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하나뿐인 할머니의 고향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부산에도 급작스레 퍼지기 시작할 때쯤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바깥 외출을 최대한 하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드렸다. 인터넷을 쓰실 줄 모르는 할머니는 주로 우리가 사다드린 일회용 마스크 몇십장과 전화기, 배달서비스에 의존하며 지난 한달을 지내셨다.
코로나로 아빠의 학교 수업은 당연히 모두 취소되었다. 아빠는 여유가 생기면 집에서 답답하실 외할머니와 드라이브를 나가자고 했었고, 그것이 오늘이 되어 외할머니의 고향인 진교에 같이 갔다.
부산에서 차로는 경남 어디든 금방이다. 우리는 통영에 들러 충무김밥과 꿀빵을 사먹고, 진교 가기 전 거제까지 들를 수 있었다. 평소라면 따뜻해진 봄 공기에 더 북적거렸을, 지금은 코로나로 텅텅 빈 도로를 달렸다. 어쨌거나 봄꽃들은 제 할 일을 찾아 열심히 싹을 틔우고 있었다.
외할머니에게는 새엄마가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새엄마는 아직 진교에 살아계시다고 하셨다. 외할머니는 배와 천혜향, 그리고 통영에서 산 꿀빵을 보따리에 싸들고 가는 이 방문을 ‘살아있는 문상’이라 부르셨다. 외할머니의 고향이 진교인 것도, 외증조할머니가 살아계신 것도 오늘 처음 알게 된 나에게 살아있는 문상이란 말은 쉽게 소화되지 않는 말이었다.
진교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지 북적거림은 없었지만 꽤나 활기찬 느낌이었다. 지붕이 낮은 건물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고 마을 규모에 비해 눈에 띄게 많은 병원과 건강원을 보며 이 동네의 인구분포도가 조금은 가늠이 갔다.
전통시장을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기웃거리셨다. 호박과 땅콩으로 만든 간식이 있었는데, 옆에 서 있던 나에게 그 것을 사주고 싶으셨는지 ‘손녀 먹어볼래? 살 찐다고 안 먹으려고 하려나‘고 하셨다. 간식을 판매하던 꼬부랑 할머니는 곧바로 ‘이건 호박으로 만들어 살 안 찐다’며 간식을 새까만 봉지에 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봉지를 할머니의 손에 있던 5천원과 맞바꾸어갔다. 원래는 2천원어치만 사려고 하셨는데…
할머니도 할머니의 할머니한텐 못 당한다.
진교에서 처음 뵌 이모할아버지의 가족은, 나를 보자마자 ‘엄마 어릴 적과 많이 닮았다’며 나를 바로 알아보셨다.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 1명. 단촐한 핵가족 속에서 살아오다가, 처음 본 누군가가 나를 보고 엄마의 어릴 적을 떠올린다는 것이 어색하고도 신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인사를 마치고, 외할머니는 사위인 아빠에게 ’큰 나들이‘ 시켜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아빠는 삼천포, 엄마는 부산, 외할아버지는 밀양, 외할머니는 진교. 오늘 처음 가본 진교이지만, 외할머니의 고향이니 내 안에는 분명히 진교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