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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ul 05. 2023

네? 유튜버라고요?

아들 친구의 엄마 2

아들은 화요일마다 주짓수클럽에 간다. 얼마 전 아시아인 남매가 클럽에 새로 합류했다. 겉모습은 아시아인이어도 이곳에서 태어나 쭉 자라온 영국아이들일 수 있으니 'Where are you from?"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매끼리 주고받는 대화가 영어가 아니다. 어느 나라 언어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친다.

"Hi, I'm Jake's mum. Are you Korean?"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예쁘게 미소 짓고 있는 제이크(남매 중 오빠)의 엄마(라는 사람). 얼떨결에 인사를 나누고 (어떻게 알았을까 의심을 품은 채) Yes, I am from Korea라고 답하자 "꺄~~~"소리를 지르더니 갑자기 폭풍 질문들 던진다.



아이가 수업을 할 동안 차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브런치를 읽던 고요한 자유는 이제 끝인 것 같다. 제이크의 엄마는, 극강의 친화력으로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다며 백개의 질문을 해댔다. 퀵인터뷰처럼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다음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K드라마(배우 '공유'를 사랑하고 있음)였는데, 아쉽게도 내가 본 한국 드라마는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몇 작품과 현재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보고 있는 악귀가 전부여서 그녀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그러자 바로 한국 음식 얘기로 넘어가더니, 내가 (한식도 만들지만) 대체로 다국적 음식을 요리한다고 하자 그마저도 패스. 어느 순간 나와 남편의 러브스토리에 관한 질문까지 해대고 있었다. 아... 너무 불편한데? 잠깐, 잠깐만요!



처음 만나 전화번호를 불러주고 페북 친구가 됐다. 내겐 극히 드문 일이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 내가, 더군다나 나와 정반대의 성향처럼 보이는 사람과 이렇게 빨리 가까워지다니. 물론 이 지경까지 오는데 나의 역할 1할에 불과했지만.  


반짝이는 빨간 모자에 빨간 재킷을 입고 나타난 그녀는 너무나 친한 친구를 만난 듯 나를 껴안으며 반갑게 인사한다. 잘 모르는 사람과 스킨십 이라니. 튀는 옷을 입으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까 봐 최대한 무난한 옷을 골라 입는 내가 빨간 차림의 그녀와 함께 길 한가운데 서 있다. 시끄러운 소리에 불안감이 커져 자동으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내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크게 웃고 떠드는 그녀와 마주 보고 서 있다.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 사회적 민폐에 가까운 남편과 아들(물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 기준에는 그렇다)에 아무리 익숙해졌다 해도, 그녀는,  부담스럽고 갑작스럽다.


주말엔 본인이 바빠서 못 만나니 우린 주중에 만나야 한다며 서둘러 약속 장소를 정하는 그녀.


그녀는 유튜버다.


영어가 아닌 그녀 나라의 말이라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유튜브 비디오에서 20분 내내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구독자수가 거의 만 명에 가깝다. 만 명이 보는 채널을 보유한 유튜버가 이런 시골에서 괜찮을까? 잠시 주제넘은 생각을 해본다.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나.


대부분 청바지 혹은 반바지바람막이나 티셔츠 차림인 다른 부모들과 달리 원색의 아름다운 옷을 입고 등장하는 그녀는, 한눈에 봐도 감각 추구형이다. 그녀의 한국 음식 묘사를 듣고 있노라면 입안에 군침이 저절로 도는데, 그건 그녀가 여러 향신료나 강한 양념을 좋아해서 실감 나고 맛깔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감각 추구형인 그녀, 와 감각 과민인 나. 감각프로파일의 대척점에 있는 우리는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결말을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긴 하지만, 일단 물러설 곳이 없어 한 발 앞으로 내디뎌 본다. 양극단의 두 사람이 만들어갈 일상에 그녀의 유튜브에 올라갈 만한 재미난 에피소드가 더해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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