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모든 것은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무엇 하나도 현실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 불안정한 기억의 파편을 고사리 손으로 움켜쥐고 다 새어나가도록 자신의 것이라 고집하며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결핍된 것을 충족시키려는 서투른 노력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있지 않은 사람을 기억하는 지도 모른다. 이 불확실함이 나를 불안정하게 한다. 바람이 분다. 하루의 열기가 식는다. 모기에 물려 피가 흐르는 다리를 나는 위로하지 못한다. 그 어떤 책임감도 없이 퍼져나간다. 모잠비크에서 죽으려나. 그 두려움을 정말로 감당할 수 있을까. 꿈결 같은 하루 하루가 끝나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흔들리는 기억 조각들은 불투명하게 움직인다. 왜 이 상황을 마주하려 하나. 말라위 박테리아가 다리에서 증식하고 있다. 마치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그 현실을 되새겨 주듯이.”
비가 오락 가락, 우기의 1월의 모잠비크. 빗물이 넘치고 상황의 여의치 않아 그 커다란 나라에 잘 트여있는 고속 도로 길은 하나이다. 더구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 하루에 한 대있는 버스가 수도 마푸토Maputo가 있는 남쪽을 향한다. 버스를 탈 경우 선택의 경우는 지나가야 하는 길은 단 하나이다.
모잠비크는 수 많은 자원과 외국인의 투자로 인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개발도상국 중 하나이고, 그러한 경제 상황 속 빈부격차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아프리카 나라들의 건국 기초가 식민지 시대 침략에 의해 이루어져, 모잠비크도 여전히 부족/분파 간 갈등이 만연하다. 안타깝게도 내가 가야 할 외길 도로 중간 110km 구역이 게릴라들의 습격을 종종받고 있으며, 그 당시 기준(2014.1) 한 달여 동안 무고한 시민 5명의 죽음을 이끌었다. 그들의 목적은 남과 북쪽 중간 길 교류에 위협을 가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늘리며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북쪽의 자원을 남쪽에서 사용해 이익을 남기고 재분배를 하는 과정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쪽의 대응은 너무나 과격하고 그 목표물이 무고한 시민이라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머물고 있던 치마요Chimoio의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이곳에서 명백히 외국인이고, 포르투갈어를 모르고, 혼자 여행하는 나에게 그곳을 지나가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경찰과 무장 차량이 같이 그 길을 지나가겠지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고, 그렇게까지 그 길을 지나가야 할 까닭은 없다고 강조한다. 내 여행은 남아공South Africa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를 향하고 있으므로, 짐바브웨로 돌아 가든가, 모잠비크가 궁금하다면 비행기를 타 마푸토를 향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고 조언한다. 치마요에서 어느 정도 머물렀으며, 이제는 떠나가야 할 때라고 느낄 즈음, 결정을 해야 했다. 짐바브웨Zimbabwe도 멋진 곳이지만, 나는 모잠비크를 더 알고 싶었고, 그 분쟁지역이란 현실은 또 어떤 것일까 하는 위험한 호기심이 앞선다. 왜 위험을 무릅쓰려는 걸까, 내 두뇌는 무엇이 잘못되었나, 어떤 상황과 결정들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내게 지금 필요한 여행과 배움이란 무엇일까. 그저 이성으로는 말할 수 없는 직감 같은 것이 이미 내재되어 있는 안전불감증과 함께 드러나 마음을 흔든다.
그날 이란인 여행자 부부를 만난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루트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그 일로 인해 변경했다. 이란인 마지드Majid는 비록 부인과 함께 있어 위험을 무릅쓸 수 없게 되었지만, 자신이 만일 혼자라면 경찰이 동행하는 그 길, 그곳을 지나가 보았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도대체 세상 한 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이것이 내가 모잠비크에 온 이유인 것은 아닌 지, 그런 모든 것을 마주하기 위해 고민과 혼란 끝에 무모하게 버스 티켓을 끊는다.
“나도 안다. 나는 미쳤다.”
“그리고 정말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결과를 단 하나도 감당할 수 없음을 안다. 너무나 큰 위험에 별 의미도 가치도 없는 일에 자신을 쉽게 내던지고 있다. 이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모한 고집이고 객기이다. 이것은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다. 그리고 순진하게도 운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새벽 3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새벽부터 조용히 길을 걸어 나선다. 보통 같으면 더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 최대한 앞쪽 창가 좌석을 선호하겠지만 그 날 버스만큼은 거의 맨 뒤쪽 창가 자리에 앉는다. 50인승 딱딱한 버스는 만석이고 버스에 배낭여행자는 나 혼자다. 그리고 역시나 정시 출발을 한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도 새벽 6시가 되지 않는다. 내가 겁쟁이인건지 아니면 이 버스가 내가 향하는 곳으로 데려가는 버스가 아닌 건지(그럴 리는 없지만)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적인 풍경으로 앉아있다. 그 누가 어떤 나쁜 가능성을 크게 염려하고 이 버스에 올랐을까, 모두 남의 일이려니, 두려움 따위 엿보이지 않는다. 한 곳에 정차한 차량은 2시간이 지나도록 가만히 있다. 상황이 궁금해 엄지와 검지 손가락도 개로 총 모양을 나타내고 ‘방! 방!’ 하면 사람들이 나를 비웃으며, 맞다는 제스처를 한다. 그곳이 바로 무충궤Muchungue, 110km 시작 지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폭우가 끊임없이 내리는 습하고 더운 날, 아침 9시가 되도록 세상은 어둡다.
바깥에 잠시 나가 상태를 둘러보면 여러 대의 차량과 탱크 그리고 경찰들이 그곳에 서 있다. 사뭇 진지하고 경직된 분위기이다. 경찰은 각 개인의 신분증을 체크하고 총 3시간여의 기다림 끝에 버스는 그 길을 떠나기 시작한다. 습한 공기에 땀이 나고 거센 비에 더욱 긴장된다. 파란색 커튼은 버스와 모든 바깥 세계를 차단하고, 모두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긴장감이 감돈다. 나는 몸을 약간 낮춘 채 이 긴장감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혹은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몸을 웅크리고 버스에 자신을 맡긴다. 110km. 약 1시간 반의 이동 거리이다.
그리고. 15분이 지났을까.
가녀리고 짧으며 확실한 연속적 총알 소리가 모두를 놀래 킨다. “타 다닥!!!” 그 명확하고 확실한 소리, 모두가 예상은 했으나 어느 누구도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단지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스 의자 아래로 모두들 자신의 몸을 구겨 넣는다. 넣어지지 않아도 어떻게든 넣어야 한다. 모두가 같다. 의자 쿠션을 떼어내어 머리를 감싼다. 모두가 자기 자신의 생명을 모든 것을 걸고 지켜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버스가 점점 속도를 늦추다 결국 멈추었을 때 두려움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앞 좌석에 앉은 여성이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한다. 침묵이 흐르고 누구도 감히 상황 진행을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온갖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안 좋은 가정이 머리를 스쳐간다. 정말 어떤 상상했던 현실이 일어났을 때, 나는 가장 작고 미약하다. 그 모든 힘과 운명 아래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으며, 그저 가장 나약한 자신을 본다. 그리고 순진한 자신의 선택을 비난한다. 심장이 뛴다. 그리고 나를 강하게 덮치는 생각. ‘살고 싶다.’
정적이 흐른다. 천만 다행히 용감한 버스 기사는 다시 운전을 시작하고, 승객들은 모두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각자의 안위를 살핀다. 그 안에서 일종의 연대감이 생기는데, 생사를 같이 하는 상황이 서로를 보듬게 만든다. 다시 제 속도를 내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의 안도감이 찾아온다. 대부분의 승객이 몸을 움츠린 채 그런 자신의 상황을 사진 찍기도 하고 바깥을 슬쩍 살피기도 한다. 약 1시간여 용감한 버스 기사는 과감히 그 지역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무사히 뚫고 나온 버스의 상태를 보았을 때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창문 양쪽이 거의 대부분 깨져있고, 커튼 사이와 버스 바깥에 총알 자국을 볼 수 있다. 천만다행으로 그 누구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지만, 무섭게도 총알은 왼쪽 창문을 스쳐 오른쪽 창문까지 거의 수평을 그리며 지나갔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이건 어떤 경고가 아니라 정말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증거다. 그렇게 총 9발의 총알 자국이, 안정되지 않은 모잠비크의 치안이 내가 탑승한 ‘그 버스’에 새겨져 있었다.
순진 무구한 토끼는 구름 길을 멍하니 자신의 운을 믿으며 지나갔다. 아무도 안 다친(깨진 창문으로 인해 살짝 찰과상을 입은 남자 한 명을 제외하고) 기적을 본다. 모두가 잊지 못할 천운의 하루를 공유한다. 우리의 영웅 버스기사는 그렇게 15시간을 더 달린다. 버스는 새벽 2시에나 마푸토에 도착한다. 그 시간 위험한 대도시, 어디론가 이동하지 않고 버스에서 밤을 보내는 무리에 끼어 자리를 잡는다. 우리는 아침 동이 트기까지 깨진 창가 근처에 떠나간 사람들 자리를 차지하며 비집고 누워 잠깐의 잠을 청한다. 어마어마한 24시간의 여정이었다.
놀라운 것은 사건 직후, 사고 당일, 이후 경찰도 기자도 그 누구도 우리에게 찾아와 정황을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와 동행할 것 같았던 탱크도 군인들도 그곳에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채 우리를 방치했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도 마치 없었던 일처럼 다른 하루가 흘러간다.
"알고 있던 세계의 파괴와 재조합, 더 큰 세상에의 이해와 만남을 맞이하고 싶다. 진 땀이 나도록 이 여행은 현실이다. 삶을 발견하고 아이처럼 놀라고 싶다. 다만 그럴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상상만이 실행의 동기가 된다. 상상과 현실의 조우. "
그러나 결국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적다. 그리고 그것은 미친 짓이었다.
죽음을 상상하거나 가늠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오는 용기. “순진한 무모함”
“남들이 보면 넌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멋진 여자인데, 나한테는 불안하고 위험한 사람이 되고,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밖에 안되나봐. 총알이 눈 앞을 지나가는 그저 소설로 읽었으면 즐거웠을 그런 말들을 나는 너한테서 들어야 해서 불안해하고 슬퍼했어.”
인도양을 마주하고 있는 아프리카 동남쪽 마푸토는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아직까지 묻어있는 곳이다. 높은 건물과 성당은 옛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하얀 벽, 주황색 지붕, 각기 다 다르게 생긴 여러 패턴과 구조의 집들과 야자수 나무, 커다란 대로변, 항구와 기차, 많은 것이 섞여있는 대도시이다. 커다란 도로변과 백화점, 각종 식당, 공원, 아이들이 뛰어 노는 학교가 있지만 게스트하우스 직원은 특정지역을 동그라미 치며 혼자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 걸까.
마푸토에서 만난 캐나다 사람 케빈은 잠깐 숙소 바깥에 야식을 사러 나갔다가 이곳의 물가에 소스라친다. 현재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가 여행을 온 그는 베를린보다 물가가 더 비싸다고 말한다. 실제로 마푸토에서 택시비는 그 기본료가 한국보다 비싸다. (버스는 200원 택시 기본료는 5000원) 그러나 현지인들이 타는 승합 버스는 저렴하다. 수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모잠비크를 찾고 있어 마푸토의 중심가에 있는 쇼핑몰과 음식점들은 모두 현지 평균가를 훌쩍 뛰어넘어 투자자들의 본 고장만큼이나(심지어는 훨씬 더) 비싼 가격을 제시하고 있지만, 현지인이 가는 동네 시장 한 끼 식사는 미화 2불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렇게 ‘외국인’이 찾고 이용하는 것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모잠비크 사람들’의 것은 1/10 가격으로, 마푸토 현지의 불균형하고 양극화되고 있는 경제 상태를 보여준다.
혁명, 개성, 매력 그리고 과격함이 있는 모잠비크 방문은 그 나라의 규모와 가지고 있는 다양성에 비해 굉장히 짧았다. 그러나 분명히 이곳에서 만났던 그 이미지들은 더욱 빛나고 강렬하게 내 가슴에 남을 것이다. 그 ‘다름’이라는 것이 나에게 모잠비크를 나름대로 정의할 수 있게 한다. 이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가득한 오래된 고층 아파트들 사이에서 강한 나라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짧은 여행으로 아직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