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은 세계다.
무색하게 파아란 하늘,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햇살
깨고 싶지 않은 잠을 기어코 깨어버린 알람소리
유난히 어딘가가 불편했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조금이라도 기분을 풀어보고자 화장도 하고 입고 싶던 옷도 입어봤다.
조금은 기분이 풀어졌다고 되내이며 교회로 나섰다.
무색하게 파아란 하늘,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햇살
지저귀는 새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
마음에 드는 얼굴과 옷차림.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날이었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심퉁이 나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더욱 답답했다.
예배가 시작됐다.
시끄러운 모습 그대로 예배에 참석해버렸다.
매번 하던대로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 구절을 찾고,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
여전히 답답한 한 구석을 깨어버릴 수가 없었음에도 예배는 드려야했다.
한 청년이 대표로 사도행전을 읊었다.
나도 그 청년을 따라 사도행전을 읽으려 성경책을 두눈 가까이 두었다.
어라, 말이 다르다.
분명 같은 이야기인데, 표현이 달랐다.
교회에서 흔히 보는 성경책이 아닌, 우리말 성경을 읊는 청년을 보면서
예배의 흐름이 깨지는 건 아닐까. 잘못된 건 아닐까.
온갖 잡념으로 마음이 가득찼다. 그새 끝나버린 사도행전의 말씀.
뒤이어 목사님의 이야기는 나를 쥐구멍에 숨기고 싶도록 만들었다.
"우리말 성경으로 읽으니, 더 말씀이 풍요로워지고 마음에 와닿는군요."
내가 감히 잣대를 들이대며 판단을 하려고 있었다.
심술 나 있는 내 자신을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나를 휩싸는 무언가가 마음의 벽을 만들었고, 고집의 세계를 만들었다.
나의 눈은 그 세계에 매몰되고 있었다.
욕심이 많은 세계는 다른 누군가를 허용하지 않았다.
오직 나를 바깥 세계와 단절시키고 싶은. 나를 독차지 하고 싶은 욕망 덩어리였다.
학창시절에 그렇게도 읽고 싶지 않았던 데미안.
책의 첫페이지를 넘기면 적혀있는 말.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