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빛났다면, 그걸로 충분해

by Amour Seo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던 시절이 있었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를 마친 나는 복학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1년 동안 치열하게 학업에 매진했다. 당시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과목 하나하나의 성적에 희비가 엇갈렸고, 나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우수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학과의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쯤, 나와 동기들은 어느새 막 학년을 앞두게 되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흐른 시간 앞에서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금부터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느냐, 아니면 그들의 일부가 되어 거대한 물결을 따라 흘러가느냐. 처음 마주하게 된 갈림길 앞에서 나는 나만의 잣대를 들이밀었다. 고민 끝에 캐나다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호기심과 도전 정신으로 중무장한 나는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그 시절 나의 봄은 찬란했다. 누구의 방해도, 아무런 저항도 없는 단풍의 나라에서 나는 벚꽃 잎이 떨어지는 버스정류장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사색에 잠겼다. 지난 1년간 말없이 해온 투쟁과, 평온이 깃든 이 공간에서 어느 게 진실일까. 판단이 어려웠다. 출입문 사이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지하철의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삐 걸어갔던 것일까. 자연스럽게 가꾸어진 어느 마을의 정원을 따라 걷다 보니 함박웃음꽃을 피우는 아이와 부모들이 보였다. 그 화목한 가정에서 나는 나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넓은 토지에 그에 비례하지 않는 인구수, 그리고 풍부한 자원을 갖춘 이 나라에서 이민자로서의 외로움을 극복한다면 나도 저러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시계는 그 순간 잠시 멈추었다.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에 그 해 여름과 가을이 진하게 남아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의사당 앞 잔디에 앉아 시원한 밤바람을 맞고 있으면 온몸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천천히 걷는 사람들 중에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다 같은 목적으로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는지, 참으로 신기한 인연은 겨울까지 이어졌다. 함께 자연 속을 걸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일이 일상이 된 지 7개월 정도 되었을 때, 우린 다음을 기약하며 서로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후에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은 그 시절 친구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 요즘 이렇게 지내”를 간간이 올려주고 있다.


아름답게 빛났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푸르고 온기 있던 시절의 내 추억이 어느 정도 미화가 되었다는 것을 감안해도, 단풍의 향이 코 끝을 맴돌아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여전히 밝은 미래를 꿈꾼다. 비록 현실과 타협한 후, 새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려내는 정도에 그쳤으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색을 칠하는 남겨진 과정은 아마 내가 원하는 붓을 골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남은 인생이라는 작품을 내 손으로 만들어 냈을 때 밀려오는 감동을 느끼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