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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nseo Mar 25. 2024

꼬리표

교수님이 마련해준 자기반성의 시간.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가 충격적이어서 급하게 메모장을 켰다.


'fake news', '가짜뉴스'라는 단어 사용에 대한 지양의 필요성.

처음에는 왜지 싶었다.

교수님께서 피력하신 주장은 꽤나 설득력있었다.

'언론인에게 뉴스란 존재 그 자체다. 그런데 존재 앞에 가짜를 붙여놓으면 어떻게 되나. 언론인의 정체성을 부정해버리는 꼴이 된다.'

요즘 초등학생 뉴스에 대해 물어보면, '다 가짜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한다.

이제 우리에게 언론이란 '가짜'의 표본이 되어버렸다.

저 네글자가 생기기전까지는 나름 언론이란 정의의 상징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부정적인 인식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단어 하나로 어떠한 정체성이 부정당했다.

단어 하나로 어떠한 정체성에게 '프레임'이 씌워졌다.

다양한 인식의 가능성이 사라졌다.

그것에게 장점이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꼬리표'란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꼬리표를 달아왔을까.

얼마나 많은 존재를 내멋대로 정의해버렸을까.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을 죽여왔을까.

1분도 채 안되는 시간 속에서 낯이 뜨거워졌다.


그리고는 상상도 못한 대상에게 미안해지기도 했다.

무려 2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정체성을 부정해왔다.

'겸손'이라는 걸 한답시고, 계속해서 꼬리표를 달아왔다.

너무 많은 한계를 그어왔다.

그 대상은 내 자신.


스스로의 존재한테도 함부로 대하는데, 남들에게 꼬리표를 못 달 이유는 없겠지.

어리석은 나는, 오늘도 수 많은 꼬리표를 달고 있었음을 의외의 순간으로부터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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