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에 대한 헌사
까다로운 출입 보안 수속을 마치고 고객사 캠퍼스로 들어섰다. 화단 곳곳에 안전 공모 문구들이 붙어있었다. 그중 유독 마음에 걸린 문장이 하나 있었다.
지금 걷는 이 길을
내일도 걸을 수 있기를.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 걷는 이 길, 당연히 내일도 걷겠지.
지금 내딛는 내 다리, 당연히 내일도 움직이겠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당연히 내일도 옆에 있겠지,
과연 그럴까?
탱탱하던 피부는 탄력을 잃고, 치기에 소주병을 따던 치아도 몇 개 사라졌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이었는데 이제 기성 꼰대가 되었다.
의리를 외치던 친구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고, 품 안에 귀엽던 아이들은 다 커버렸다.
가슴 설레던 로맨스는 죽었고, 따박따박 월급 주던 회사는 더 이상 내 둥지가 아니다.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
지금 내가 누리는 당연함을 돌아보자.
아내, 아이들, 어머니
팔, 다리, 몸
아직 돌아가는 머리
집
파트너사
고객
인연이 이어진 사람들
집 앞 편의점까지
언젠가 다 사라질 거다. 그래서 지금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겠다.
지금 걷는 이 길
감사하며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