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다.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중에는 단 한 명도 없다. 담배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프던 나는, 스모커에 관대한 유럽에서 생활하고 여행하며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지나쳐도 인상을 쓰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 흡연을 기호,라고 생각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어렸을 때는 조금 더 즉각적이고 자동 반사에 가까운 반응이 나왔다. 길에서 흡연자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를 피하기 위해 몸을 낮추거나 그들을 피하려고 길을 돌아갔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 덕분에 이제 나는 담배 냄새가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정말 괜찮다. 의지로 신체적 한계를 극복? 한 느낌이랄까.
해운대에 머무는 동안 동생네와 에스프레소 바를 찾았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와 동생이 해운대를 갈 때마다 매번 들른 곳이다. 가게 앞에 서자 남편과 제부가 서로를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3층에 좋은 데가 있어". 입구에 들어서자 마치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바리스타가 주방 뒤쪽에 있는 비밀의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아, 그들이 시가를 피우러 왔던 곳이었구나! 이런 우연이! 담배는 안 피지만 시가는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을 가진 제부는, 사실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데 평생 담배를 피워 폐암에 걸리셨던 아버님을 보고 자라 입에서만 뻐끔거리는 시가를 핀다. 기분이 좋을 때만, 좋아하는 사람과만. 그 좋아하는 사람이 내 남편이고 그 역시 제부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해주고자 어쩌다 한 번씩 시가를 핀다.
그들이 이번에 고른 시가는 Liga Privada no.9, 쿠바산은 아니지만 초콜릿 향과 earthy 향이 특징인 인기가 많은 품종이란다. 한 모금 깊게 입에 가득 머금었다 내뿜고 위스키 더블샷 온 더락을 홀짝이는 남편을 바라봤다. "한번 해볼래?"그가 묻는다. 폐로 들이키지 않는다니 해볼 만하다, 싶었다. 더욱이 남편이 뿜어낸 연기에서 담배 연기와는 다르게 독특한 향이 난다. 입에 시가를 물고 주욱 들이켰다. 입안 가득 머물렀던 연기를 다 뱉어내자 다크초콜릿 같은 달콤 쌉싸름한 향이 입안에 한가득이다. 내가 좋아하는 흙냄새도 난다. 아, 큰일이군, 너무 좋은데. 시가는 하나를 다 태우는데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가량이 소요된다. 바쁜 사람은 필 수 없다. 마음이 바빠도 마찬가지다. 결국 시가의 매력에 빠진 나는 남편과 반반 나눠 피우고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는 동생의 눈치를 보며 마지막 남은 후반부를 재떨이에 뭉갰다.
10여 년 전쯤 강원도에서 유명한 관상가를 만난 적이 있다. 거의 백세 가까이 되신 할머님이셨는데, 내 얼굴을 보시자마자 술이나 담배로 망할지도 모르니 입에도 대지 말라, 하셨다. 아니, 그런 게 내 얼굴 어디에서 읽힌단 말인가. 사실 난 술이 세다. 지금은 연중행사로 마시지만, 마셨다 하면 끝장을 본다.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취하지 않아 젊었을 땐 술을 앞에 두고 대결을 하며 객기를 부리기 일쑤였다. 그날 강원도에 함께 갔었던 동생이 시가를 문 나를 지그시 보며 고개를 젓는다. '시가도 안돼, 시작도 하지 마' 눈으로 욕을 하는 듯하다. 그래, 참자. 아무리 좋아도 참아야 한다. 술담배로 한 번 사는 인생 망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