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사실 자체가 슬플 때도 있다. 중학교 시절까지 줄 곧 반장에 당선되어 반강제적 모범 생활을 해온 나는 고등학생이 되자 묵혀온 갈망을 표출했다. 다행히 그것은 반항아의 모습은 아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묵묵히 다른 짓을 했다. 국어시간에 창가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떠오른 시상을 적어내기도 했고, 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각색해 시나리오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한 습작들에 대해 반응이 좋으면 뿌듯해했고, 별다른 피드백이 없으면 수정해 내어 나 자신을 만족시켰다. 그렇게 의미 있을지도 모르는 시간을 보내며 학업을 뒷전에 두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고등학생이었다. 성적이 다소 떨어진 3학년 때에도 나는 꾸준히 나만의 글쓰기와 공부와는 거리가 먼 짓들을 병행했다. 그 결과 백일장에서 운문 은상을 탔게 되었으나, 부모님은 그다지 기뻐하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부모님의 기분과 기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평범함을 벗어나기 위한 도전 정신이 많이 꺾였였다. 학업에도 노는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나는 어찌어찌하여 대학에 진학하였고, 나를 지원해 주었던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사실이 제일 슬프게 느껴졌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방황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더 적극적으로 방황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해서 동아리와 교내 봉사 단체를 직접 찾아 활동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깊고 진하게 그들과 교류하지 못하였다. 더 밀도 있게 행사에 참여해야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되고 나서야 그 어렴풋한 시절이 종종 떠오른다.
이너하버의 바람이 세차게 불던 어느 빅토리아섬의 여름날, 나의 귀에 반복적으로 꽂히던 문장이 있었다. 매주 수요일, 우리는 반값으로 제공되는 닭 날개 요리를 먹으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틸리컴 로드, 와프 스트리트를 거닐며 소문이 난 가게를 방문하는 것이 하나의 작은 행복이었다. 어느 날은 수업을 마치고 항구 근처에 있는 유명한 펍으로 향했다. 그곳의 허니갈릭 닭 날개 요리는 다른 곳과 차별된 맛을 자랑했다. 나는 그 단짠의 매력에 빠져 한 그릇을 다 비워버렸다. 그러곤 생각했다. “한 그릇을 더 시킬까?”. 메뉴판을 들고 계속 머리를 긁적이는 나를 한 친구가 바라보더니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얘기했다.
“누가 신경을 써, 먹고 싶으면 더 시키면 되지.”
나는 누가 신경을 쓰냐는 말을 그날 3번째 들었었다. 옷장 안의 외투를 고를 때 한번, 점심 식사 시간 때 전자레인지 앞에서 두 번, 그리고 펍에서가 세 번째였다.
요즘도 가끔 남의 눈치를 정도 이상으로 보게 되는 나 자신이 보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누가 신경 써. 나 자신부터 챙기자.”라는 마법의 문장을 떠올린다. 기대에 충족하려는 마음, 즉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꽤 오랫동안 자라난 것 같아 속상하지만, 그 덕에 관찰력 늘었고 상대의 니즈에 쉽게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