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의 성탄제

흐린 기억 속에서 엄마는 12

by 작은노래

크리스마스.

엄마는 오늘 데이케어 센터에 안 가신다. 푹 쉬신다.

새벽마다 깨서 기도하시고 성경도 읽으시고 책도 뒤적이시던 분이 이제 기회만 있으면 늦잠을 주무신다.


아기들은 틈만 나면 잔다. 그러다 커 가면서 잠이 조금씩 줄어든가. 장년을 지나 노년에 길목에 이르기까지 잠은 계속 줄어든다. 그러다 그 정점을 지나면 다시 잠이 많아진다. 늙으신 어머니는 도로 아기가 된 듯 틈만 나면 누우신다.


아주 늦게 아침을 드셨다. 천천히 천천히

늘 바쁜 생활에 길들여진 나는 밥도 허겁지겁 먹는다. 빨리 먹고 뭐 해야지, 이런 생각이다. 그래서 늦게 늦게 꼭꼭 씹어 천천히 식사하시는 엄마를 보며 좀 조바심도 생긴다. 수저에 이것저것 얹어드리고 한참 기다렸다가 국물도 떠 드린다. 물론 숟가락 젓가락 다 사용하시고 스스로 식사를 하실 수 있지만 이 반찬 저 반찬 골고루 드시지 않는 것 같아, 내가 더 서두른다.


다 드셨다. 약을 드신다. 잘 못 삼키신다. 연하(嚥下)작용이 안 되는 건 노인의 특성이다. 근육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또 치매 환자의 특성이기도 하다..

"엄마, 꿀꺽! 고개 좀 들고 꿀꺽!"

"엄마 눈 왔는데 좀 보실래?"

손사래를 치신다. 조금이라도 걸어보게 하려는 내 목표는 어긋나버린다.

포기할 수 없다.

유튜브 노인체조 동영상을 튼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체조다. 손뼉치기, 손 마주대기, 북치기...

몇 발자국 걷는 것도 싫다던 분이 체조는 열심히 따라하신다. 이럴 땐 모범생이다.


엄마와 쌍화차 한 잔씩 마신다.

아무도 안 오냐고 또 물으신다.

티브이 보다가 꾸벅꾸벅 하신다.

침대서 잠시 주무신다.

이때다 싶어 컴퓨터를 켜고 뭐라도 하려는데 집중이 잘 안된다.


엄마가 부르신다. 화장실 가신다고...

이런... 벌써 한 무더기 나왔다. 바지에 안 묻게 조심조심 기저귀를 내린다.

잘 닦여드려야 한다.


티브이 보시는 동안 책이라도 읽을까? 아니다. 점심 준비해야 한다.

점심은 간단하게 만두를 찐다.


손자 손녀 어디 다니는지, 뭐하는지 한 차례 이야기한다. 똑같은 이야기를 나도 질리지 않고 매일 한다.

고라니가 고구마 순을 먹은 이야기를 또 하신다. 농사짓는 아들의 농작물을 먹은 짐승이라 생각해서 뇌리에 콕 박혔나보다.


텔레비전을 본다. 세계여행 프로그램을 본다. TV 보며 리액션 하는 사람들이 이상했는데 엄마와 있을 땐 나도 강력하게 리액션 한다. 그래야 엄마도 관심 갖고 TV를 보시니까.


잠깐 누우시겠다고 한다.

엄마를 일으키고 앉히고., 눕히고... 팔근육이 좀 땡기는 거 같다.


슬슬.. 고립감이 느껴진다. 적막감이 느껴진다.

누군가 전화해 줬으면 좋겠다.


다시 저녁 준비, 엄마가 좋아하는 간장 게장이다. 이건 밥도둑이다. 잘 드시니 저녁 식탁에 활기가 있다.

식사 후 다시 티브이 시청 모드.. 여섯시 내 고향이다. 나의 리액션도 발동이 걸린다.


아. 아무것도 안 한 하루였네! 그렇게 느끼자 허무해진다. 이것도 병이다. 책 읽거나 글 쓰거나 ... 이런 걸 해야 생산성 있다, 의미 있다 느끼는 거, 정말 병이다.


약간 두통이 온다. 하루종일 아파트 공간에서 창 한 번 열지 않았구나.


반짝반짝!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는 빛을 낸다.

아, 오늘이 크리스마스로구나.


엄마와 나의 성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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