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셔틀버스를 안 타겠다는 아이를 위해 자전거를 타고 학원까지 동행한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판단력은 믿지만, 한국의 우회전 운전자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데려다주고 데리고 온다.
신도시로 이사오기 전까지는 자전거를 못 타던 아이였다. 작년 봄, 자전거 싫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아파트 단지 내에서 주행 연습을 시작했다. 일주일쯤 되던 날, 겨우 단지를 한 바퀴 돌았을까, 아이가 혼자 주행하기 시작했다. 와, 그때의 감격이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아이가 너무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대견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 순간, 아이는 자전거를 멈추고, "I think I deserve this now"라고 말하며, 이틀 전 학교 앞 뽑기 기계에서 득템 한 싸구려 루비목걸이를 마치 메달처럼 스스로에게 걸어줬다. 아들은, 목걸이를 뽑은 순간부터, 혼자 두 발 자전거 주행에 성공하면 자신에게 상을 주려고 그 목걸이를 종이에 싸서 주머니에 넣고 다닌 것이다. 부모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당연히 기뻤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느 누구의 approval(인정)도 필요하지 않다는 듯, 그렇게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있었다.
커가면서 이런 순수한 형태의 자기 보상을 덜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나는 늘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그래서 마음껏 나를 칭찬해주지 못했다. 솔직히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만한 기억이 딱히 없다. 벼락치기만 하던 나는, 시험이 끝나면 비디오 대여점에 들러 대여섯 개의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와 열 시간 넘게 영화를 이어보며 눈을 혹사시키거나, 라면을 끓여 먹고 낮잠을 서너 시간 자는 등의 자기 파괴적? 보상만을 일삼았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음, 을 몸소 실천하며 살던 내가, 엄마가 된 이후엔, 매일, 아이를 통해 배운다. 그것도 생의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한 순간이라도 놓칠까 봐, 여기저기 기록해 두고 녹음해 두고 영상을 남긴다. 내가 아는 모든 심리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좋은 순간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실수한 순간을 곱씹어 같은 실수를 줄이고자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매일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역시, 나 스스로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