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니따 Aug 16. 2024

나의 근황은 곰팡이 핀 쌀

베트남 파견 4개월째

2023년 7월, 베트남 파견 4개월째의 이야기


지겹다, 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툭 나왔다. 툭 나온 눈물은 주룩주룩 흘렀다. 다른 게 아니었다. 어제 산 쌀에 곰팡이가 펴 있어서 그랬다.


현지 마트에서 샀던 쌀에서 쌀벌레가 나온 이후로 한동안 쌀을 안 먹었었다. 한인마켓에서 보통 쌀가격의 4배 가격은 되는 한국 쌀을 샀더니 괜찮은 것 같아 다시 샀는데 이번 쌀은 개봉했더니 오래된 신발장에서 날 것만 같은 냄새가 났다.


곰팡이 핀 쌀은 처음 봐서 확신을 할 수는 없었지만 냄새로 직감할 수 있었다.


퇴근 후였지만 본가에서 쌀 판매를 한다고 들은 회사 동료에게 연락을 해 '퇴근 후에 미안한데, 쌀 좀 봐줄 수 있냐'라고 물어봤다. 동료는 '좋은 쌀은 안 좋은 냄새가 날 수가 없다'며 '곰팡이 핀 쌀은 매우 위험하니 버리라'라고 했다. 가족에게도 연락해 보니 사진을 보고 곰팡이가 맞다고 했다.



이 나라에 와서 힘든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매일매일 먹을 걱정.


무슨 요리하지. 냉장고 안에는 뭐가 있지. 재료는 어떤 게 필요하지. 그 재료는 어디 팔지, 언제 사지, 어떻게 집에 가지고 오지..


첫째는 이제 싱글이 아니어서, 둘째는 한국이 아니어서 생긴 먹을 걱정이었다. 싱글이었으면 '아무 거나' 먹었을 텐데, 집에는 남편이 있다. 한국이었으면 먹을 곳이, 배달시킬 곳이, 장 볼 곳이 너무나도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다.


날이 더워 신선 식품은 배달받을 수 없다. 재료를 많이 사야 하는 날에는 자동차 택시를 탄다. 양손에 봉지를 들면 부피와 무게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냉장고에는 다 들어가는지 계산을 하고 장을 본다. 나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는 일.  베트남, 그것도 도시라는 곳에 사는데, '장 보는 게 힘들다’는 말은 왠지 엄살 같아서, 매일매일 끙끙거리면서 장을 보고 집에 들어오면서도 힘듦을 꾹꾹 누르고 살았던 것 같다.


그 부담감을 서러움으로 증폭시킨 것이, 웃기게도 이 곰팡이 핀 쌀이었다.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는데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 물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쌀 걱정하는 거 지겨워. 장 보는 것도 너무 힘들어.'


지금 생각해 보면 하찮고 웃긴 소리지만, 속으로만 생각했었지 말로 표현해 보기는 처음이었던 내 속내였다. 정말이지, 집에 밥 먹일 사람이 남편 혼자여서 망정이지(?) 이 상황에서 내가 자식이라도 있었다면 폭발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친, 남편 경력 2년인 나의 신랑은, 쌀은 본인이 가서 환불하겠다며, 장은 자기가 보겠다고 했지만 실현성 없는 소리였다. 남편은 주중에는 일로 매우 바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말만으로도 그 위로가 얼마나 크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쌀벌레가 나왔던 그때처럼 또 한동안 쌀 없이 며칠을 살았다. 결국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롯*마트에 가서 일본 품종 쌀 1kg 몇 개를 사 왔다. 쌀을 소분해 둘 통도 샀다.

'쌀은 무조건 적은 양을 사서 냉장 보관. 꼼꼼하게 씻기. 이렇게 해도 또 쌀에 문제가 생기면 난 얼마가 됐든 그냥 햇반만 사서 먹을 거야'라고 혼자 오기를 부려가면서 산 쌀은 그 후로 잘 먹고 있다. 이상하게 이때 이후로 집밥 요리를 대하는 내 태도도 훨씬 가벼워졌다. 되는 대로 살자!


베트남에 와서 몸도 아프기도 했고, 마음도 아프기도 했지만 이런 '주부로서의 아픔'은 처음 겪어보는 일.

내 근황은 곰팡이 핀 쌀.

작가의 이전글 하루 만에 까막눈이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