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과 동안

by hannah

80년 6월생인 나는 79년생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나를 집에 데리고 있기 지루했던 엄마가 통장 할아버지께 십만 원을 주고 일시적으로 서류를 조작하여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어떤 아이보다는 1년 5개월이 어렸다. 생년월일로 학급 번호를 부여받아도 꼴찌, 이름으로도 늘 뒷번호였다.


하지만 액면가는 달랐다. 철이 일찍 들어 생각과 말투도 성숙했는데, 무엇보다 얼굴이 겉늙어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조숙해 보였다. 고등학교 때 반에 유도부 선수가 하나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1년 유급하여 한살이 많았다. 그 언니는 1년 내내 내가 자기보다 나이 많은 유급생인 줄 알았다며 뒤늦게 고백했다.


중학교 때부터 사복을 입고 나가면 늘 어른 취급을 받았다. 선거철에는 십중팔구 선거 전단지를 받거나 선거활동 하는 이들에게 붙들려 한 표를 부탁받았다. 내가, '아직 중학생에요'하면 충격받은 얼굴을 하며 뒤로 물러 서거나, 빠져나가려는 꼼수라 생각하고 더욱더 나를 붙잡고 의미 없는 홍보를 늘어놓았다.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영화관이든 비디오대여점이든 자유롭게 출입했다. 고등학교 때도 혼자 영화관 가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마음껏 봤고, 친구들과 모여 야한 영화를 볼 때는 늘 내가 비디오대여점에 가서 테이프를 빌려오는 중책을 맡았다. 친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였다.


대학 신입생이 되니 나를 졸업반 혹은 오래 휴학했던 복학생쯤으로 생각하고 인사를 하는 새내기들이 있었다. 특히 동아리 입회 초기에는 서로 얼굴이 낯설어 선배인지 아닌지를 눈치로 가늠했는데, 난 늘 인사를 받았다. 동아리 창립제에는 대선배들도 참석했는데, 내가 한동안 안 보이던 대대선배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건네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인생의 가장 예쁠 시절을 노안으로 보냈다. 다른 이유로 늘 우울했고 힘들었기에 생긴 게 대수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유학을 갔더니 사람들이 내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서양인들은 동양인이 다 어려 보인다나. 서른 중반인 나를 보고 대학생 같다는 사람도 생겨났다. 내 나이를 전혀 모르고 자기보다 한참 어린 줄로만 알았던 제부는, 내 동생과 사귀면서 우리의 나이를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었다. 늘 little angel이라 부르던 내 동생이 사실은 본인보다 나이가 더 많은 누나였음이 나중에 밝혀진? 것이다. 처음 만나면 나이부터 묻는 한국과는 달리 사회에서 만난 친구의 나이를 묻지 않는 문화가 신기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동생과 나의 나이를 들은 제부가 놀라서 남편의 나이를 물었고, 그가 자신보다 8살이 많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아니... 친구라며...


노안으로도 살아보고 동안으로도 살아본다. 노안이든 동안이든 개의치 않는다. 그냥 잘 늙어가고 싶다. 눈옆에 웃음 주름이 잔뜩 생긴 얼굴로, 웃고 있지 않은데 웃는 듯한 얼굴로.


전화기 너머 동생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얼마 전 그녀는 제부와 친정에 가서 아빠가 안 드시는 양주를 몇 병 가지고 왔다. 아빠 서재에서 제부가 내 고등학교 때 사진 몇 장을 발견했는데, 처음에 누구냐고 묻더니, 나란 걸 듣고는 박장대소? 하며 자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갔단다. 왜?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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