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냐라는 음식을 처음 맛본 순간은 빅토리아 집에 온 지 삼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은 다운타운 시내를 구경시켜 주는 방과 후 활동이 있어 조금 늦은 시간 귀가했다. 마틴은 초기 유학생이었던 나에게 친절한 말투로 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물어봤다. 당시 나의 영어실력은 처참하기 그지없었지만 손짓을 이용하여 최대한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유쾌하고 웃음이 많았던 마틴은 어설픈 영어를 구사하는 나를 존중해 주었다. 끝까지 표현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맞장구 쳐주었다. 그런 호스트가 이 도시에서 몇 명이나 될까 떠올리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을 마친 조이가 앞문을 통해 들어오자 분위기가 한층 더 좋아졌다. 특유의 높은 톤으로 마틴에게 그날의 저녁 메뉴를 물어본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코를 킁킁거렸다. 마틴은 단조로운 어조로 ‘라자냐’라는 생소한 단어를 내뱉었다. 라자냐. 그것은 무엇일까. 평소 음식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던 나는 궁금증에 휩싸였다. 아래층까지 풍겨지는 냄새로 봐서는 토마토소스로 만든 어떤 음식인데, 구수한 치즈향이 더해지니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사람이 다 모이자 이윽고 그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오븐에서 갓 나온 라자냐는 네모난 치즈오븐스파게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나와 홈메이트는 정확하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느낌표의 감탄을 표현했다.
넓은 면적의 파스타 사이로 층층이 쌓여있는 다진 고기와 치즈, 토마토소스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풍미가 단연 최고였다. 다소 느끼할 수도 있지만, 그 느낌에 개의치 않는 나는 식탁에 올라있는 메인메뉴를 잘라내어 계속 리필하였다. 홈메이트와 나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는 마틴은 라자냐가 비장의 무기 중 하나라고 으쓱댔다. 입가에 묻은 치열한 식사의 흔적을 닦으며 우리는 그의 귀여운 허세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마틴은 과거에 몸을 쓰는 일을 하다 한쪽 손을 다쳤다고 했다. 그래서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과 홈스테이 비용을 조이의 월급에 보태어 생활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다시 몸을 쓰는 이전의 일을 할 수 없다 보니 자연스레 가사노동을 맡게 되었고, 그렇게 요리실력이 늘게 된 것으로 추측했다. 나는 그런 마틴을 측은해했으며, 그의 부지런한 평소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그는 한 손을 아예 못쓰는 정도는 아니었으나 많은 불편함이 있었다. 그런 그가 요리도 하고 발코니도 고치고, 이후 고장 난 자전거도 수리를 하며 나의 빅토리아 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었다.
요즘 코 OOO이라는 대형마트에 가면 마틴이 종종 떠오른다. 빅토리아의 업타운에 위치한 월 OO에서 마틴과 장을 다 보고 나면 그가 핫도그를 사주곤 했다. 비록 비싼 고급 음식은 아니었지만 오후의 끝자락에서 가성비 있는 그것을 먹으면 하루가 풍성해짐이 느껴졌다.
나의 첫 라자냐는 맛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홈메이트와 조이의 웃음소리, 온기, 그리고 나이프에 비친 마틴의 으쓱대는 표정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