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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Oct 22. 2015

야생 고양이

프롤로그

현대적 삶이 준 편리하고 세련되며 안락한 것이 주는 위험을 감지했다. 조금 더 원초적이고 모험적인 단계가 필요하다는, 극단까지 이를 수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른 차원에서 다른 세상을 만나야 한다는 신호가  머릿속을 휘젓는다. 다 살균되어 면역력을 잃기 전에 야생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무언가 내 마음의 문을 절실히 두드린다.


새롭지 않다.

매일 같이 일어나고, 같은 곳을 맴도는 느낌이 든다면, 아침 햇살이 상큼하고 찬란하지 못하다면, 이런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니 절망스럽다.


아니다. 나쁘지 않다. 매일같이 일어나고 다시 피곤에 휩싸여 잠을 청하고, 다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른 것을 꾸며 볼까 하는 심산은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너무 피곤하다. 하루는.


매일 무언가를 먹는다. 배고픔을 달랜다. 나쁘지 않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 얄궂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쁘지 않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기도 한다. 핸드폰을 충전하기도 하고, 몇 가지 게임을 지속해 나간다. 미국 아이들을 매일 보고, 같이 일을 하고, 말도 안 되는 소통을 하면서, 스스로 좌절을 느끼기도 하지만 괜찮다.


근데 난 행복하지 않다.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살아간다. 생기도 없으며, 기쁨도 없다. 웃고 있지만 그 일회적인 웃음이 진정한 행복과 성취에 다다르게 하지는 못한다. 황량하다. 이 땅은 참으로 황량하고 메마르다. 삶이 ‘살아있다는’ 그 생생함으로 채워져 있지 못하다. 비슷한 말들을 버무리며, 남들이 생각하는 것들을 엿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진정 내 안에 무엇인가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새로운 식물을 키우는 것도 무기력할 테다. 율마는 죽어가고 있다. 책임지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내 버려놓은 나의 잔재들을 치우느라 사람들은 곤혹스럽고, 그 생명체는 외롭고 서글퍼진다. 그것은 참으로 잔인하다. 나의 이 메마름을 내 근처에 있는 것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을 메마르게 하는 건조한 겨울이다. 그리고 어쩌면 죽음으로 이르고 있는 느린 자살의 단계이다. 죽음의 단계들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생기를 잃은 자는 무기력하게 시 간에 끌려 욕망 없이 하염없다.


무엇이 나를 채울 수 있는 지 나는 모르겠다. 순간의 쾌락들만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영속적이지 못하고 나는 내 불안함을 견디지 못한 채, 유희적 조각들을 손에 넣으려 애쓴다. 아름답지도 감동적이지도 신념이 있어 뵈지도 않다. 그냥 이 생으로 된 쌩 삶이 너무 아프다. 피부껍데기가 벗겨져 나간 곳에 다른 피부가 닿는 느낌이다. 그런쌩, 쌩으로 된 쌩 채의 생을 파도와 바람과 맞서려니 더 서럽고 외롭다.

 

 “시간이 지나 점점 늙어가고, 나의 가치가 점점 하락할 때면, 안정을 찾기엔 너무 늦은 시기가 오게 되면 그 좌절감과 피로감, 성취 없고 씁쓸한 과거탄식을 할 때가 정말로 온다면, 그래서 지금 이런 몽상적인 상상이나 할 때가 아니라면.”


엄살은. 대애충 살면 된다. 그리고 시간을 좀 벼렸다가, 떠나면 된다. 분명 그 여행이 완전하진 않겠지만, 그것 속에서 나는 조금이 욕망들과 억압들을 해체시킬 수 있다. 그런 것을 보아야 한다. 당장의 직면들만을 괴로워할 문제는 아니다. 현재에서 틈새 공략을 하고, 여행을 꿈꾸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내 삶이 여행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과 느껴야만 하는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피하지 말지어다.  




신은 용감한 이들의 신이다. 그리고 그 신은 로렌스를 이해할 것이다. 용감한 이들은 두려움을 안고 결정을 내리고, 내딛는 걸음마다 악마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번 민하고,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묻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동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행동한다. 그들 역시 기적을 믿기 때문이다. <브리다> Paulo Coelho

 


그리고 몽상가인 그녀는 여행을 떠났다. 어떤 이는 그녀를 응원했고, 어떤 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어떤 결정을 하게 되었고, 나는 이제 그 선택을 따라가기로 한다. 막상 날들이 다가 올수록 설렘보단 당황스러움이 지나간다. 새벽에 깨어나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를 가늠해보려 한다. 장기여행이란 무엇인가. 왜 이런 것을 시작하려 하나. 지나는 모든 풍경 사이에 뭘 보려나. 내 속에 역마살과 안정감이 갈등한다. 그리고 내가 가졌던 온갖 안정감을 제 발로 기어 나온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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