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스와질랜드는 원래 계획에 전혀 없던 땅이다. 여행은 늘 닥쳐봐야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이 나라는 내가 아프리카에 오기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다. 마푸토Maputo에서 스와질랜드로 가는 12인승 봉고차에 타 출발을 기다리는 아침이다. 남은 돈을 모두 환전하고, 아프리카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동을 위한 기다림’이 시작된다. 보통 스케줄이 짜여 있는 공용 대형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한, 이런 봉고차에서 인원이 다 찰 때까지 넋 놓고 기다리는 일은 내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만차가 되도 채우고 채우는건 '이동을 위한 기다림' 내 아프리카의 일상이었다.
탑승객은 거의 대부분 비지니스를 위해 대도시 마푸토를 들렀다가 스와질랜드로 돌아가는 스와지 사람들이다. 만석까지 1명의 인원이 차기 위해 1시간가량 기다리고 있을 때, 그들은 모두 차에서 내리더니 운전자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하기 시작한다. 현지어를 알아 듣지 못하는 나로서는 근처에 다가가 얼쩡이며 그들의 사정을 파악하려 노력한다. 한 명의 자리가 비어 기다리고 있던 찰나 나머지 사람들이 그 한 사람의 금액을 나누어 지불해 기다림을 멈추고 차를 운행하게 하자는 말이다. 그들은 모두 한 시간의 기다림에 짜증이 나 있었고, 이제 돈을 낼 테니 그만 기다리고 출발하자 한다. 나는 그동안 무엇에 익숙해져 있었던 걸까? 왜 이런 것이 너무나 어색하고 놀랍게 된걸까? 조금씩 다른 나라로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스와질랜드는 남아공South Africa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비교적 평화로운 나라다. 여러모로 남아공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고 있는데 수많은 남아공표 물건이 넘쳐나고 남아공 화폐가 ATM 기계에서 나올 정도로 통용된다. 한국의 1/5 정도인 작은 나라에서는 버스를 타고 오래가지 않아도 어디든 닿을 수 있다. 바다도 없고 특별히 엄청나고 특이한 지형이나 유적이 있지는 않지만 푸르고 아름다운 곳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은 여러 부족들이 한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반면 스와질랜드는 스와지라는 하나의 부족이 살고 스와지 국왕이 통치하는 단일 부족 국가이다. 아직도 군주제가 남아 있어 왕은 여러 가지 호화를 누리고 푸르고 작은 땅은 너른 들판에 목축업이 가득한 이곳은 소고기 값이 매우 저렴하다. 인구의 1/3이 HIV를 가진 인구 대비 최고의 수치를 가진 이 곳의 삶이 궁금하다.
스와질랜드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산다는 만지니Manzini의 중심가는 걸어서 이동할만한 작은 곳이다. 그러나 쇼핑몰과 도서관 에이즈 센터 그리고 두 개의 시장, 버스 터미널까지 필요한 것들 이모도 갖춘 곳이기도 하다. 도서관과 에이즈 센터에는 HIV를 위한 포스터, 검사 권유, 무료 콘돔, 그리고 에이즈에 대한 보고서나 관련 서적들이 가득하다. 전반적으로 교육에 힘쓰고 정치, 경제 안정에 국왕은 애쓰고 있다. 스와질랜드는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할 때 전쟁을 하거나 자신들의 권익을 투쟁하는 것보다 평화를 추구하며 타협하는 쪽을 선택해 바다를 얻지 못했다. 그만큼 욕심내어 투쟁과 내전을 하기에 너무 유유자적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만지니에 있는 스와지 학생들은 귀여운 초록색 하얀색이 섞인 체크 무늬 교복을 입는다. 모잠비크에서 애먹을 수밖에 없었던 언어의 한계는 이곳에서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 높지 않은 건물과 분주한 시장을 지나 복잡한 터미널에 도착한다. 대낮에 자신감 있게 하차를 하지만 역시 처음 온 장소는 낯설고, 머물 곳을 찾기 위해 헤매아하는 일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만지니의 뜨거운 날이다. 그저 그런 평일에 아이들이 하교를 하는 시간, 지도를 바라보고 숙소들을 찾아보지만, 여의치 않다. 무거운 배낭은 뜨거운 태양과 함께 이글거리며 어깨를 짓누르고 어떤 운전자가 나에게 어디를 가느냐 물으며 길을 가르쳐 준다. 그는 내가 찾는 숙소는 너무 멀리 있으니 저 앞에 보이는 경찰서에 찾아가 다른 숙소 정보나 위치를 받으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언덕 하나를 넘어 다다른 경찰서로 짐작되는 곳 둘레에 울타리가 쳐있다. 그 근처 나무 그늘 아래 4명의 뚱뚱한 나이 든 여인들이 아이스크림과 간식거리를 팔고 있다. 그중 하얀 머리가 슬쩍 보이는 한 할머니가 어딜 가냐고 묻는다. 그들은 철조망 사이로쉬는 시간에 간식을 사 먹으러 달려오는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과 바나나, 사탕, 사과 등을 판다. 뜨거운 태양에 지친 나는 무거운 짐을 내려 두고 그 위에 앉아 그녀에게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산다. 나는 그녀에게 숙소를 찾고 있다고 이야기 말하고, 정보를 묻는다. 우리의 이야기는 일상 생활 이야기로 변한다. 아이스크림 장사는 어떤지, 스와질랜드는 어떤 나라인지 한참을 대화한다. 능수능란한 그녀의 영어 솜씨에 감탄하며 오랜만에 현지인과의 소탈한 대화를 하다 우연치 않게 그녀, 코코 송웨Coco Songwe는 나를 그녀의 집에 초대한다. 그렇게 갑작스런 홈 스테이가 시작되었다.
몇 차례 나의 이름을 알려 주었지만 그녀는 계속 나를 “헬렌Helen”이라고 부른다. 송웨가(家)의 헬렌 방문자가 된다.
코코는 62세, 14년 전 남편을 여의고 아들, 딸과 살고 있다. 동그란 눈에 하얀 머리가 희끗거리는 그녀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호탕하다. 고기와 설탕이 저렴해 과다 섭취가 쉬워 뚱뚱한 스와질랜드의 전형적인 아주머니들처럼 꽤 살집 있다. 각종 예쁜 체크무늬 패턴의 옷들을 골라 입는 멋쟁이이다. 그녀의 남편이 지은 집은 두 개의 1층 작은 시멘트로 지은 소박한 파란 집이다. 병아리, 닭, 개, 망고나무, 포도나무, 야자수가 어우러진 그곳은 부족하지 않은 한 가족 살림살이다. 양철 지붕이라 비가 오면 요란스럽더라도, 이 집은 14년 전부터 튼튼한 벽돌집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거실만큼은 굉장히 세련된 공간인데, 거대한 LG전자 텔레비전, 푹신한 소파는 그들이 얼마나 풍요로운 여가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 짐작하게 한다. 더위가 가득한 스와질랜드에서 또 다른 언어가 돌아다닌다. 북극곰 인형, 하얀 타일의 바닥, 포도와 얼음, 하얀 구멍이 예쁜 문양인 동그란 테이블보, 그리고 갈색 나무로 만들어진 찬장과 고급스러운 소파, 냉장고와 아담하지만 먹고 즐기는데 필요한 기본 요소들이 속속들이 있는 공간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장을 보러 가는 코코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하다. 팝콘을 튀기고 시원하게 얼린 음료를 열심히 포장하고 준비해 아침 일찍 짐을 지고 학교까지 걸어간다. 약 20분여의 거리를 보따리 가득 들고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리고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간다. 그녀 아들 한 명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에 일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딸 한 명은 외국인 상대로 무역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딸은 소일거리를 하고 있고 막내 아들은 방황하는 스무 살이다. 그녀는 자신과 같이 살고 있는 막내 아들과 딸을 걱정한다. 또 아직까지도 자신이 대부분의 가정 수입을 만들어 내고 있다며 한탄한다. 코코는 이 집 저 집을 들러가며 동네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 사람들은 나그네인 나를 진심 어리게 반겨준다. 모두 집안에 하나쯤의 소일거리와 마당 앞 자급 자족할 만한 식물들이 있다. 겉보기에 평화로운 작은 나라인 것만 같은데 그들은 스와질랜드도 위험하다고 이야기한다.
그곳에서 나는 주로 코코의 출 퇴근을 돕고, 집안 허드렛일을 도맡아하며 아침과 저녁을 얻어 먹었다. 낮 동안에는 근방에 있는 도서관에 들어가 영어로 된 아프리카 관련 서적들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책 더미에서 깨어나면 나는 여전히 뜨거운 아프리카에 있다. 시장에 가서 기념품을 구경하거나 현지 음식을 맛보는 등 일상을 즐긴다. 그저 터덜터덜 길을 나서면 신선한 바나나와 사과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시장이 있어 좋다. 점심을 안 먹어도 감자 튀김과 자두를 위장에 구겨 넣어둔 탓에 배가 고프지는 않다. 덥다. 거실 소파에 앉아 글을 쓰면 하얀 타일 바닥에 개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어떤 여행자도 만나지 않은 지 오래다. 여행이 일상이 되면서 그 나름의 패턴을 가진다. 매일 엄청난 것들을 배울 수 없지만, 하루에 하나씩 일상을 쌓아간다. 혁명자가 되지 못하면 기록자가 되겠다. 시원한 바람이 코코의 집을 순환하고 나가면 이대로도 모든 것은 괜찮다.
설탕과 고기류가 엄청나게 저렴한 이곳에서는 때때로 야채보다 고기가 더 싸다. 많은 스와지 사람들은 그런 저렴한 가격의 고기와 설탕을 쉽게 먹으며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TV 보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대개 많은 나이 든 여인의 경우 비만이 허다한데, 이런 환경적 요인에 비롯한다. 스와지 왕국의 커다란 자부심, 왕족은 늘 전통 의상을 고수하고, 자국 TV의 채널은 하나이지만 늘 수화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맛있는 것을 먹고 앉아서 TV 보기를 좋아하고, 싸움을 하기에는 게으른 편이라 차라리 타협을 하고 마는 낙천적인 사람들이 사는 나라 스와질란드이다. 길거리와 미디어에서는 미국 드라마, 영화, 음악이 창궐한다.
코코의 집 막내 아들 실포는 아침이 되면 팝송을 틀고 청소를 시작한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것은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 구성원이란 어색함, 더 이상 철없는 아이가 아니라 이제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는 기대감과 부담감 같은 것이 노크해 온다. 세상 어디나 비슷하다. 이곳에 사는 많은 이들이 일자리와 더 많은 기회를 찾아 남아공으로 향한다. 모두가 더 나은 곳이라고 기대되는 곳을 향해 기회를 찾아 떠돌고 있다.
오후에는 60이 넘어서도 돈 불평을 끊임없이 해야 되는 코코의 푸념을 들으며 한국식 마사지를 선사한다. 자식에게 잔소리는 전 세계 엄마들의 공통점인가 보다. 잡초를 뽑고 마당을 쓰는 코코를 보며 엄마로 산다는 것을 생각한다. 매일 예쁜 레이스가 달린 혹은 여러 패턴, 디자인으로 구성된 모자와 요들레이 송을 부를 것만 같은 유럽풍의 옷으로 갈아입는 코코가 멋있다. 송웨가(家)에서의 일주일이 지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코의 산타클로스가 되어준다. 그녀가 필요로 했던, 가지고 싶어 했던 것과 편지를 남기고 떠난다. 그녀와의 시간에 비하면 미미한 것었다. 그녀는 눈물을 터뜨린다. 그것이 우리의 헤어짐의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실포에게 나의 진실 하나를 말한다.
‘내 이름은 “헬렌”이 아니라 “한나”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서로 따뜻한 가슴을 안고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