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것에 인색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받는 것에 익숙한 유년 시절의 삶을 살아왔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들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주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학업에 집중하고 가벼운 유희를 추구하던 어느 날 문뜩 생각이 들었다. 주는 것을 왜 두려워하는가. 첫째로, 주기만 하는 것을 시도한 적이 별로 없었다. 바닥에 돈을 뿌리는 일이 아닌,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어떠한 물질을 주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돌아온다는 경험이 부족했다. 뒤늦게 전해진 상대방의 소식과 만남, 그리고 물질적인 ‘리턴’이 축적될수록 나는 주는 것의 힘을 강하게 믿었다. 둘째로,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나의 결정에 의해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 싫었고, 나의 잘못이 아닌 경우에 발생하는 손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것은 책임감과 직결되는 영역이긴 하지만 삶을 살아가다 보니 그러한 경우도 종종 존재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나의 것을 주는 행위를 소비보다는 투자에 가깝게 여기면 건강해짐을 깨달았다. 인간적으로 관계가 있고 잠재력이 있는 상대라면 나의 것을 과감히 줄 줄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오랫동안 챗바퀴를 도는 삶을 살았었고, 소득과 지적 재산을 제대로 저축할 수 없었다. 공학적 지식에 인문학을 더하여 개성 있는 글을 쓰는 것에 나의 시간을 쏟을 수 없었고, 회사에 대한 용역으로 벌어드린 근로 소득은 마치 밑에 구멍이난 항아리에 물을 쏟는 것처럼 원하는 속도로 쌓이지 않았다. 채우기 전 채워낼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만드는 것에 힘을 써야 하고, 너무 많은 인풋을 들이지 않아야 함을 알게 되고서야 단단한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을 주기 위해선 준비단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을 위한 여행도 일종의 투자라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여행을 통해 인사이트를 많이 얻는 사람이라면 여행은 꼭 필요한 투자라고 느낀다. 그리고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 나의 것을 주는 행위는 개인적으로 나의 성장을 위한 쉬운 투자라고 여긴다. 13개 국가를 여행하고 또 어학연수를 다녀오면서 내게 이러한 투자로 돌아온 가장 큰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해외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연을 이어나가는 것은 영어의 성장을 가져왔다. 꽤나 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외국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내가 사고할 수 있는 영역은 넓어졌고,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영어로 의사소통하다 보니 언어가 자연스럽게 늘 수 있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있던 것에 감사하고, 당시에 나의 것을 줄 수 있는 열린 태도가 도움이 되었음에 안도한다.
시간의 효율적인 사용은 어디에 가치를 얼마만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는다. 적절한 비율로 시간을 투자하는 게 이상적일 수 있으나, 경험상 쉽지 않고 대개 자신의 기호에 따라 시간의 비율이 결정됨을 느껴왔다. 요즘 나에게는 인간관계와 금융 지식이 시간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재정적 자유를 얻어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있기에 자산을 늘리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연민, 애정 등이 있어 인간관계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투자는 상황에 따라 비율만 조정할 뿐, 계속해서 지켜가야 할 요소임을 인정한다면 누구든 가고자 하는 목표에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