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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 Lee Nov 15. 2016

Travel Photo Essay_
떠나야 보이는 것들

1. 성스럽고 경건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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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까탈루냐 광장 근처로 숙소를 정했다. 위치는 좋지만 나머지는 별로라는 호스텔. 심지어 가격도 아주 싸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 혼자 유럽으로 여행을 오는 여성 여행자인 나에게는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저녁 늦게 홀로 도시의 외곽을 돌아다녀 좋을 건 하나 없으니까. 슬프게도, 여성에게는 여전히 이런 '자체 검열'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그리하여 결정된 나의 숙소, 세인트 크리스토퍼 인 바르셀로나. 일종의 프랜차이즈라 유럽의 도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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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숙소에서 번화가인 람브라스 거리까지는 걸어서 5분 정도로 무척 가까웠다. 

이리저리 지도도 없이 돌아다니다 'Cathedral'이라는 표지판을 만났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천주교인 아닌 기독교인이지만 괜히 여행의 첫 시작을 그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지나치게 노출이 심한 의상만 아니면 괜찮다는 표지판이 초심자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이 건물 내부에 들어서서야 지금 내가 유럽에 있음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그만큼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건물의 경건한 위용은 압도적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켜켜이 쌓여 있는 순교자들과 순례자들의 기도 속에 서 있는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 나.

이 조각상 밑에 있던 긴 의자에 어떤 아주머니께서 가만히 앉아 계셨다. 조심스레 사진을 찍고 함께 한참을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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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충분히 좋았지만, 아직 건물의 심장부가 남아 있었다. 발걸음은 홀린 듯 예배당 안으로 향했다. 

때묻은 벽돌은 그 동안 이 건물이 감내해 온 세월의 무게감을 말해주고 있었고,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내부 장식은 몸에 맞는 옷처럼 꼭 맞았다. 거기 있어야 할 것들이 거기 있었다.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묵묵히.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홀로 왔다갔다, 그리 크지 않은 예배당을 걸으며 이 깊은 감격을 소화해내기 위해, 이 풍경의 하나하나를 몸 깊숙히 새기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몇 번이고 이렇게 되뇌었다.

이대로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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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꼭 맞게 서 있다면, 비록 화려하지 않고 심지어 추할지라도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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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있으라고 해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배시간이 다 되어 나와야 했다. 여행기간 중 꼭 이 곳에 다시 들러 첫 감격을 기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총 네 번을 시도했다. 근처에만 가면 입구를 서성거렸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활짝 열려 있던 문은 대체로 닫혀 있었고, 열려 있을 때는 7유로라는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치명적인) 입장료를 요구했다. 결국 네 번 중 한 번의 시도만 (그것도 부분 개방만) 겨우 성공했다. 물론 날마다, 시간마다 달리 정해져 있어서였겠지만, 여행 첫 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마음껏 대성당을 누렸던 이 행운은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마치 그 때, 거기 있었던 내게만 허락되었던 특별하고도 비밀스러운 시간이었던 것처럼. 하긴, 따지고 보면 '여행' 역시 그런 것이다. 

첫 날 이후 내게 그 문을 열어주지 않은 바르셀로나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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