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전한 근무환경과 부족한 배상 체제에 의한 근로 사고 문제는 정말 마음 아프다. 한국에서는 간혹 플래카드나 1인 시위의 경우 그런 내용을 담고 있을 때를 주로 본 것 같다. 독일에서는 보지 못한 형식의 억울함의 공개적 피력이다. 그때부터 궁금했었다. 이런 조치들은 정상적 제도와는 거리가 멀다. 눈물을 머금고 택하는 최후의 보루일 텐데, 독일은 왜 최후의 보루가 다른가? 억울함이 없는 사회는 없을 텐데 말이다. 비슷한 의미로, 독일 뉴스에서 시민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사고나 자연재해, 억울한 경우 등은 당연히 독일에서도 존재할 텐데 말이다.
독일인에게 눈물의 의미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영역일까? 감정 본질의 부산물 그 이상일까? 억울함의 원인이나 역사의 한이 다른 것일까? 겉으로 표출되는 억울함이 독일에는 눈에 잘 띄지 않다 보니까 한국과 비교하거나 억울한 일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오늘의 기사는 직업 때문에 병들었지만 배상을 받지 못하는 독일의 한 경우를 조명한다.
국가가 직업병에 대한 법을 갱신하려 한다. 법안에 대한 비판이 자자하다. 병에 걸릴 경우 근로자를 배신하는 체제라고 한다. 해당되는 피해자 두 명을 만났다.
하이다 씨는 거의 40년간 간호사로 일했고 그녀의 몸이 그것을 말해준다. 환자를 일으키고 씻기고 옆으로 누였다. 70년대에도 같은 일을 했고 2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기계적으로 조절 가능한 침대와 이송 기기가 생겼지만 많은 환자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질 때까지 일했다.
진통제를 복용한지는 10년이 넘었다. 등, 신경, 힙, 무릎의 꾸준한 통증 때문이다. "제 직업을 사랑하지만 저를 병들게 만들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약 없이는 일이 불가능하고 오늘 그녀는 배상을 요구한다. 직업병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절차다. 소위 부상 연금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은퇴 이전에도 매달 지급되는 배상금이다.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직업병 80개가 있다. 직업병에 걸렸다면 근로보호 연방청이 만든 목록에서 자신의 병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직업협회에서 배상금이나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하고 산업 보건사에게 진단서를 받아야 한다. 2018년에는 7만 8천 건의 신청이 제출됐고 이는 2017년의 7만 5천 건에 비해 상승세이다. 지난 10년간 상승률은 25퍼센트였다. 하지만 그중 통과되는 건수는 4분의 1일이다.
병을 특정 직업에 연관시키기 위해서는 목록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상관관계를 증명해야 해요."라고 직업병 상담소장인 귐벨 씨가 말한다. 그는 무릎이 망가진 기와공, 과로에 병든 의사들 등 다양한 직업군을 상담한다. 그에 의하면 병이 들어도 수년간 절차가 거부되어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직업협회들은 지출을 삭감하기 위해 통과에 인색하죠." 직업협회는 진단서를 지불하고 의사들을 선출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적지 않다.
간호사 하이더 씨는 수년간 신청서를 작성하고 근로 일지를 꾸렸다. 귐벨 씨의 계산에 의하면 그녀는 40퍼센트 비율로 근로 불구자이며 매월 700유로의 부상 연금을 받아야 한다 (현지 시각 약 90만 원). 연골 부식도 세 군데나 발견됐다. 그래도 직업협회는 꾸준히 신청을 기각했다. "거부될 때마다 믿기가 힘들었어요. 얼마나 더 아파야 한다는 소리죠?"라고 하이더 씨는 말한다.
근로부담과 병의 연관성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20년간 근무일지를 작성하는 사람은 없다. 막상 병이 들면 서류와 신청사항이 많아 어쩔 줄 몰라한다.
독일 두 도시에는 해당 상담소가 있고 수도에도 연말까지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나머지 독일에는 환자들이 혼자다. 또한 직업병 인정을 위한 진단서를 작성하는 전문 의료진도 부족해서, 직업병이 인정될 때까지 병명에 따라 수년이 소요된다.
쾰러 씨는 경찰 수석 경감으로 일했었고 오랜 기간 기다려왔다. 80년대에 경찰 수습을 시작했고 꿈의 직업이었다. 오늘 54세인 그는 많은 서류를 들고 인터뷰에 나타난다. 변호사 서류, 진단서, 의료 정황 감정서이다. 각종 독 금속이 몸속에 있다는 내용이다. 그의 병명은 신경과 뼈를 뒤덮은 중금속 중독이고 모든 동작이 힘들다. 걸을 때는 오른 다리를 전다.
"처음에는 힙에 불타는 듯한 통증으로 시작됐어요." 이어진 수년간 통증과 가려움증, 피로증 때문에 병원을 들락거리다가 2006년이 되어서야 원인 모를 중금속 중독을 진단받았다.
10년 후에 기자들이 원인을 밝혀낸다. 베를린 경찰이 수년간 사격 연습장을 부적절한 건물에서 운영한 것이다. 볼링장을 개조해서 통풍 없이 사격을 하다 보니, 낡은 총기 모델을 발사할 때마다 독극물이 방출되고 환기되지 못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끼고는 했다고 한다.
"그때는 웃어넘겼죠."라고 쾰러 씨는 회상한다. 오늘 그의 사격 훈련사들 중 여러 명이 은퇴하기 전에도 사망했다. 수년간 독극물을 흡입한 결과다. 쾰러는 원인을 깨달은 후 2017년부터 직업병 인정을 위해 고소 중이다.
2008년에 근로 불가능자로 분류되고 조기 퇴직했다. 하지만 아직도 부상 연금을 받지 못한다. 직업병 목록에 납중독이 명시되었는데도 말이다. 대신 사격장은 폐쇄되고 베를린 하위원이 피해자를 위한 배상 기금을 설립했다. 총 487명의 경찰관과 사격 훈련사들을 배상했다. 쾰러 씨는 그중 한 명으로서 3000유로를 지급받았다. 너무 적다고 그는 여긴다.
그는 최근에 베를린 행정 재판소에서 고소를 기각당했다. 고소를 너무 늦게 제출했고 기한을 넘겼다고 판사들은 판결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저는 시위자들에게 돌을 맞았고, 국가를 방어했으며 국가를 위해 그곳에서 훈련했어요. 배상받아야 해요. 존중의 문제예요."
국가는 올해 직업병 법안을 개정하기로 했고 이는 첫눈에 긍정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직업을 포기하거나 부상 연금을 받는 것 중에 선택해야만 하는 압력이 사라진다. 회의와 자금도 늘려서 병명 목록의 확장이 이전처럼 수년이 걸리지 않게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을 법안이 빠트린다.
경찰관 쾰러와 간호사 하이더의 경우 개정 예정인 사항들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병명은 오래전부터 목록에 명시됐다. 하지만 인정되지 않는 이유는 정확하지 못한 묘사 때문이며 이를 이용해서 직업협회들이 신청을 거부할 여지가 넓다.
앞으로 법안을 둘러싼 회의에 거센 비판이 일 걸로 보인다. 노조와 전문인들은 반쪽짜리 개혁이라고 칭하고 고용주를 편애하는 법안이라고 비판한다. 그들의 요구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관료적인 예외 약관이다. 이로써 납중독과 같은 희귀병의 인정이 어려울 때에도 배상이 가능해진다. 다른 하나는 급진적 증명 부담 역전이다. 그러면 베를린 경찰과 함부르크 병원이 역으로 직업병이 아니라는 증명을 해내야 한다.
현재로서는 너무 자신이 을처럼 느껴진다고 간호사 하이더는 말한다. 5년간 서류를 쓰고 진단을 받으며 느낀 바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직접 도왔다. 현재는 실무가 아니라 근로자 대표 협의회에 선출되어 일하고 있다. 장애우 동료들을 돕는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몸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작년 가을에 드디어 직업협회가 신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첫 수급을 아직도 받지 못했다. 수령금액이 얼마인지 아직 산출해야 한다는 이유로.
좋은 국가 제도는 국민이 존중받는 느낌을 준다. 이상적이지만 필수 목표이다. 그래서 개개인의 노력으로 안되기 때문에 결국 제도 개선은 정치의 역할이다. 포퓰리즘이 강한 때일수록 제도보다 말에 무게가 실려서 문제다. 말이 제도보다 쉽기 때문이다. 부패의 원인을 지적하는 것은 빠르고 쉽지만 제도가 개선되게끔 운영하는 것은 느리고 어렵다.
효과적인 길을 택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당연하다. 하지만 자극적인 전략으로 집권하면 자신의 인기를 과신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공약의 단점들이 공론화를 통해 비판될 기회도 놓칠 수 있다. 뜨겁고 불 같은 정치의 이면에 뿌리 깊이 도사린 위험이 바로 이것이다. 오히려 따지고 보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각종 제도 개선의 정반대 선상에 놓인 것이 아닌지, 우리는 다시 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