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재능 중에 다듬어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유머러스함’이라 생각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은은한 재미를 주는 것이 모두의 경계를 풀게 만들어 결국 생산적인 아웃풋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불필요한 갈등을 싫어했기에, 불편한 상황에서 분위기를 풀어내는 데에 자동반사적으로 신경을 쏟았다. 경우에 따라서 나의 언행이 잘 들어맞아 서로의 마음이 회복될 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해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적도 있었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선을 넘지 않는 유머로 상대의 속마음을 꺼내게 될 때면 기분이 몹시 좋았다. 타고난 성격과 가정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인생이란 나무에 좋은 방향으로 가지가 난 것에 다행으로 여겼다.
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나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맏이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말 수가 많지 않고 차분한 모습에서 그러한 의견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가끔 내가 재치 있게 상황을 풀어내거나 언어유희를 부릴 때면 어쩌면 막내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얘기를 한다. 의도하지 않은 나의 반전 모습이 좋았다고 고백할 때도 있었다. 이러한 달콤한 말을 들을 때면 심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불안하다. 상대방의 기대치를 높여 보통의 언어로는 마음을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첫 만남에서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나를 표현한다. 그리고 상대가 마음을 열면, 그제야 다른 면모도 보여준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았을 때, 나의 유쾌함을 전하고 싶어 제스처를 이용한 적이 많았다. 유학 초반의 시기에, 나는 유학생 친구가 같은 반 친구들과 하우스메이트 밖에 없었다. 그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학교를 오고 가며 친해지고 싶은 다른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가로막고 있는 언어의 장벽을 어떻게 허물어 낼까 고민을 하였다. 그 치열한 내적 투쟁의 결과는 언어 공부와 동시에 제스처를 잘 이용하는 것이었다. 영어로 나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해 내며 손과 표정을 이용하여 느낌표를 만들면 효과적으로 나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나는 다행히 낯선 나라와 낯선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면 두려움이 덜어지고, 왠지 모를 근자감이 생기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유머러스’한 사람이 좋고, 그렇게 되고 싶다. 그래서 삶의 고통도 웃어넘길 수 있는 유쾌함을 추구한다. 나의 작은 변화가 선한 영향력이 되어 주변을 환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관계로부터 전달받은 에너지를 좋은 곳에 쓸 수 있도록 고민한다. 비록 유머가 휘발되어 당장의 의미가 없어질지라도, 계속해서 도전한다. 삶의 변곡점에서 ‘유머러스함’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가끔 상상을 한다. 좌절과 시련을 깊이 받아들이는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삶에 유머 한 스푼 추가해 보는 것이 나은 선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