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nseo Jul 31. 2024

프라다를 입는다고 악마가 되는 것일까?

<악마는 프라다를 입으며>가 이야기하는 명품에 반론을 제기한다면. 

하이엔드 패션을 완벽히 재현해내다. 

다들 한번 즈음은 고급 진 옷으로 도배하고 길거리를 누비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 패션의 ‘ㅍ’자도 모르는 사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때마침 어느 한 영화가 이러한 상상을 맛깔나게 표현하며 등장했고, 여전히 엄청난 인기를 끌어모으고 있다. 등장한 영화는 바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과연 여자의 변신은 무죄가 맞는 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해서웨이의 무한한 변신은 관객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영화 초반에는 패션에 완전히 무지한 앤디(해서웨이)의 설정으로 인해 형편없는 코디가 대부분이지만, 중반부로 도입 될수록 화려하고 감각적인 하이엔드 패션으로 도배된 그녀의 모습들은 브랜드 룩북을 영상으로 재현한 것 같다. 특히 그녀가 난생 처음 ‘지미추’를 신는 순간부터 계속되는 변신들은 세련되고 아름다워서 보는 내내 눈이 즐겁고 해서웨이에 반하도록 만든다. 영화 타이틀을 검색하면 해서웨이의 패션들로 가득하다. 대중들의 하이엔드를 향한 동경심과 욕구를 영화가 충분히 만족시킨 걸지도 모른다.


명품을 풍자 하고자 하는 메시지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반응을 원하지 않았다. 작품이 시사하려던 바와 많이 다르다. 작품의 의도는 해서웨이가 명품옷을 걸침으로써 ‘부정적으로’ 변하는 그녀의 신념들과 태도들을 꼬집는데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본래 저널리스트의 꿈을 가져 온 앤디가 패션 매거진 편집장의 비서로 채용되었고, 이 일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편집장인 미란다는 패션계의 거장임과 동시에 독한 사람으로 유명하며, 그녀의 비서로 들어왔던 직원들은 매번 갈아치워지기 바빴다. 패션에 일가견도 없는 앤디도 물론 찬밥신세인 건 마찬가지. 그러나 앤디는 미란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그녀가 고집했던 후진 옷들을 벗기로 다짐했다. 이후 그녀의 분위기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을 대하던 태도도 180도 달라졌다.


늘 명품계를 사치로만 생각하고 이해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앤디. 지미추를 신는 순간부터 그녀는 명품을 이해하려 했고, 미란다의 마음 또한 사로잡도록 모든 기질을 발휘했다. 노력 끝에 나타난 결실들은 앤디에게 너무나도 달달했다. 초반에는 무시와 비웃음 뿐이었지만, 인정을 받기 시작하며 그녀는 미란다의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반면, 인간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에는 두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는 법. 앤디가 비서의 길을 선택하면 할수록 그녀가 기존에 지켜 왔던 신념들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화사한 옷을 걸치기 전에 앤디를 형성했던 사랑, 우정, 진로를 비롯한 모든 가치관들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앤디는 그것들을 지키려 했지만, 끝내 본래 자신을 지켜왔던 모든 것들이 떠나버렸다.

편집장 미란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한편으로 소중했던 것들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독해졌다. 명품을 걸칠수록 악마가 되어간 것이다.


화려한 패션 영화에서 보여주는 명품이란, 진정한 내 자신을 버려버리는 독한 것이자, 속이 없는 사치스러운 껍데기로 비춰진다. 영화는 패션계의 사치 문화를 풍자하고 싶었고, 비판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앤디의 비서로서의 길은 악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길은 선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앤디가 변화해가는 모습이 과연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래 저널리스트라는 꿈을 지녀온 모습이 본래 그녀의 모습이지만, 비서로 일하는 그녀의 모습도 또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악마가 되어간다기엔 노력의 결실을 맺어가는 그녀의 얼굴은 희망으로 가득찼다. 초반에는 서툴렀고, 변화를 하게 된 계기도 미란다로부터의 인정에 불과했지만, 그 이후의 앤디는 계속해서 포텐이 터졌었고, 성공을 거듭해갔다. 그리고 비서에 임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희망차게 반짝거렸다.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잠재력이 터져나온 듯 보였다.



Clothes make the man


"Manners make man”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 것처럼 명품 옷이 앤디를 만들었다. 원래 입었던 후줄근한 옷들은 앤디로 하여금 명품을 아니꼽게 보도록 했고, 패션계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사랑과 우정 같은 요소들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미란다의 비서 자리에서 신념을 굽히지 않으려고 애썼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 회사에 억울함을 느끼도록 했다.

그러나 동료 나이젤의 말은 앤디의 볼품없는 옷을 벗겨냈다.


누군가에게는 그녀의 자리가 간절했고, 간절했기에 미란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뼈를 가는 노력을 해왔지만 앤디는 변하지도 않고 그저 그녀를 알아봐주길 원해왔던거라고 깨닫게 해주는 나이젤의 말.

이후 앤디는 미란다의 비서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명품 옷들을 걸친 앤디, 어떻게 보면 자신의 고집으로 가득찬 허물에서 벗어난 그녀가 아닐까.



해서웨이가 출연한 또 다른 작품 <프린세스 다이어리>도 비슷한 맥락을 보여준다. 

악성곱슬에 너드한 안경, 촌스러운 반스타킹과 교복으로 항상 반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했던 미아는 어느 날 여왕인 할머니와의 만남으로 완전히 탈바꿈 되어진다.


예비 공주가 되어야 하는 미아는 평소의 모습을 버리고 고급스러운 옷들을 입으며 행실도 공주처럼 바꿔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마찬가지로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되는 위기도 찾아왔었다. 친구를 잃을 뻔 했고, 진정한 사랑도 놓칠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미아는 공주의 옷을 입기 시작한 순간부터 과거에는 보이지 않았던 당당함이 생기기 시작했고,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 발견하기 시작했다. 과거와는 또 다른 모습은 앤디와 마찬가지로 미아를 더욱 빛나게 했다. 근본적으로 인품이 훌륭하기에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지만, 과연 모두에게 따돌림을 받았던 차림새로 온전히 미아의 모습이 비춰질 수 있었을까? 미아가 당당히 허리를 펴고 본연의 매력을 풍길 수 있었던 건 걸치는 옷이 달라진 게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사치에서 가치로 되다.



옷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정장을 입으면 괜시리 행동가지를 경건하게 하게 되고, 츄리닝을 입으면 평소보다 더 털털한 모습을 보인다. 명품 옷도 마찬가지다. 명품 옷을 입지 않는다 해서 자신의 매력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명품 옷을 입으면 나도 모르게 당당해지고, 자신감이 더욱 생겨남으로써 자신의 모습이 훨씬 돋보이고 분위기부터가 달라지는 사실은 틀림없다.


이제는 가치소비의 시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충족시키고 실현시키는 소비가 일상이 되었다. 과거에는 가치소비가 사치로 비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명품이 곧 사치였고, 자기 자랑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만연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검소한 소비-명품소비의 구도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분리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명품 소비도 나의 가치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앤디의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한 순간은 지미추의 구두를 신는 순간부터였다. 그 순간이 악마가 되어가는 순간이었는지, 눈부신 커리어 우먼이 되어가는 순간이었는지는 앤디가 성장하는 과정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프라다를 입는다 해서 악마가 된다는 단정적인 영화의 흐름에 반론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 초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