닦은 체력 덕분이었다.
문제는 말이 페인트칠이지, 본격적인 페인트칠 시작도 전부터 해야할 일이 장난 아니게 많았다.
첫 번째, 실패 없는 색깔 선택을 위해 어떤 페인트 색을 사용할지 고민했다. 내 방을 광각모드 카메라로 촬영한 뒤, 포토샵으로 벽지 색깔을 다양하게 바꾸면서, 어떤 색깔이 어울릴지 시안을 만들어 보았다.
일단 오랜 로망 '하얀 방'을 갖고 싶긴 했지만, 한쪽 면만은 포인트를 주어 다른 색깔로 칠할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청록색을 고민했으나, 자칫하면 칙칙해보일 수 있었기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거친 끝에 포인트 컬러는 '프린세스 블루'로 결정했다.
또한, 가구를 새로 배치할 작정이라 방 크기부터 모든 가구의 사이즈를 재서, 이 또한 포토샵을 요리조리 방 배치도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창문, 방문, 콘센트 위치와 책, 굿즈 등이 햇빛에 색이 바래지 않도록 배치하는 것까지 일일이 고려했더니 이 작업도 꽤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페인트 도색하는 방법 알아두기.
페인트칠에 필요한 도구, 내 방 크기에 필요한 페인트의 양, 페인트칠 방법까지 정말 열심히 알아보았다. 대부분의 정보는 펜톤 페인트사 유튜브를 통해 배웠다. 눈물 자국이 남지 않게 페인트를 칠하는 방법, 페인트칠에 사용되는 도구와 그 목적, 사이즈에 맞는 페인트 양 정하는 방법 등 알찬 정보들이 많았다.
덕분에 실크 벽지에 페인트칠을 하기 전에는 젯소로 밑작업을 해주어야 한다던가, 마스킹 테이프로 콘센트, 문틀, 창문틀을 잘 감싸는 방법 등을 쉽게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방 크기에 알맞게 페인트를 주문했다. 하얀색 4L, 젯소 3-4L, 프린세스 블루 1L.
세 번째, 방 안에 가구 몽땅 이동하기.
가장 고생스러웠던 작업이다. 침대, 책상, 책장, 서랍, 피아노까지 벽면에 붙은 모든 가구를 이동시켜야 했다. 그 중에서도 책장에 꽂힌 책을 다 빼서 박스에 옮긴 것과 온몸을 다해 밀어도 꿈쩍하지 않던 피아노 이동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도 힘에 꽤 자신이 있었는데, 정말 피아노는 야속하리만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피아노는 아빠의 도움을 빌려 겨우겨우 벽면에서 80cm가량을 띄워놨고, 나머지는 모두 내 힘으로 가구를 옮겼다. 정말 미리 운동을 해두지 않았다면 못했을 일이다.
네 번째, 페인트가 튀지 않도록 마스킹 테이프 작업하기.
문틀, 콘센트, 창문틀과 벽면 바닥틀에 마스킹 테이프를 두르고, 바닥 및 가구에 페인트가 튀지 않도록 비닐이 붙은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 덮었다.
그 때문에, 페인트 작업을 하는 동안은 비닐로 덮힌 새하얀 매트리스를 두고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그래도 꽤 꼼꼼히 마스킹 테이프 작업을 했던지, 작업이 끝나고 확인했을 때 페인트가 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까지가 페인트 작업 시작 전 준비 단계였다.
준비기간부터 페인트칠을 다 하고, 가구를 새로 배치하고 나니 총 기간이 무려 10일이었다. 정말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페인트칠만 했는데, 그랬다. 하루에 12시간 동안 페인트칠만 한 날도 있었다.
오롯이 혼자 해야했던 것도 있었지만, 내 방의 크기가 정말 크다는 것이 한 몫했다. 사실 내 방은 작은 방을 두 개를 합쳐서 만든 꽤 큰 방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상 방 2개를 페인트칠한 셈이라고 보면 된다. 게다가 하얀색 페인트은 다른 색보다 약하다보니, 최소 2번 이상의 페인트칠이 필요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 당시에 유튜브에서 <책읽어드립니다>와 <차이나는 클래스>를 실시간으로 반복 방송해주고 있어서 그걸 라디오처럼 들으며 지치지도 않고 작업했다.
내 방은 두 개의 큰 창으로 낮 시간 내내 햇볕이 강하게 들어오는 자리였다. 슬슬 해가 길어지고 날이 더워지던 시기라 낮에 작업을 하기엔 너무 힘들었던 탓에, 나는 밤새 작업을 하고, 아침 7시가 되면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다. 고된 노동을 하고 난 뒤라 그런지 평소에 습관처럼 하던 휴대폰을 들여다볼 새도 없이 눈을 감았던 것 같다.
잡생각이 들 때면 몸을 고되게 하여 잡생각이 들지 않게 하란 말이 있는데, 정말 적합한 말이었다. 나는 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 방 인테리어에 오롯이 시간과 정신을 쏟았고, 지금도 그 기억은 '열심히 집중하는 나의 모습'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제사 말하자면,
방의 인테리어 리뉴얼은 정말 성공적이었다. 필요없는 것을 잔뜩 내다버리고, 방을 새단장하고 나니, 내 방에 대한 애착이 커졌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나의 일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