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에 전학 온 아이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원래 이 반에 있었던 아이처럼 잘 지내요'란 피드백을 들을 정도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페이퍼블레이드책과 색종이로 선생님의 허락하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 종이접기 특별수업을 하기도 했고, 기껏해야 두세 시간 거리의 유럽 따뜻한 나라로 휴가를 다니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장거리 여행 경험이 많고 동아시아 끝자락에 위치한 먼 타국에서 온 아이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전학 온 지 한 달이 채 안된 무렵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의 얼굴이 밝지가 않았다. 학교에서 있었던 대부분의 즐거운 일은 부모가 물어야 겨우 대답해 주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쓰이거나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그 일부터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 아이였다. 마음의 돌덩이를 덜어내려는 듯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말을 시작하는 아이.
"엄마, 조시(Josephine 조세핀의 애칭)가 오늘 애들 앞에서, 우리가 어제 슈퍼마켓에서 만났을 때 나보고 'go away(저리 가)'라고 얘기했다면서 깔깔대고 웃었어."
조시는 한 블록 아래 사는 여자 아이인데, 전날 Lidl에서 만나 아들과 반갑게 인사한 친구였다. 조시의 아빠도 예의가 바르고 따뜻한 인상이어서 서로 정중하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조시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내가 안 본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을 그런 식으로 각색해 아이들 앞에서 아들에게 굴욕(?)을 주다니. 복잡한 엄마의 감정을 삼키고,
"아, 기분 안 좋았겠다. 괜찮아?"
라고 물으니,
"어, 엄청 기분 나빴는데, 엄마한테 말하고 나니 괜찮아졌어. 이제 신경 안 써."
란 답이 돌아왔다.
난 아이들이 밉지 않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잘 못 배워서, 제대로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믿는다. 모든 아이들은 실수하고, 그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다면) 배움으로써 성장한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센 척을 하려 했던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조시. 굳이 그 행동을 함으로써 득이 되는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뒤로는 아들이 언급하지 않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저녁을 먹으며 아이가 말했다.
"조시는 이제 frenemy(friend와 enemy를 붙인 말)야."
아이와 조시는 서로 으르렁 거리기도 하지만, 팀으로 뭉쳐 함께 놀기도 하고 말도 다시 섞기 시작했다고 한다. 궁금한 마음에 어쩌다 그렇게 됐어?라고 묻자,
"저번에 그 일 있고 바로 다음날 내가 조시한테 얘기했거든. 'You were so mean yesterday(너 어제 못되게 굴었어). That's not what I want from a good friend(좋은 친구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라고. 그 뒤로 우린 쭉 enemy였는데, 저번주에 조시랑 내가 토킹파트너가 되는 바람에 말을 하기 시작했지. 이제 우린 프레너미야."
지난 7월, 학년이 끝날 때, 조시는 아들에게 손편지와 함께 손수 만든 걱정인형을 선물해 주었다. 조시와는 다른 반이 되면서 더 이상 그 아이를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학교 앞에서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 기다리며 조시 아빠와 친분이 생기는 바람에 각자의 차까지 다 함께 걷는 일이 잦아졌다.
조시아빠에 따르면 조시는 해리포터의 광팬이라 8편의 영화를 각각 네다섯 번씩 시청했다. 얼굴도 엠마왓슨을 꼭 닮은 그녀는, 그래서인지 엑센트가 헤르미온느의 것과 꼭 닮아있다. 내 입장에서는 사립학교 억양을 가진 조시가 다행스럽다. 조시 아빠는 리버풀에서 온 사람인데 억양이 얼마나 센지 초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 들린다. 하루는 남편과 아이 픽업을 함께 갔다가,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조시 아빠와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는데, 조시 아빠가 다른 학부모와 얘기를 나눈다고 돌아서자마자 남편이 내게,
"혹시 조시네 저번 주 주말에 뭐 했다는지 들었어?"
라고 묻는다. '응? 나보고 묻는다고? 내가 무슨 수로 저 센 리버풀 억양을 알아들어?'라고 반발했지만,
"아니 그럼 나는 무슨 수로 알아들어, 내가 리버풀 사람도 아니고."
순간 동의할 뻔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난 경상도 여자인데 전국 사투리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 음... 네이티브도 모르겠다니... 뭐, 나만 조시 아빠를 이해 못 한 건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빠의 엑센트보다 많이 본 영화 주인공의 억양을 따르기로 한 조시의 결정이 현명한 듯 보인다. 스티븐 프라이가 읽어주는 해리포터 오디오북 전권을 두 번씩이나 청취한 아들 역시, 한때 그 책의 광팬이었으므로 조시와는 여러모로 대화가 잘 통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연휴로 2주간 방학을 하는 날, 학교 앞에서 나를 본 아들이,
"엄마, 조시가 날 좋아한대."
라며 난데없이 그녀의 고백을 내게 고백했다.
"그래서 너는 뭐라 그랬어?"
"오케이랬는데?"
오케이... 이도저도 아닌 말, 오케이... 그들 사이 감정의 불균형은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아들이, 조시가 학교에서 자기를 볼 때마다 멀리서 달려와 껴안는데 그게 당황스럽다고 얘기했었다. 조시는, 주말에 아이를 생각하면서 구운 컵케익을 다음날 학교에 들고 와 아이에게 전달해 주기도 했다. 혹시 조시가 아이를 좋아하는 걸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조시의 아빠가, 집에서 조시가 아이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한다며 귀띔해 주었다(이런 말은 왜 또 잘 들리는 건지).
너무 어릴 때부터 연상과 연애하고 첫사랑의 아픔을 겪으며 빨리 성숙해진 남편이, 아들의 이성 경험은 늦기를 바란다는 '나는 되고 너는 안돼'식의 입장을 내게 전달했다. 최대한 아이가 순수한 모습으로 오래 머물기 바라는 건, 모든 부모의 공통바람이 아닐까. 남편처럼, 이성에는 일찍 눈뜨고 다른 부분에서는 전혀 철이 안 든 최악(?)의 케이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되도록이면 아이가 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최대한 마음을 많이 성장시킨 후 이성 관계를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핍'이 이성으로 눈을 돌리는데 원인이 되지 않도록 집에서 정서적으로 지원을 많이 해 줘야겠지만.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아이들의 세상에서 되도록이면 아이가 덜 상처받고 자라나길. 외부 자극을 조율해 줄 수는 없으니 아이가 그 자극들을 다뤄내는 데 도움이 되도록 마음의 쿠션들을 많이 붙여준다. 실망과 좌절을 경험해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아, 조시랑 아들이 지금부터 잘 지내서 나중에 결혼까지 하면... 사돈 말을 못 알아듣는데 어쩐다...' 고삐 풀린 생각이 또 저만치 앞서 가려는 걸 붙든다. 푸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새해 첫날부터 오버하지 말고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