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나의 시어머니는 예민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분이다. 사람들의 실수에 관대하고 자신에게도 엄격하지 않다. 크고 단단한 원칙들을 지키며 살지만, 삶의 디테일에 신경 쓰지 않으신다. 전혀 예민하지 않다는 말을 둔하다는 단어로 대체하려니 꼭 험담을 하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는 쓰고 싶지 않다.
원칙주의자인 나는 내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판단하고 분류해 버리는 나쁜 습성이 있는데, 어머니 곁에서 그녀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저렇게 관대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건 내가 틀리고 그녀가 옳아서라기보다,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본인도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내 원칙에 매몰되어 얼마나 나 자신을 벼랑 끝까지 내몰고 불행한 길을 자처했는가, 그 과정에 남편과 아이에게 후회할 만한 말들을 얼마나 많이 던져왔던가.
예민하기 때문에 많은 규칙들이 필요했다. 매일 사투를 벌이듯,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이 보기에는) 불필요한 많은 일들을 해 가며 그렇게 하루하루 버텼다. 이상한 건, 그렇게 예민해서 불안해진 자신을 달래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오히려 나의 예민함을 부추긴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규칙을 지켜가며 살 수록, 나는 점점 더 예민해져 갔다. 내 규칙이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친구들을 미련 없이 떠났고, 내 감각을 자극하는 시끄러운 물건들을 모두 버렸고, 나를 괴롭히는 부모로부터 등을 돌렸다. 그런데, 그렇게 불편함을 다 쳐내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에서도 내가 놀라거나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자, 나는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아, 모든 갈등과 불편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구나. 공존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어머니가 행복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어머니의 부모님은 두 분 다 회계사셨다. 셰필드의 대저택에서 부족함 없이 크던 어머니는, 여동생과 막내인 남동생이 학교에 들어가 학업적으로 우수한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자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렸을 때도 그렇게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셰필드 지역 전체 수석을 하고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엉클 밥이나 좋은 대학을 나와 평생 화학자의 길을 걸었던 안티 리사와 비교해 평범하고 착한 딸이었던 어머니는, 그의 눈에 그저 가족의 자랑거리와는 거리가 먼 모자란 자식일 뿐이었다. 난독증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 어머니가 왜 그렇게 학업적으로 부진한 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스펠링을 늘 틀리는, 책을 잘 읽어내지도 못하는 아이, 그래서 성공의 가능성이 낮은 아이, 로만 여겨졌다. 아버지의 구박은 그가 세상을 떠나며 끝이 났다. 다행스럽게도 어머니의 어머니는 너무나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내 남편이 기억하는 한 외조모의 사랑을 독차지한 사람은 잘 나가는 아들딸이 아닌 바로 어머니였다. 그렇게 한쪽의 부족한 사랑이 다른 쪽으로부터 완벽히 채워졌다. 어머니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사랑과 멸시를 한 몸에 받으며 자라셨다. 부당한 미움과 차별 속에서도 충분히 사랑받고 컸기에 채워져야 할 결핍이 없었다. '인정'이 꼭 나를 인정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돌아올 필요는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잘 들어주고 무슨 짓을 하든 내 편이 되어줄 한 사람이 곁에 있었으므로. 아버지가 했던 아픈 말들이 비수가 되어 꽂히지 않은 건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끊임없이 확인시켜 준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유 없는 비난은 어머니의 가슴속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모이는데 그건 그녀가 굿리스너이기 때문이다. 듣고 공감하고 이해해 주는 친구, 그녀를 아는 모두가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리 암울한 상황에서라도 긍정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두가 그녀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 그 길로 인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녀라는 것을, 그들 모두 잘 알고 있다.
얼마 전 어머니께, 원칙주의자로 살아가는 게 힘들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는 내가 잘 알지. 내 아버지가 딱 그랬으니까. 그가 온 가족을 자신의 규칙대로 컨트롤하려 했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본인을 포함한) 모두가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어. 너무 예민한 나머지 엄마와 우리의 인생을 살얼음판으로 만들었어. 근데 본인 역시 그 살얼음판 위에 살아야 했으니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이야. 너는 내 아버지와 달라. 지금 이렇게 나에게 너의 고충을 이야기해 주고 있으니까.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너의 가족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는 거니까. 예민한 건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걸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건데, 그건 기프트야. 단지,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돼. 네가 잘 볼 수 없을 땐, 내가 얘기해 줄게. 관점이 바뀌면 삶이 바뀐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