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김칫국을 먹다가

흐린 기억 속에서 엄마는 11

by 작은노래

콩나물김칫국은 엄마가 좋아하시는 국이다.

최근까지도 나는 엄마가 그 국을 좋아하시는지 잘 몰랐다. 예전 우리집 식단에 잘 오르던 국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엄마의 식성까지 헤아리는 살뜰한 딸이 아니어서이기도 했다. 엄마 식사를 챙겨드려야 하는 때가 온 뒤부터 엄마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 지 하나하나 알아가기 시작했다.


오늘 식단은 콩나물김칫국에 두부조림, 굴비 구이, 콩자반이다.

" 엄마 좋아하시는 콩나물김칫국이네. 엄마 어릴 때 이거 많이 드셨어?"

엄마 얼굴이 밝아지신다. 어릴 때의 기억은 아직 젖지 않은 부분이다! 엄마의 기억은 물에 젖는 한지 마냥 망각이 조금씩 조금씩 엄마의 기억을 적시고 있었다.

"부엌에 가마솥이 세 개 있었는데, 한 솥에는 물을 끓이고, 또 한 솥에는 밥을 하고, 나머지 한 솥에는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콩나물 넣어서 국을 끓였어."

어릴 때 자주 드시던 국인가보다.

"굴비 두름도 부억 문에 걸려 있었지. 손님이 올 때 한 마리씩 빼서 구웠어. 아버지 상에 가끔 드리고...어쩌다 식구들도 한 번씩 맛보고..."

그렇구나. 콩나물김칫국도 굴비도 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음식이다.

참 묘하다. 나도 어릴 때 먹던 음식이 그리울 때가 많다. 좋아해서 먹었기도 했겠지만, 기억 속 음식이기 때문에 좋은 것도 있다.


"어, 그러고보니 두부조림은 내가 좋아하던 반찬인데."

어느 허기진 날 저녁이었을까? 나는 엄마가 두부를 냄비에 썰어넣고 이것저것 넣은 양념장을 부어 보글보글 끓여 두부조립을 해주셨다. 너무 맛있었다. 그 뒤로 가끔 엄마에게 먹고 싶다고, 해 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나한테도 어린 시절 추억의 음식들이 있네. 두부조림도 그렇고, 김치찌개와 김도 그렇고....."

큰 냄비에 김치찌개를 가득 끓이고, 김 30장을 쟀는데 우리 4남매가 둘러앉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던 적이 있다. 아이들의 먹성에 엄마는 놀라셨고, 그 이야기를 두고두고 하셨던것 같다.


추억의 음식은 또 있다. 일본식 전골이라 해야할까? 스키야키가 생각난다. 배추나 양파 같은 야채와 소고기를 넣고, 달큰한 간장 소스를 부어 끓인 음식이다. 고기만 구워 먹으면 먹을입이 많으니 엄청난 식비가 들었을 것이다. 많은 야채와 약간의 쇠고기를 넣어 고기를 충분히 먹은 듯한 포만감을 주는 음식이었다. 우리 입을 속이는(?) 음식이었다고 할까?

"엄마, 스키야키 생각나? 일요일에 식구들이 모여서 해 먹었잖아. 한번은 우리 모두 스키야키를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가 돼지고기를 사온 거야. 돼지불고기 해 먹는다고. 돼지고기가 소고기에 비해 훨씬 쌌나봐."

우리는 물론 아빠까지 왜 돼지고기냐고 실망해서 툴툴댔다.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절약하려던 엄마의 고육지책을 이해하기에 우린 어렸고, 아버지도 철없는 가장이었다. 엄마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몰랐던 나는, 엄마가 살아온 세월도 그 고충도 몰랐다. 이럴 때는 정현종 시인의 시 한 자락이 떠오른다


"사랑은 항상 늦게 온다.

사랑은 생 뒤에 온다.

-정현종, '사랑의 꿈'에서


기억이 끈들이 잘 연결이 안 될 때면 아무 말 없이 식사만 하시던 엄마가 콩나물김칫국 때문에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겨울이면 만두를 빚어 불 안 때는 방 하나에 멍석 깔고 늘어 놓아 탱탱 얼게 했다고 그 만두로 가끔씩 만둣국을 만들어 먹었노라고. 그러고보니 엄마는 만두도 좋아하신다. 음식은 맛이기도 하지만 추억이기도 하다.


엄마는 오늘 콩나물김칫국을 뜨시며 오랜 세월을 건너 어린 시절 고향집에 다녀오셨다. 나도 내 어린 시절 한 자락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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