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라는 기적
아내가 장 바구니를 정리하며 말했다.
"냉장고에 그라비아 넣어놨으니 먹어라~"
나와 아들은 얼굴을 마주 보고 깔깔 웃었다.
"엄마는 그라비아가 뭔지 모르니 네가 알려줘라."
아들 왈, "엄마, 그라비아는 가장 유명한 정력제야."
아니 이건 또 뭔 소리?
"어, 그라비아가 정력제? 맞는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알기로 그라비아는 비키니 사진 같은 거던데..."
아들이 잠깐 검색해 보더니 "아, 그렇네. 정력제는 비아그라다. ㅋㅋㅋ"
오래간만에 함께 웃었다.
아내는 얼마 전 안구 전막 수술을 해서 시력이 많이 약해졌다. 그래서 게맛살 크라비아를 그라비아로 잘못 읽었다.
아들은 원래 알고 있던 비아그라라는 단어로 그라비아를 대체했다.
나는 그라비아라는 소리에 비키니 사진을 떠올렸다.
(누가 제일 나쁜 놈인가?)
세 사람이 한 자리에서 각각 다른 이미지를 상상했던 거다.
우리는 외부 사물을 감각을 통해 지각하고 언어화한다.
타인에게 전해진 언어는 각자 나름대로 해석된 감각으로 인식된다.
생각해 보면 사람마다 감각 기관의 민감도(sensitivity), 내재된 경험과 지식, 해석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인간들이 소통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소통은 어렵다.
소통이 안된다고 상대를 탓하기 전에, 소통은 원래 잘 안 되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서로 노력할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