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na Dec 09. 2015

저는 한궈런 입니다

중국에서 마주한 한국인이라는 나의 얼굴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끼리 만난 자리에서, 본인을 한국인이라고 ‘굳이’ 소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나고 자라 밖으로 발을 떼 본적이 없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복작 거리며 사는 동안, ‘나는 한국인 이다’라는 정체성은 숨은 전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작은 집단들에 소속감을 느끼고, 나를 규정할 뿐이었다. ‘나의 나라’ 라는 단어는 도덕책 첫 페이지에나 나올 만한 진부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했던 것 같다. 가끔 공익광고를 볼 때나 잠시 감상에 젖을까 말까 할 정도.


 그렇게 잠재의식 속에만 머무르던 한국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요즘 자꾸 수면위로 떠오른다. 외국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코앞에 붙어있으며 어딜 가나 한국의 잔향이 묻어나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있는데도 말이다. 자꾸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나에게 묻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비슷한 듯 너무나도 다른 중국인들 사이에서, 그래 맞아 나는 한국인이었지- 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모두가 한국인인 나의 나라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한국, 그리고 한국인의 모양새는 조금은 새롭다.


  중국인과 생김새가 비슷한 한국인은, 언뜻 봐서는 중국인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이 한궈런(한국인)이냐고 묻는 경우들이 있다. 딱 들어도 발음이 이상하거나(한국인스럽거나), 꾸밈새가 어딘가 세련되거나, 무언가 상당히 급해 보이고 화가 난 것 같거나, 하는 등의 경우다. 이곳에 와서 마주한 이런 저런 상황들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깨를 으쓱하게 하기도 하고 낯뜨거워 얼굴을 못 들게 하기도 했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갈 때면 핸드폰으로 런닝맨이나 별에서 온 그대를 열심히 보는 사람들이 정말, 정말로 많다. 이렇듯 아직 한류는 유효한 모양이라, 비교적 젊은 세대들은 한국인을 약간의 선망의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국의 패션, 화장법, 성형까지 많은 걸 부러움의 눈빛으로 보는 것을 느끼곤 한다. 한 번은 나도 지하철에서 딱 봐도 화장한 것이 한국인 같다며 한국 화장품을 추천해달라는 중국 여자를 만난 적이 있을 정도다. 또한 이 곳 교민들의 생활은 대체로 중국 서민들 보다는 편안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좋은 식당에서, 옷가게에서, 비교적 여유가 있는 얼굴을 보며 한국인이냐 묻기도 한다.



  한국인의 이미지와 한류열풍은 동의어인줄만 알았던 나는, 이 곳에 와서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한국인의 모습도 여럿 보고 있다. 식당에서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또는 지저분하다고 성을 내는 테이블을 보며 중국인들끼리 ‘저 사람들 한국인이야’ 하고 수군대곤 한다. 소주 없이는 영혼이 없는 대한민국인지라, 어느 식당에 가던지 다짜고짜 소주를 달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역시 한국인이라며 고개를 젓기도 하더라. 가끔 관광지를 가면 중국의 이런 저런 서비스에 대해 한국어로 따지고 드는 사람들도 꽤 보았다. 마냥 자랑스럽기만 하던 ‘한궈런’이라는 나의 이름이 낯뜨겁게 변하던 순간들이다.


  두루뭉술하게 떠돌던 한국인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양면의 성격을 가진 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멋들어지게 꾸밀 줄 아는 꽤 댄디한 사람이지만, 통 큰 배려심을 가졌다고 하기엔 조금 성격이 급한 사람이랄까. 아무튼 외국에 나와 이러한 한국인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한국인의 얼굴이, 바로 내 자신의 얼굴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조금은 낯선 기분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