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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Nov 10. 2015

스물 한 살 휴학일기, 상하이에서

내 손으로 움켜쥔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

  중고등학교 때부터 나는 매일같이 지하철로 통학을 했다. 모두가 우르르 같은 역에서 내려서는 우르르 같은 환승통로를 향해 가는 항상 같은 풍경이 아침의 시작이었다. 하나같이 피곤에 찌든 표정으로, 내가 발걸음을 옮기는 건지 아니면 뒷사람에 떠밀려 움직이는 것인지 모르는 채 빽빽하게 지하철역을 채운 사람들. 어쩌다 한 방향을 향해 몰려가는 인파들을 뚫고 반대 방향에서 누군가 걸어오거나, 혹은 중간에 급히 멈춰서는 사람이 있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노려본다. 마치 해선 안 될 일을 한 사람을 대하듯 말이다.

 

  어느 날 내가 살아가는 모양도 매일 아침지하철역에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이 오롯이 존재하는 날들부터는 난 항상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처음에는 꿈 비슷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려는 종착역이 있었고, 그곳을 향해서 한 발씩 내딛는 순간순간이 의미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같은 교실에 앉아있던 모든 친구가 그랬듯이 나도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이라는 곳도 갔다. 성인이 되면, 대학생이 되면 무언가 짠- 하고 이루어진다던가 아니면 작은 변화라고 생길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고 있는 그 지하철역의 사람들은 그저 그 모양대로 더 급하게 움직이려는 것 같았다. 앞 뒤 옆 사람 할 것 없이 마구 밀치는 이곳 에서, 나는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를 잊고 그저 멍하니 떠밀려 다니고 있기만 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빨리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위에서도 조금 더 빨리 가려고 갖은 애쓰면서 말이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여기를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또 많은 인파들을 밀어내고 역방향으로 꿋꿋하게 걸어갈 용기도 나에게는 아직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왜 이 길에 서 있는지 아주 잠시 동안 고민하고 싶었다.

 

 

 ‘나 아무래도 다음 학기는 휴학을 해야 할 것 같아.’ 주위의 사람들은 어떤 스펙을 위해서냐고 되물었다. 어학연수라는 안전한 핑계를 대고 나는 급하게 짐을 싸서 중국 상하이로 왔다. 벌써 딱 세 달 전 일이 되었다. 세 달 동안 무엇을 이뤘니- 라고 물으면 나는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 대학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시험기간인 오늘도 느즈막히 일어나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지만 나는 이곳에서 내가 야채를 잔뜩 넣은 브런치를 먹으며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비 개인 날에 운동화를 신고 도보를 따라 몇 시간이고 낯선 거리를 걷는 것이 즐겁다는 것, 요리를 하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을 너무나도 즐거워 한다는 것, 샹차이 냄새 진한 중국음식이 나와 너무 잘 맞는다는 것, 고양이와 몇 시간이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신과 구가 오묘하게 뒤얽힌 이 도시에서의 일상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곳 에서의 나의 일상은 단순하다. 빽빽하던 휴대폰 캘린더는 텅텅 비어있다. 그렇다고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사람을 많이 만나지도 않는다. 다만 하루하루를 온전히 살아있는 내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아침에는 치엔삥을 한 손에 사들고 클락션이 시끄러운 거리 따라 학교에 가고, 짧은(아주 지나치게 짧은) 중국어로 택시 아저씨와 서로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즐거운 대화를 신나게 나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기타를 들고 공원에서 하루 종일 뒹굴기도 하고 또 가끔은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프랑스 조계지에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기며 몇 시간이고 떠들기도 한다. 몇 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을지 모르는 옛 건물들을 지나가며 취두부 냄새에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하고 우뚝 우뚝 솟은 새로운 건물들이 늘어선 푸동과 화려한 야경을 보며 사뭇 중국의 성장을 실감하기도 한다.


 

  이렇게 매일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면서 나는 바쁘게 나를 스쳐지나가기만 하던 시간을, 내 손에 움켜쥐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여유롭게 스물한 살의 나에 대해서 찬찬히 생각한다.

 

  

  물론 이 곳에서도 나는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도 한국과 크게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낯선 글자와 사람들 그리고 냄새들은 왠지 모르게 나를 자유롭게 한다. 적어도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내 맘대로 걷고 있다는 기분이 드니까 말이다. 인생의 아주 잠깐일 수 있는, 잡지 않으면 사라질 이 곳 에서의 짧은 단상들을 앞으로 종종 적어보려 한다. 제목은 휴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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