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내내 난 황소였다. '어릴 때 별명이 뭐였어요?'라고 묻는 질문에 '황소였어요', 하면 열이면 열 모두 '아, 황 씨라서... 어릴 땐 이름 가지고들 그러죠.' 한다. 은근슬쩍 입을 다문다. 힘이 장사여서, 말 그대로 황소 같아서 황소라 불렸다고 말하려니 입이 안 떨어진다. 황 씨 성을 가진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인생에서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게 있다면 '힘'이다. 단 한 번도 힘이 세지기 위해 애써본 적 없다. 지금도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건 골밀도를 높이기 위함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런데 늘 힘이 셌다.
기본적으로 팔씨름은 상대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넘기고, 교내 줄다리기 시합엔(단체경기지만 내가 속한 팀이 정신적으로 고무됨) 늘 줄의 맨 앞에 세워졌다. 쌀 20킬로를 한 손으로 들고 집안으로 들이다가 옆집 사람을 마주치면 두 손으로 드는 척을 하기도 한다. 식당 계산대 앞에서 서로 내가 낼게 하는 상황에선 떠밀려 나 본 적이 없다. 수영장에서 물 밖으로 못 올라오는 친구들을 당겨주면 거의 튕겨 오르듯 올라오고, 자전거를 타고 신호를 기다리던 친구가 강풍에 넘어지는 걸 한 손으로 막아준 적도 있다. 발차기가 약해도 팔힘으로 멋있는 접영이 가능하고, 두더지게임을 하면 기계를 부수는 거 아닌가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하기도 한다.
한 번은 아들이 하교 후에 친구와 놀이터에서 놀다가 더 놀면 안 되냐고 생떼를 쓰는 과정에서 내 팔에 대롱 매달렸는데(아들 31킬로), 그걸 본 아들 친구가 충격을 받고 "난 아빠한테도 못 매달리는데"했다.
어릴 땐 싫었다. 팔씨름에서 이기는 쾌감은 짜릿했지만, 무엇보다 별명이 너무 싫었고 힘이 세다고 인기가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싶어 나서서 힘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니 이것도 하나의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엄마가 골골대는 것보단 가끔 아빠도 힘으로 이겨주면서 아이에게 여자도 힘이 셀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니, 친구들에게 엄마 힘세다고 자랑할 때 아이 얼굴에 사뭇 자랑스러움도 비친다. 그래, 힘이 약한 것보단 센게 낫겠지. 살면서 실보단 득이 많았잖아. 이제 힘 세서 황소라 불린 걸 굳이 숨기거나 부끄러워 말아야지. "별명이요? 황 씨라서 그런 것도 있고, 힘이 황소처럼 세다고 '황소'였어요, 겸사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