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션 # 5 선택
멀리서 보면 더 잘 보이는 것
by 코칭공학자 이한주 Jul 21. 2021
“오늘은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하여 중간 점검을 하면 좋겠어요. 프로젝트 굿 대디를 시작한 후 무엇이 좋아졌나요?” 예상외의 질문에 강일은 멈칫했다.
“무엇이 좋아졌을까요. 음.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전보다 화를 덜 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남의 말을 끊고 내가 말하고 싶어도 좀 참죠. 남들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예민한 일이 생겨서 옛날 같으면 화를 냈을 상황에도 잠깐 한 숨 돌리고 얘기하곤 합니다.”
“아, 화를 덜 내고 예민한 상황에도 참으시는 그런 변화가 있으셨군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신지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허. 예전에는 화나는 상황이 되면 그냥 버럭 감정대로 해댔는데 이제는 한번 더 생각을 하는 것 같네요.”
“아하! 과거와는 달리 화가 날 상황에서도 한 번 더 생각을 하시는군요. 아주 짧은 순간일 텐데 그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그러고 보니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 같네요.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런 생각들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떤 도움이 되죠?”
“실수를 덜 하게 되죠. 그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오는 대로 말하고 화내서 여러 사람 힘들게 하고 상처도 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도 완벽하진 않아요. 화를 내고는 ‘아 조금만 참을 걸.’하고 후회하는 일도 많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어떻게 완벽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인식하고 또 선택하는 일이 계속되면 힘도 덜 들고 더 자연스러워지겠죠.”
“네, 습관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으로 이 주일에 한 번씩 코치님을 만나는 것이 제가 계속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께서 노력하신 성과죠. 그렇다면 만약 민기에게 ‘최근 아빠의 어떤 면이 달라졌는지’ 물어본다면 민기는 뭐라고 대답할까요?”
“글쎄요. 민기 입장에서 본다면 별로 달라진 게 없을 것 같네요. 요새 대화도 많이 안 하고 있어서. 그래도 굳이 찾는다면 제가 잔소리를 좀 덜한 것 정도겠어요.” 강일의 말 끝에 힘이 없었다.
잠시 침묵 후, 유 코치가 입을 열었다.
“지금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민기에게는 정말로 변한 게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편으로는 저도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게 과연 소용이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드네요. 코칭 받을 때는 기분도 업되고 뭔가 잘 될 것 같다는 희망도 생기지만 사실 막상 일을 하다 보면 잊어버릴 때가 많고. 여전히 아들은 공부를 안 하고 그걸 바라보면 속은 갑갑하고. 그냥 속 편하게 살던 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데. 솔직히 그런 생각을 했어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지 않으니 이 프로그램에 대해 회의도 들고 갑갑하시겠어요. 만일 그저 손을 놓고 속 편하게 살던 대로 산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 편한 삶이 되진 않겠죠. 아들과의 사이는 더 멀어지고 그럼 집안 분위기도 어두워지고.”
“그렇게 아드님과 더 멀어지고, 집안 분위기가 어두워지면 팀장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후, 참담하겠네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았나 후회할 것 같고. 끔찍합니다.”
“그렇다면 팀장님이 정말로 원하는 결과는 무엇인가요?”
“그거야 아들과 사이도 좋아지고, 우리 집안도 화목하고, 애들이 잘 커서 제 앞가림 잘하고, 저희 부부도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는 거죠.”
“우리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 볼까요? 눈을 감고 떠올려 보세요. 시간이 지나 팀장님의 칠순 잔치가 되었습니다. 어떤 모습이 보이는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강일은 등을 젖혀 앉으며, 눈을 감았다.
“제가 칠십이니 민기는 사십이네요. 윤하는 서른여덟 살. 모두 결혼해서 손자 손녀 셋씩 데려와서 북적거립니다.”
“그곳은 어딘가요? 또 무엇이 보이나요?”
“교외의 전원주택입니다. 날씨는 맑고, 마당에서 바비큐를 하고 있네요. 텃밭에서 상추 뜯고 고추 따서 삼겹살 파티를 하고 있습니다. 백발이 된 아내는 바쁘게 상을 차리고 있네요. 며느리랑 사위도 보이고, 손자들은 강아지랑 웃고 뛰어다니고 모두 즐거운 모습니다.”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거실에서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이 마당까지 들립니다.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에요.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이 틀어줬던 노래죠. 와 좋네요.”
“이 모든 모습을 듣고 보고 있는 팀장님은 어떤 기분일까요?”
“아주 뿌듯해요. 흐뭇하고. 아, 내가 인생을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가족과 함께 정말 행복한 모습을 그려 주셨네요. 이 날 성인이 된 민기가 아버지에게 생일을 축하하며 어떤 말을 해 주면 참 좋겠습니까?”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내 아버지라서 자랑스럽고, 감사하다고.”
강일의 감은 눈에 물기가 살짝 맺히고, 목소리는 떨렸다.
“지금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하아, 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은 없었는데, 제가 원하는 것이 참 소박하네요. 그러면서도 가족이 제게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칠순이 된 미래의 팀장님이 현재의 팀장님에게 한마디 조언해 준다면 어떤 말씀을 해 줄까요?”
잠시 침묵 후 강일이 대답했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 것 없다. 지나고 나니 다 별 것 없더라. 소중한 것을 지켜라. 애들은 결국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살더라. 어차피 네 맘대로 안 된다. 그냥 믿고 지켜봐 줘라.”
“또 뭐라고 하나요?”
“늙으니 건강이 제일 아쉽다. 젊었을 때 지켜라. 그리고 와이프에게 더 잘해라.”
“그 말씀을 들으니 어떠세요?”
“그 말이 정말 맞네요. 저도 젊었을 때 제 뜻대로 살아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거고, 애들도 자기들 인생이 있는데 제가 너무 걱정하고 불안이 많았나 봐요. 오히려 지금은 옛날보다 더 잘 사는 세상이 되었잖아요. 애들 걱정을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지금 저랑 아내랑 어떻게 건강하게 잘 살 것인가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네요.”
“지금 마음은 어떠세요?”
“맘이 많이 편해요. 신기하네요. 환경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제 맘은 편해졌네요. 아들의 인생과 제 인생이 따로 분리된 느낌도 들고, 그러니 오히려 어깨가 가볍습니다. 제가 앞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것 없이 각자 원하는 방식을 잘 사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인생이나 잘 살아야죠.” 강일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뭔가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신 것 같네요.”
“정말 그래요. 세상이 달리 보이네요. 인생이 제 맘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크게 욕심부리지 않으면 그 안에서 원하는 삶을 살 수도 있고요. 뭔가 제삼자의 시각으로 제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장기 둘 때 막상 장기 두는 당사자에게는 안 보이는 수가 구경하는 훈수꾼에게는 잘 보이는 것처럼.”
“네, 가끔 가까이에서 안 보이던 것이 오히려 멀리 떨어지면 잘 보이기도 하죠.”
“그러게요. 실제로 제가 요새 노안이 왔는지 서류를 멀리 떨어 뜨려야 글자가 보이더라고요. 하하.”
“그러시군요. 하하. 자, 오늘 정리를 할까요? 오늘 저와의 대화를 통해 정리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아요. 큰 욕심 없이 건강하게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그동안 너무 불안해하고 조바심을 가졌었네요.”
“오늘의 성찰을 아드님과의 관계에 적용해 보신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음, 제가 좀 떨어져서 봐야 될 것 같아요. 그러면 서로 더 편해질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도를 해 보시겠어요?”
“아들의 행동을 인정해줘야 하겠습니다. 어차피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거니까 아주 나쁜 일만 아니면 자기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둬야겠어요. 그래도 될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아드님의 행동을 인정해 주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렇게 되면 자기가 한 일에 책임감을 갖지 않을까요? 무슨 일이든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결과가 잘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안 되는대로 자기가 감당해야 하니까. 그렇네요. 좀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지금의 팀장님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 책임감 있게 받아들이죠. 다음 만날 때에 팀장님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