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에게 혐오로부터 애증을 담아

여섯 모금: 양귀자 <모순>

by yannseo
결국, 오늘도 모순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렇게 인생은 한층 더 비겁해졌다.




모자이크, 치지직 거리는 소리, 일그러지는 화면과 블러로 번진 형체.


조금이라도 보이면 큰일이 나버리는 듯, 다급하게 그리고 과감히 시선에 정지선을 긋는 기법은 당신들에게도 존재하려나. 나는 아마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분명히 있다.


머리가 크고 몸이 자랄수록 기억력이 감퇴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거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헤실헤실 웃고 다녔던, 학교가 일찍 끝나고, 학원이 쉬는 날인 걸로 행복했던 그 시간 동안에는 기억력이 내 자랑거리였는데. 이제는 ‘내가 뭐 하려고 했더라.’가 일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블랙아웃도 아니다. 미간에 힘을 주면서까지 흐릿한 화면을 들여다보면 알듯 말듯 답답한 심정까지는 닿는다. 이 짓을 하다 보면 누군가 고의로 구긴 듯한 장면에도 접근한다. 더는 알면 다친다는 뇌가 보낸 신호인지, 노력하면 떠오르는 건망증이랑은 다르다. 틀림없다. 그건 위험신호다. 기억력 감퇴가 아니라 기억 검열이다.


노란 딱지가 붙은 이유를 알고 싶어 타임라인을 역주행해 보면, 나도 금세 외마디 탄식으로 자각한다. 위험 센서가 요동치기 직전이었구나. 이걸 흑역사라고 해야 할까. 흑역사라고 단정 짓기에는 그 역사가 너무도 우람해서 단어가 무게를 전부 감당할 수가 없다.


신념, 가치관, 희망, 소망, 평소에 내가 추상으로 삼던 쓸모들이 아무 저항도 없이 너저분하게 뒤엉켜버린 모습. 이걸 두 눈 뜨고 직관하려고 한다니. 얼마나 추할지 감도 잡히질 않는다.


뇌마저도 모순덩어리를 가지런히 정돈하기 힘들었는지, 혀를 끌끌 차며 모자이크 처리로 시청 제한을 걸어놨다. 그래도 주인에게 최소한 정은 남겼다. 뇌는 이미 맨눈으로는 도저히 못 볼 주인을 예상했다. 징그럽고 소름이 끼쳐서 찢어버리고 싶은 욕구조차 허비하지 않도록 통짜로 편집해 줬다. 결국 그 기억은 단돈 ‘혼돈’으로 후려칠 수 있는 아주 얄팍한 향수로 흘러갔다.


그런데 어째설까. 안진진은 뇌가 훌륭하디훌륭할 만큼 얇게 빚어놓은 걸작에 커다란 바위 하나를 던졌다. 머릿속은 그 거대한 흉물을 감출 새도 없이 고스란히 들통나버렸다.



image.png



이모가 운전하는 차를 타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려서는 자주 이모의 차에 담겨서 이모 집으로 옮겨지곤 했었다. 다급할 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구조 요청은 이모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중략) “그러엄. 사실은 말야, 내 운전 실력이 바로 너희들 때문에 부쩍부쩍 늘었다는 것 아니니. 속도위반, 신호위반하는 것도 다 그때 배웠단다. 너희 집 아니면 내가 무에 그리 급하게 달려갈 일이 있었겠니? 그때는 말야, 삐오삐오 하는 구급등 있잖아? 그걸 하나 살까도 생각했었는데 너희 이모부가 반대해서 못 샀지. 그걸 자동차 지붕 위에 얹고 달려보면 되게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말야.” 이모는 아직도 구급등을 얹어놓고 달려보지 못한 것이 못내 섭섭하다는 표정이다. 어머니나 나에게는 수치스러운 기억이 이모에게는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것.


이때부터였다. 안진진이에게 단단히 걸려들었던 건.


가난으로 뒤덮인 그녀의 일상에는 풍족한 돈보다 공허가 가득했다. 그러나 안진진의 가난은 우울감으로 인한 공허라기 보다, 덤덤함에서 묻어나오는 묘한 당당함 때문인지, 독자들에게 감정으로 승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무감정 상태인 공허라고 해두면 좋겠다. 여하튼 그녀가 풍기는 무료함은 보는 이에게 삼삼한 첫인상이 되어주었다.


이런 흐름에서 이모는 감초였다. 귀에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통통 튀는 생기발랄은 퍽퍽했던 분위기에 딱 맞았다. 환기가 필요했던 나는 이모의 번지르르한 입담에 절로 빠져들었다. 기어이 그녀가 삐오삐오 구급등을 입에 올리기까지 내 정신을 내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안진진은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나를 깨웠다. 맞다. 삐오삐오 구급등으로 미화하기에는 안진진의 가난이 아무리 덤덤하다고 해도 재미를 볼 수 있는 소재는 아니었다. 심지어 가정폭력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을 그녀에게 삐오삐오 낭만이 웬 말인가.


독자로서의 욕구에서 인간의 도리로, 안진진의 한마디로 나는 수치스럽게 뒤집어졌다. 솔직히 안진진이 치사한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일찍 이모에 대한 본심을 말해주었다면, 미화를 동조하는 공범이 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렇듯, 안진진이 구사하는 언어는 덫이다. 물 흐르듯 무심해서 나도 모르게 가벼워졌다. 시선의 무게도, 사유의 무게도 앞으로 생길 일에도 덩달아 무심해져 버렸다. 그러다 갑작스레 날카로운 칼날이 내 살갗을 건드렸고, 따끔함에 흠칫 놀라 뒤늦게 경계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내 이중적인 모습은 비칠 대로 다 비치고 난 후라서 아무리 외양간을 고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안진진이가 만든 덫은 시작에 불과했다. 겨우 가려두었던 모자이크가 벗겨지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자신이 일몰에 돌아오는 이유를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의 아버지 말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이 저켠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 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황혼, 낮과 밤이 충돌하는 시점에만 느낄 수 있는 어스름한 기분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놀랍게도 안진진네를 위태롭게 하고, 급기야 진진이 이모에게서 삐오삐오 소리를 듣게 한 주범. 이상하게도 그는 악취가 아닌, 사람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단내를 풍기고 있었다. 푸른 어둠에 미아가 되어버리는 그를 연민 없이는 바라보기 힘들었다. 가정폭력은 씻을 수 없는 죄인데도, 그를 비난하고 싶더라도, 같은 인간으로서 어정쩡한 시간을 돌아다닌다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나도 그와 같이 저물녘 앞에서 무너졌다.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어.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우리들 머릿속을 오고 가는 생각,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무엇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삼을 수 있을까. 우리들 삶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 아버지가 가르쳐준 중요한 진리였어. 아버지가 잘못한 게 있다면 너무 많이 생각햇다는 것이지. 자기 용량을 초과해버린 거야. 그러면 곤란하다는 것도 우리 아버지가 내게 남긴 교훈이고.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이 한평생 살고도 못 가르쳐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어. 그것으로 이미 우리 아버지는 자식한테 해줘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봐.”


안진진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그녀도 그를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손찌검을 휘두른 사람임에도 그녀는 아버지가 의무를 다했다고 말한다. 생각하는 법을 배운 안진진이 되레 아버지를 생각하는 힘을 길렀고, 나에게도 그런 힘을 전수해 줬다. 무쓸모조차도 쓸모와 한 끗 차이라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일까. 아버지의 모순은 안진진을 넘어 내가 있는 곳까지 전이됐다. 그렇게 숨어있던 내 모순이 서서히 다시 재발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절이 지난 뒤에 홀로 정리한 생각이지만, 우리가 이모부를 비난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주리와 주혁이는 이모부의 자식들이었고, 나와 진모는 술주정뱅이의 자식들이었다. 이모부가 누구를 더 사랑했겠는가. 생선살 한 젓가락 우리에게 떼어주기를 아까워했던 이모부지만 아버지의 사업자금으로 갈치 백 마리, 아니 천 마리, 만 마리 살만한 돈을 빌려주었고 결국 돌려받지 못했어도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았던 것을 어머니는 왜 잊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모처럼 갈치를 탐하는 식성이 아닌 탓에 내가 이모부에게 관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이모가 진진과 진모를 매번 구하러 갈 때면, 두 아이를 돌보는 일 역시 이모부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모부는 당신네 자식이 1순위였고, 진진과 진모에게 생선 살은 아까운 관심이었다. 안진진이 설명하는 이모부는 너무 건조해서 그다지 정이 가지 않았고, 솔직히 생선 에피소드에서는 완전히 재미없는 남자로 굳어졌다. 그러나 안진진의 모순화법은 또다시 나를 무안하게 했다. 그 냉랭했던 남자가 한 식구는 금방 먹여 살릴 돈을 깔끔히 빌려준 사실로 안진진은 변호했다. 게다가 뒤이어 묵직한 팩트를 날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안진진의 화법은 치사하다고 말한 것이다. 보는 사람한테서 온갖 모순적인 면모를 다 끌어내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버린다. 선과 악, 뚜렷한 경계, 깔끔한 결론. 안진진과 함께하게 된 이상 편안한 세계관은 좀처럼 허락되질 않는다. 감정선이 최대한 복잡해져서 혐오는 연민으로, 연민은 애정으로 뒤섞여 그녀의 사람들과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친밀감을 형성하게 된다.








비비추 때문에 우리가 ‘그날 오후’에 도착한 시각은 서산으로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바람은 서늘했고, 노을은 아름다웠다. 가장 아름다운 오후 시간에 우리는 제대로 ‘그날 오후’에 도착한 것이었다. 몇 시 몇 분까지 시내로 들어가 몇 시 몇 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봐야 하고 몇 시에 저녁을 먹어야 하는 시간표를 상비라고 다니는 사람들한테는 찾아오기 어려운 우연이었다.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처음으로 나, 안진진의 사랑을 상면한 이후 내 기분은 급격히 저조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나는 다만 이것이 사랑인가, 하고 사랑을 묻다가 이것이 사랑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답했을 뿐이었다. 오직 그것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가라앉기만 했다. 걸음은 자꾸 허방을 디뎠고, 눈길은 쓸쓸하게 텅 빈 허공을 헤매었다. 마음자리 어딘가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겨서 거기로 가을 찬바람이 쉭쉭 드나들고 있었다.


모든 일에 차질을 허락하지 않는 나영규, 우연을 인연으로 둔갑시키는 김장우 둘 사이에서 안진진은 사랑을 고뇌한다.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면 저울질일 수도 있겠지만, 두 남성이 가진 스타일은 안진진에게 정반대로 필요했다. 적당한 타협과 현실이 보장된 삶, 그리고 불안하지만, 한순간마다 간드러진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삶. 그 사이에서 사랑을 정의하는 안진진은 어느 한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언어 하나로 죄인에게도 선처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면, 사랑은 더욱 모순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찬바람이 유독 더 차게 느껴지는 것. 사랑하기 때문에 시선은 허공을 가르고, 마음에 무게를 싣느라 머리는 둥 뜨는 것. 사랑이라는 건 아름답다는 말로만 배워왔었는데, 사랑이 아름답다는 믿음은 머릿속에서 미화된 이념이 아닐지. 사랑을 담는 글자들에서 눈앞이 까마득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준 안진진은 단연 대단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는 해. 물론 결혼은 아직 생각 중이지만.”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나는 지금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길고 긴 모순의 회오리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는 안진진이 나는 답답하진 않았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하루가 항상 눈앞에 닥쳐오고, 나는 그 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살아남고 있다. 그래서 안진진에 동감한다. 사랑 앞에서 오직 솔직함만 내세운다면, 충분히 사랑이 뿌리를 내릴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상대도 그렇지만, 본인 역시 알지 못했던 자신과 만나야 후회와 자책, 방황을 거치며 실컷 두꺼워질 수 있다. 나 자신의 모순을 겪는다는 건, 결국 타인의 모순 또한 용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안진진은 그래서 치사할 수 있었다. 나영규와 김장우를 동시에 이해하는 방식으로, 그녀는 자기의 사람들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는 나까지도 끌어안았다. 오직 모순적인 화법만으로.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진모의 행동을 꾸짖는 천사의 얼굴은 엄격했다. 그건 옳은 말이었다. 졸개들과 더불어 연적의 뒤통수를 몽둥이로 갈겨대는 짓 따위는 해서는 안 될 일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나라면 주리처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은 네가 해석하는 것처럼 옳거나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냐.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 네가 하는 박사 공부는 그렇게 단순한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보는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어. 나도 아직 잘 모르지만.”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다는 네 말은 핑계 같아. 내겐 교활하게 들려. 세상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가 애써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겠어? 난 지금 정말 슬프다.”


남 부러울 것 없이 승승장구해 온 이모의 딸 주리는 대담한 일침을 날린다. ‘우리가 애써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옳은 세상을 살기 위함이다.’. 맞는 말이다. 이치에 합당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악은 절대 금물이라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진진은 그런 이상주의로 살기엔 출발선이 뒤떨어져 있었다. 세상이 추구하는 선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모순과 손을 잡고 허들을 넘어야 했다.


주리의 일침은 책 너머에 있는 내게도 꽂힌다. 생존해야 할 때면 난 기꺼이 교활해졌다. 무언가에 씐 듯, 자존심도 잃어가면서 욕구를 충족하고, 이성적인 판단은 뒷전이었다. 빙의가 끝날 때쯤이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과 자책에 휩싸여서 한동안 입을 꿰매는 형벌을 내린다. 내 인생에 모순을 뺀다면, 과연 남는 삶이 있을지 모를 정도로 삶은 모순으로 꽉 차있었다.




거구의 중년사내를 사흘 울린 식이요법,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주리에게는 처음부터 절망 따윈 없었을 수도 있었다. 젓갈이나 장아찌로 비유할 수 있는, 삶의 다른 방법들을 주리는 애시당초 알지 못한 채 성장했다. 세상이 그 애를 단련시킬 수도 있었겠으나 이모와 이모부의 성실한 방어로 그런 기회들은 철저히 원천봉쇄되었다.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여전히 내 모순에 대한 자숙은 끝내기 싫다. 용서하기에는 너무도 흉측해서 더 이상 들춰내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안진진은 꾸역꾸역 검열해놓은 내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무덤까지 가져갈 모자이크들이 하나 둘 벗겨졌다. 표지를 열기 전까지만 해도 모순을 끔찍이 싫어하는 주인공의 훈계로 이어질지 두려웠는데, 결코 아니었다. 그저 모순을 겪어본 사람이 전해주고 싶은 포옹에 가까웠다. 안진진은 인생을 누구보다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었다. 몸에 해롭더라도 젓갈이나 장아찌로 맛있게 살았고, 그 힘으로 맛있게 사랑을 했다. 그런 그녀는 활자 밖에 있는 모든 모순들에게 두꺼운 위안을 건네고 있다.




나는 정녕 그날의 다짐을 성취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스물다섯 이전의 졸렬했던 내 인생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라도 주어진 내 삶에 전력투구하고 싶다는 그 가상한 각오가 이렇게 무너지는가. 나에게 있어서 결혼은 전력투구할 내 삶의 중대한 출발점이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여러가지 결단 중에서 나는 결혼을 선택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의외의 사건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말한다. 그럴 줄 알았어. 예감하고 있었던 일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건은 언제나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일이 현실로 드러날 줄은 알았지만, 그 일이 ‘오늘이나 내일’ 일어난다고는 믿지 않는다. 매일매일이 오늘이거나 혹은 내일인데.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일그러진 과거를 버리고자, 한동안 좁은 방에 스스로를 가둬놓았다. 어질러진 자아를 설명할 언어들로, 어긋난 틈을 어떻게든 메우려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차질이 없도록, 군더더기 없는 모습으로 미래를 단장해 두었다. 그러나 감금 생활이 무색해지게 지금도 나는 한층 비겁해졌다.

예감보다 훨씬 이르게 다가온 돌발은 아직도 나를 모순으로 데려간다.


아마 오늘도, 내일도, 이전에는 내게 없던 것들이라 하더라도 나는 알지 못했던 모습과 공모하며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허나 만약 내가 삶에 애정이 없었다면, 살아갈 의지가 전혀 남아 있질 않았다면, 애초에 졸렬하게라도 살아남으려 했을까. 모순이 내 인생에 대한 대가라면 기꺼이 비겁해질 만하다. 또 혐오스러운 고난이 이어지겠지만, 단조로운 행복에 안주해 더 짭짤할 기회를 놓치는 건 더 비참할 테니.


끝내 안진진은 모자이크를 전부 벗겨버렸다. 그리고 애증을 담아 나를 모순으로 향하게 한다.



image.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