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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an 09. 2024

어머니, 구두쇠들과 모노폴리 하기 싫어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시부모님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한다. 식사 후 우린 함께 티브이를 보거나, 시아버님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시거나, 다 같이 보드게임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특별하지 않지만 참으로 소중한 순간들. 그런데 이주 전, 시부모님이 창고에서 찾으셨다며 35년 된 모노폴리를 가져오셨다.


내키지 않았다. 구두쇠 세명(시아버님-남편-아들)과 모노폴리라니.

"어머니, 저는 구두쇠들과 모노폴리 하기 싫어요."

라고 강하게 어필해 봤지만,

"절! 대! 아내를 화나게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구호를 외치는 남편과,

"할아버지와 아빠를 잘 감시하겠습니다!"

라며 본인은 그들과 다름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등 떠밀려 게임을 시작했다. 침묵을 지키고 계시는 아버님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왕 시작하기로 이상 쓸데없는 걱정은 뒤로하고 게임에 몰두하고자 마음먹었다.


평생 티끌을 모아 태산 비슷한 걸 만드신 아버님과, 아버님을 만나기 전까지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크시다가 결혼 후 50년 넘게 구두쇠의 아내로 살아오신 어머님, 아버님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고 더 지독한 구두쇠가 된 남편, 한 번 들어간 돈이 절대로 지갑 밖으로 나오지 않아 우리 가족 중 항상 제일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는 아들, 평생 계획적이고 절제된 소비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나. 이렇게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다섯 명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지 않는 남편과 아버님은, 처음엔 값싼 부터 매입하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시장의 큰손이신 어머님이 기회가 닿는 족족 좋은 을 매입해 제일 먼저 호텔을 구매하셨다. 구두쇠 남편으로부터 받은 평생의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리시려는 듯, 모노폴리에서 만큼은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이루시겠다는 듯. 어머님의 선방에 초초해진 아버님은 조금 더 공격적인 전술을 쓰기 시작하셨지만, 값싼 땅 위에 올린 이나 호텔의 렌트가 비쌀 리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월세가 차곡차곡 쌓여 제법 안정된 현금을 보유할 수 있게 되셨다. 그가 살아온 인생이  그랬다.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을 사들이던 내게 집을 보유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남편이 같은 컬러의 마지막 을 쓸데없이 매입하면서 내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런 식의 구매는 안 하겠다며?라고 따져 물었지만, 그는 눈알을 빠르게 좌우로 굴리며 어떻게든 나를 웃겨서 비난을 비켜가려 했다.


현금만 잔뜩 모아두며 기회를 노리던 아들은 제일 비싼 땅(Park Lane과 Mayfair:건물이 비싼 곳은 렌트와 호텔비도 비쌈)의 건물을 사들이고 가지고 있던 충분한 자금으로 집과 호텔을 사들였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아이의 공격으로 제일 먼저 무너진 건 아버님이셨다. 하필 아이의 호텔에 랜딩 한 아버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보고 다시 한번 카운트를 해 줄 것을 요청하셨다. 세 번의 반복에도 그곳이 맞다고 말씀드리니 망연자실해하시며 한숨을 크게 내쉬시는 아버님. '아... 이거 그냥 게임인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최대한 공감의 눈빛을 보내드리며, '일이 이렇게 돼서 유감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하...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라는 중얼거림과 함께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서, 아버님이 계속 건물카드와 남은 돈을 손에 움켜쥐고 계시자, 어머님은,

"오, 마이클, 그냥 게임이잖아요. 진짜 파산한 거 아니에요."

라며 내가 뱉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 주신다. 자신이 거지로 전락한 게임을 더 이상 지켜보실 수 없었던 아버님은 소파 끝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앉으셔서 난데없이 아이의 책 중 하나를 집어드시더니 독서를 시작하셨다.


아이의 Mayfair 호텔에 랜딩 한 남편이, 얼굴이 벌게지더니 'No!!!!'라고 절규한다. 가진돈을 탈탈 털어도 그는 호텔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모기지(대출)를 받느니 장렬히 전사하는 쪽을 택한 남편이 '그래도 아들이니까 괜찮아'라며 현실과 게임을 분별하지 못하는 듯한 이상한 자기 위안을 했다. 그렇게 아이는 선대 구두쇠 두 명을 아웃시키고 무계획의 엄마와 큰손인 할머니만을 남겨 놓았지만, 패자들로부터 양도받은 어마어마한 건물과 자금을 이용해 여기저기 호텔을 매입하더니 결국 이 게임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아이의 첫 승리를 축하하며 엄마와 할머니는 환호와 함께 신나는 물개 박수를 쳐 주었고, 아빠와 할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고 억지 박수를 쳐 주었다.


게임을 게임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할아버지와 아빠의 진상활약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무리 가짜돈이라도 그들과는 돈이 걸린 게임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어른들을 실력(?)으로 이긴 후 의기양양해진 아들이,

"다음 주에 모노폴리 또 해요, 우리!"

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글쎄,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진짜 파산한 것 같은 심리적 고통을 느낀 남자 어른 둘과는 다른 이유지만, 나 역시 이런 살얼음판 같은 게임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다.


아들아, 네가 행복하다면 나도 좋지만, 어른들이 쿨하지 못해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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