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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nseo Mar 25. 2024

우리가 디씨 가문에 끌릴 수 밖에 없는 이유

디터람스, 디즈니

머리로는 비판하고 싶지만 몸은 거부하지 못했던 경험?

인간에게는 이성의 힘이 존재하지만, 육체적인 감각에 이끌려 움직이기 마련이다. 다양한 브랜드들도 우리의 동물적 감각을 날카롭게 건드리곤 한다. 세상에 완벽함이란 거의 드물기에 대중들은 이들의 허점을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감각을 사로잡은 브랜드는 끊임없이 성장한다. 디터람스, 디즈니. 이들도 분명히 허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끌림'이라는 본능은 이들에게 확실한 무기가 되었다.


BRAUN과 디터람스의 합작, SK축음기

산업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BRAUN과 협업하며 다양한 가전제품과 전자기기를 생산했다. 그 중에서 손꼽히는 프로젝트는 백설공주 시리즈. 백설공주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백설공주의 순수한 컨셉에 맞게 단순하고 깔끔하다는 이유로 ‘백설공주 시리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가장 상징적인 제품은 ‘백설공주 관’이라는 별명을 가진 브라운 SK 축음기이다. 턴테이블과 레코드 보관함을 덮는 투명 아크릴 뚜껑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이 뚜껑으로 인해 ‘백설공주의 관’이라는 명칭을 지닌다.


백설공주와 함께 환영받지 못한 SK 축음기

하지만, 백설공주의 관이라는 별명은 이 뚜껑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생긴 별명이었다. 백설공주의 관은 독사과를 먹은 공주의 무지함의 결과물, 그리고 왕자의 키스로 살아난 수동적인 모습이 부각된 공간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공간적인 의미로 그의 축음기는 마냥 달가운 환영을 받진 못했다.


디즈니와 디터람스의 평행세계

당시 디즈니에 대한 대중들의 날카로운 시각은 디터람스의 축음기로도 흘러갔다. 디터 람스와 디즈니는 디자인의 측면에서 백설공주라는 명칭을 공유할 뿐, 겉으로 드러나는 연결고리는 없다. 그런데 둘은 마치 평행세계에 놓여 있듯, 서로 닮은 곳이 많다. 공주의 순수함이 브랜딩으로 작동한 점과 이 브랜딩이 비판거리가 되어버린 점.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 사람들은 디터람스와 디즈니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을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인간의 육체적 감각에 있다.


청각적 끌림: 제한적인 상황에서 최고의 음악과 최고의 쾌락을.

디즈니 작품과 디터람스의 축음기에는 '음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백설공주의 꿈과 환상을 담은 사운드 트랙들을 비롯해 온갖 논란이 있었으나 라푼젤에 이어 겨울왕국까지 디즈니 프린세스의 사운드 트랙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마다 히트를 친다. 스토리에 대한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와 음악간의 테마성을 유지하며, 디즈니만의 정체성을 지켜갔다. 2-3시간 동안 펼쳐지는 한정된 이야기 요소들을 시청자들에게 가장 완벽하게 전달하기 위해 ‘음악’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 디즈니의 생존 비법. 또한 영화에만 갇히지 않고 평소에도 디즈니를 즐기도록 하기 위해 사운드트랙 앨범을 출판하기도 한다. 음악이라는 장치로 대중들에게 극대화된 청각적 쾌락을 선사하는 디즈니다.



한편, 턴 테이블제한적인 특성이 있다. 디지털 음악은 무한히 발전하는 알고리즘으로 대중들에게 안성맞춤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지만 LP, 턴 테이블은 판 안에서 모든 사운드 트랙이 끝나는 일방적인 매체다. 그래서 2개의 사이드만을 통해서 청자에게 가장 이상적이고 최고의 사운드 트랙 구성을 선보여야 한다. 플라스틱 판 하나에 최대의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노력들이 투자된다. 아날로그만의 제한적인 상황에서 음악을 즐기는 것이 번거롭긴 하다. 하지만 최고의 사운드 트랙을 뽐내는 LP와 특별한 연주를 해내는 턴 테이블은 그야말로 가치있는 소비다. 잇따라 디터 람스의 축음기는 턴 테이블의 역사의 근본이 되어줬고, 음악을 더욱 가치있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에 많은 턴 테이블 애호가 사이에서 꿈의 컬렉션으로 활약 중이다. 


시각적 끌림: 이왕이면 다홍치마, 눈도 즐거워야 소비도 즐겁다.


‘백설공주’는 당시 화질이 좋지 않았던 컬러 영화의 센세이션이었다. 매우 오래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움직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백설공주의 가장 큰 매력인 순수함과 더불어, 당시 대중들의 동화에 대한 판타지를 아름답게 시각화 하며 저절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재는 수동적인 여성관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오리지널 프린세스만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는 목소리도 많다. 게다가 점차 생동감 넘치는 모션으로 등장인물들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된다. 이런 아름다움은 많은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쁘다는 이유로 클립영상이 꾸준히 업로드 되었던 겨울왕국1 엘사의 변신 장면이 그 증거다. 디즈니의 스토리 구현 기술은 대중들의 판타지를 환상적으로 시각화 함으로써 팬층을 계속 형성하고 있다.


디터 람스의 축음기 역시 디자인적 요소가 인기의 비결이다. 기능성과 심플함을 추구한 바우하우스 디자인 학교의 영향력은 추후 디터 람스가 활동하던 시대에도 열풍이었다. 절제된 아이보리와 우드톤의 색상, 최소화된 디자인 요소가 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강타한 것이다. 이후 20세기 최고의 산업디자인으로 손꼽히게 되었고 레코드 시스템의 원형이 되었다. 대부분의 턴 테이블들이 투명한 아크릴 뚜껑을 장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제 디터 람스의 축음기는 턴 테이블 디자인의 근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디즈니와 디터 람스. 서로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백설 공주라는 이름을 공유한 탓인 걸까,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은 포인트도 비슷하고 사랑받은 포인트도 비슷하다. 머리로는 그들의 창작 작품들에 반박할 것들이 존재하지만, 몸과 마음으로는 충분히 그들에게 흠뻑 빠지게 된다“
한번의 사용으로 눈과 귀과 최고로 행복해질 수 있는 둘의 창조물. 때로는 이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지만, 가끔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해오는 것들에 마음을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감각들에 솔직해질 때,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더욱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맞이해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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