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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칭공학자 이한주 Feb 11. 2022

판단, 에고 혹은 직관

코칭 언어


판단하지 마라.
에고를 내려놓아라.
그리고 직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코치가 수련 과정에서 슈퍼바이저에게 자주 지적받고 고민하는 내용이다. 코칭 중에 떠오른 내 생각은 판단인가? 에고인가? 혹은 직관인가? 이 말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런 갈등 속에서 혼란스럽다.



- 판단

  판단이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리는 것(표준국어대사전)'이다.

간단히 어떤 기준에 비추어 이쪽인가 저쪽인가를 결정하는 거다. 좋음과 나쁨, 선과 악, 옳음과 그름, 유익과 해악, 쾌와 불쾌를 가리는 이분법이다.


  문제는 기준이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 판단에 시비가 따른다. 함께 사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세운 법이라는 기준도 적용상 얼마나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지 모른다.


  맥락과 상황의 복잡성도 판단의 쟁점이다. 마이클 샌델은 그 두꺼운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수많은 학자, 이론과 사례를 제시했지만, 다양한 관점과 문제를 제기했을 뿐 절대적인 정의를 결론짓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판단한다. 회색 지대에 머무르기보다 어느 한쪽에 서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나 보다. 판단은 자연스러운 사고 과정이다.


  그런데 왜 코칭에서 코치가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까?

'판단하다'는 영어로 judge, 즉 재판관과 동의어다. 코치가 판단하는 순간, 코치는 재판관이 되고 고객은 피고인이 된다. 코칭 관계의 핵심인 수평적 파트너십이 깨진다. 내 편이라는 신뢰 관계도 금이 간다.


  코칭뿐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판단은 건강하지 않다. 아무도 자신을 판단하는 사람을 환영하지 않는다. 절대 불변의 기준은 절대자의 영역이다. 예수님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다.


- 에고 ego

  프로이트에 의하면 자아는 이드, 에고, 슈퍼에고라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드는 본능적인 쾌락을 좇고, 슈퍼에고는 도덕적 이상을 지향한다. 그 사이에서 합리적으로 현실적인 충족을 추구하는 부분이 에고다.


  온전하고 전인적인 인간상을 믿는 코칭공학자로서 인간을 부분으로 쪼개는 환원주의에는 반대한다. 동시에 우리 안에 이드, 에고, 슈퍼에고와 같은 특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부분의 합이 전체는 아니지만, 전체 안에서 각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프로이트 이후에 에고라는 단어는 주로 부정적인 느낌으로 사용된다. 에고이스트라 하면 이기주의자, 자기 이익만 좇는 사람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에고를 '적'으로 돌리는 주장도 있다. 라이언 홀리데이는 저서 '에고라는 적'에서 에고를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이라 정의했다. 저자는 에고, 즉 오만, 자아도취, 지나친 자의식을 버리고 겸손한 배움의 자세를 갖추라고 강조한다.


  코칭에서 에고를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은 이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판단하지 말고 상대방에 귀 기울이라는 의미다. 그래야 판사가 되어 고객의 위에 서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 직관 intuition

  사전적으로 직관이란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이다. 간단히 말하면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아는 거다.  그래서 직관을 gut(내장) feeling이라고도 한다.


  척 보고 아는 것, 뭔가 수상한 낌새, 스치고 지나가는 연상, 뜬금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 등이 직관에 가깝다. 코액티브 코칭에서 코칭의 핵심 구성 요소로 호기심, 경청, 심화와 촉진, 자기관리와 더불어 직관을 꼽을 정도로 직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직관을 코치가 활용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원으로 본다.


  직관은 본능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고, 훈련으로 발달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 코치가 직관력을 키우는 방법은 직관의 가치를 믿고 많이 활용하는 거다. 과정에서 만났던 마스터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직관은 날것입니다. 그냥 두면 금방 상해요. 바로 뱉으세요.'


  코칭 중에 떠오른 직관이 있다면 이렇게 꺼낼 수 있다.

"제 느낌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좀 뜬금없지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판단하지 말고, 에고는 내려놓고, 직관을 활용하라고 한다. 문제는 코칭 중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판단인지, 에고인지, 아니면 직관인지를 어떻게 구별하느냐다.


  경지에 오른 고수는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내 수준에서는 구별이 어렵다. '그것은 네 에고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또 하나의 판단이 아닐까?


  수양이 부족한 나는 상대의 말을 들으며 계속 판단한다. 불쑥불쑥 에고가 올라온다. 가끔 직관 같은 것도 만난다.  판단을 중지할 수 없다.


  코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모든 상념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거다. 판단과 에고, 직관을 가리지 않고 고객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이야기한다. 다만 중립적인 방법으로.


고객: 아내와 말이 안 통해요.

코치: (부인의 말을 잘 안 들어주지 않을까?) -> 최근 아내분과 대화하며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고객: 요즘 애들은 충성심이 없어요.

코치:(요새 세상에 충성심을 요구하다니) -> 당신에게 충성심이란 어떤 가치인가요?


고객: 내가 너무 자존감이 낮은 것 같아요.

코치: (제가 봐도 그렇네요) -> 언제 그렇게 느끼시나요?


고객: (한참의 침묵)

코치:(갑갑하네... 이것은 직관인가 에고인가) -> 잠시 침묵하는 동안 방 안에 홀로 있는 아이가 떠 올랐어요. 혹시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결국 코치의 반응은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왔느냐에 상관없이 고객이 자신을 성찰하고 자각을 일으키게 하는 방향으로, 중립적으로 표현된다면 가치 있다. 특히 직관에 관해서는 그리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무엇을 던지는가 보다 고객이 어떻게 받는지가 더 중요하다. 고객은 창의적이다. 코치가 어떤 직관을 던지든 자신이 몰두하는 주제와 창의적으로 연결하여 의미를 만들어내곤 한다.


  판단인지 에고인지 직관인지 구별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모든 내적 자극을 환영하고, 고객을 위한 코칭 대화의 자원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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