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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 Lee Dec 02. 2016

Travel Photo Essay_
떠나야 보이는 것들

2. 어떤 위로


바르셀로나의 에스파냐광장에는 주말마다 '몬주익 분수쇼'가 열린다. 내가 갔을 때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9시, 분수쇼가 열렸다. 금요일은 몸이 좋지 않아 패스. 마침내 토요일, 분수쇼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분수대 주변과 국립 카탈루냐 미술관 근처 계단은 갈수록 발 디딜 틈 찾기도 쉽지 않은 상태가 되어갔다.


카메라가 향하고 있는 반대편에 '몬주익 분수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 계단에 앉아 분수쇼를 감상한다.


낯선 시공간 속에서 초보여행자는 조금 위축되고, 작아진다. 행여나 틀린 행동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특히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소매치기를 주의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터. 쇼를 기다리는 내내 경계는 계속되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미술관 바로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금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온 터라 다리가 몹시 아파 어디든 좀 앉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국인 여성으로 보이는 두 사람과 현지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 사이가 비어 있었다. 조심하려던 초심과는 달리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털썩!


그런데,


오른 편에서 무언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 레이저의 출처는 오른쪽에 앉아 계신 현지인 아저씨. 당장이라도 내 머리를 두 동강 낼 것만 같은 시선에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뭐 잘못했나? 아니면 저 사람이 이상한건가?' 가뜩이나 경계심 많음 모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옆 사람마저 이렇다니. 침착히 앞을 보는 척 했지만 내적 갈등은 컸다. 다른 자리로 이동할까, 그냥 있을까. 아픈 다리는 후자를 선택하게 했고, 대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Is it okay if I..."(내가 당신 옆에 앉는 것이 괜찮냐고 물으려 했으나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Everything is okay."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며칠 간 나를 떠나지 않던 긴장과 불안을 읽어낸 사람처럼 대답했다. 낮고 굵게, 하지만 단단하게 전해진 그 음성은 특별했다. 이 자리에 앉는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이 괜찮다. 너무 '안 괜찮은' 사람처럼 다니지 않아도 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구애받지 말고, 이 순간을 자유롭게 즐겨라. 그는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나에게 많은 호의를 베푼 셈이다. 그만큼 말 한 마디가 준 뜻밖의 위로는 컸다. 


Be Free.


아, 이 어쩔 수 없는 언어적 존재.



분수는 기대했던 대로 아름다웠다. 나의 '괜찮음'을 기뻐하며, 음악에 몸을 맡긴 채 허공을 가로지르는 저 물과 같이 마음의 춤을 추었다. 당시엔 대답이 너무 놀라워 수줍게 답례하고 말았는데, 늦게나마 그 아저씨에게 다시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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