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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냥 Sep 27. 2019

자녀의 병은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달래다

큰 아이가 신촌 세브란스 응급실을 통해 갓 입원했을 때, 나는 의사들을 붙들고 지난 한 달간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브리핑을 하곤 했다. '이런 과정과 증상을 통해 여기까지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쫓지 말고 부디 내 아이를 받아주세요'라는 부모의 읍소 같은 거였다.


(지역 대학병원에서 한차례 귀가조치당하고, 2달 뒤 검진받으라 말 듣고, 다른 2차 병원에서도 2박 3일 검사 끝에 스테로이드제만 덜렁 받아 퇴원했었기에 입원에 대한 애미의 간절함은 실로 대단했다.)


급기야 나중에는 말로 전달하는 시간을 아끼고자 일자별로 정리한 큰아이의 발병 일지를 적어 의료진에게 들이댔고 실을 배정받고 치료계획을 들으러 갈 때도 혹시나 교수님께 중요한 사실을 누락하고 전달할까 싶어 발병 일지를 꼭 붙들고 다녔다.


그렇게 무사히 입원을 하고 아이의 치료에 관한 야기 - 고농도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의 사용, 그리고 단백뇨가 음전되지 않아 만성신부전이 될 수 있는 10% 확률에 심란해하며 - 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교수님께서 한마디 덧붙이셨다.


" 아이한테 남동생 있다고 하셨죠? 올해 5살? 동생은 지금 괜찮아요? 헤노흐 쇤라인이 유전성 질환은 아닌데, 형제간에 동시 발병 사례도 꽤 있어서요~ 뭐 환경적 요인 때문일 수는 있는데 어쨌든 조심하는 게 좋으니까... 나중에 동생도 검진 형태로 검사받아보세요~ 당장은 아니구요. "




사실, 올해 질병의 여정은 막둥이의 편도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냥 해마다 늘 겪었던 그런 감기라 생각했다. 편도염으로 인한 영양결핍으로 입술까지 터버린 아이에게 말 못 할 미안함만 가득 안은 채, 육휴 전 1달을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며 꾸역꾸역 회사에 나갔다. 러나 결국 일이 터졌다. 새벽에 시댁으로부터 급히 전화가 왔다. 작은아이가 밤새 단다. 열도 오르는 것 같단다. 집에서 살펴본 작은아이는 이틀 전보다 입술이 훨씬 더 부어있었다. 이비인후과에서 단순 구내염 처방을 받았지만 다음날이 되자 잇몸이 부풀며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다시 이비인후과, 치과를 거쳐서 결국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질병명은 '상세불명의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구내(구순,치은)염'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부득불 1인실을 이용했다. 아픈 아이를 앞에 두고 돈을 따지긴 싫었지만 비싼 입원비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이 때만 해도 건강했던(?) 큰 아이의 모습이 그립다


그렇게 입원생활을 시작하고, 육아휴직을 앞 당겨 쓰고, 무사히 퇴원하고, 이제 끝났다며 숨 돌리던 찰나, 잘 버티던 큰아이도 똑같이 편도염&구내염에 걸렸다. 그리고 그 편도염이 hs자반성 신장염의 트리거(방아쇠)가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기에 동일한 발병 과정을 겪었던 작은아이도 심하며 살펴봐줘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간신히 정신줄을 붙들고서 형제간 신장염 발병에 관한 키워드들을 열심히 검색해 읽어보았다. 유전이 아니라면 식습관? 환경문제인가?  뭐가 문제인 거지? 내가 심각하게 잘못 키운 걸까? 왜 하필 우리 아이들이지?라는 생각에 휩싸여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큰아이의 퇴원 즈음에 단백뇨 여부를 상시 체크할 수 있는 소변스틱을 구매해 작은아이에게도 해보리라 단디 마음먹었다. 현상황에서 부모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런 엄마 마음이 통했던 건지  작은아이는 다행히 멀쩡했다. 큰아이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노랗디 노란 소변스틱의 색이 나를 한없이 다독여줬다. 막둥이는 정상이야. 괜찮아! (스틱의 색이 노란색에서 연두, 파랑에 가까워질수록 소변 내 단백 수치가 높다고 본다. 노랑은 음성이다.) 그렇게 몇 달간 소소한 평화를 즐겼다.



왼쪽과 가운데는 작은아이의 소변스틱, 오른쪽은 큰아이 것이다. 기준은 음성이라고 쓰여있는 통의 샘플지. 작은아이는 언뜻 정상으로 보이지만 단백쪽 색이 무겁다. 0.145가 나왔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턴가 작은 아이가 소변을 부쩍 자주 보기 시작했다. 호기심 딱지라는 어린이 과학 프로그램을 보고 소변을 참으면 안 된다는 얘기에 더 일부러 자주 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아이가 다뇨라며 걱정했지만, 그 모든 정황과 걱정들을 나는 애써 외면했다. 이런 애미에게 경종을 울린 건 아이였다.


" 쉬야 눌 때마다 고추랑 배가 아파요 "


열없는 방광염인가 싶었다. 스틱 색까지 단백뇨가 의심되는 연둣빛으로 변하자 나는 진정할 수 없었다. 왜? 왜? 여태 정상이었는데?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급히 지역 내 소아신장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간단한 소변검사만 진행 후, 걱정 마시라고, 작은아이는 지극히 정상이라 말하셨다. 도리어 큰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궁금해하셔서 (큰아이의 사구체신염을 첫 진단했던 지역 병원이었다) 그 얘기만 잔뜩 나누고 왔다. 조금 찜찜했지만 더 신경 쓰기엔 여러 가지로 벅찼다. 그래. 정상 이래자나. 내가 너무 예민해져 있었구나. 마음을 편히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잦은 다뇨, 빈뇨 증상을 보이던 아이. 심리적인 행동이라기엔 다소 과해서 며칠을 화장실로 쫓아가 아이 소변을 같이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색이.. 심상치 않았다. 다시 한번 해본 스틱 반응이 그 어느 때보다 현저했다.


이번에는 과거 큰 아이를 응급실에서 귀가 조치시켰던 지역 대학병원찾아갔다. 서운한 감정이 쌓여 쳐다보기도 싫었던 그곳이지만 신촌 세브란스는 형아 찬스를 썼음에도 1달 이상 기다려야 했기에 큰 맘먹고 다시 갔다. 필요 없다는 피검사까지 굳이 요청했다. 내가 원하는 건 괜찮다는 의료진들의 예의 입바른 소리가 아닌, 아이 상태를 보여주는 검사결과지 속 수치였다. 


작은아이의 검사 결과 만족스럽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수치가 정상 범주 내이기는 하나,  4세 소아의 수치로 보기에는 다소 염려스러운 부분이 발견되었다. 당일 컨디션과 감기 유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신장 지표를 보여주는 bun과 cr가 신장염을 앓고 있는 형아보다 높게 뜬다. 단백뇨는 비슷한 수준이다. 하필이면 그 많은 수치들 중에서 신장 쪽이다...





나는 분명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두 아이에게 똑같이 저염식단과 감염예방이라는 생활수칙을 준수했다. 최근에  부동산에 들락거리느라 두 아이 모두에게 다소 소홀했던 면은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내 체력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심지어 이 힘든 와중에 이사를 계획했던 것도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왕이면 더 따뜻하고 아늑하고 깨끗한 집에서 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최고의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몰라서 놓친 부분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작은아이의 알레르기 수치가 상당히 높게 나왔는데 나는 그 원흉으로 8년 된 가죽소파를 지목했다. 작년 말부터 살살 가루가 날리기 시작했으나 소파 패드로 대충 덮어두고 방치해왔었던 소파. 늘 소파 근처에서 사는 작은아이에게는 가죽 가루가 치명적이었으리라. 혹여나 저 소파가 큰아이의 발병에도 기여했을까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간 우리 가족에게 편안함을 제공했던 소파가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괴물로 보였다. 


급하게 새 소파를 사러 원목만을 취급하는 가구점에 갔다가 직원으로부터 합판 속, 포름알데히드가 유발하는 질병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울컥하는 감정에 눈물을 삼켰다.  아이들의 먹을거리와 환경 조성에 무심했던 지난날들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그래도 그 감정에 젖어들지 않으려 애썼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나를 다독였다. 이번 주말에 낡은 소파는 치워버리기로 했다. 이사 즈음 좋은 가구로 침대와 책상까지 넣어주기로 했다. 여기까지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만약, 아이를 케어하면서 놓쳤던 부분에 대해서 계속 후회하고 책망하며 우울해한다, 남들이 보기에도 무척이나 짠하고 안쓰러울 것이다. 그 안쓰러움은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해서 내 안의 죄책감 희석시키는데 다소간 도움줄 수도 있을 것이다. 큰 아이 발병 초반의 나는 늘 눈물에 젖어 스스로를 탓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책망해도 아이는 건강해지지 않았다. 도리어 내 몸만 약해져 갔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선  엄마가 가장 건강해야 했다. 몸도 마음도 가장 강해야 했다.


남편은 아이들의 질병에 상대적으로 무심한 편이다. 회사일로 바쁘기도 하거니와 내가 케어하는 방식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주고 있다. 그리고 작은아이까지 의심환자로 분류돼서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가끔씩 말해주곤 다. 내 죄책감의 가장 큰 원천인 직장에 대해 말하길, 당신이 일을 했건 안 했건 그건 아이들 병의 원인이 아니라고. 이건 그냥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라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닌 이상, 우리 죄책감은 갖지 말고 그냥 지금 최선을 다하자고. 그렇게 나를 다독여주었다.  






웹상에서 정신승리라는 말을 많이 볼 수 있다. 풀어서 해석하자면 누가 봐도 졌는데 자기 혼자서만 나의 승리라며 자위하는 양태이다. 사실 우리 부부도 그렇게 정신 승리하며 아이들이 아픈 건 우리 잘못 아니야~ 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 명이 걸리기도 힘든 난치성 질환을 동생까지 의심하는 상황에서, 사실 부모는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그냥 운이 조금 나빴을 뿐이라고.. 지금부터 더 신경 쓰고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렴 어때? 이렇게 해서라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부모의 역할을 단디 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부정적 감정을 걷어내고 생활할 수 있으니 아이들에겐 더 좋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나가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나를 다독여주며 버텨가기로 했다.



내 유리멘탈은 이렇게라도 해줘야 아이들과 웃으며 함께하는 것을 허락한다..



큰아이가 검진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같은반 친구를 만났다. 작은아이는 제 친구마냥 형아들에게 재잘재잘 말을 걸어댔다. 이 사랑스러운 투샷을 당분간 즐기기만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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