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남가좌동,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
2019년 1월, '리뷰빙자리뷰'를 통해 <연남장>을 맞닥뜨린 후,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아직 애정까지를 논할 수는 없지만 주변에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기억하기로 했다. 기록에 남기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김에 참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약속도 있는 겸, 겸사겸사 홍대에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설렘하는 홍대나 연남동만 남길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내 동네의 옛 모습을 남겨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제일 처음 내 살던 곳의 기억을 사진을 남기기로 했다. 가재울 뉴타운으로 이미 옛 추억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모래내 시장 근처에 남아있는 그때 그 추억들을 다시금 기억에 남겨본다.
우리 동네는 지금 이상함 중에 있다. 한 켠은 으리으리한 아파트 단지인데, 한 켠은 여전히 80~90년대 중이다. 그래서 묘하다. 문득 올려다본 저 멀리는 시대가 뒤섞여 있는 묘한 기분이 든다. 마치... 강남과 대림동이 한데 뒤섞여 있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아직 사진 찍고 싶은 매력적인 포인트들이 많다. 북적북적 시장 한복판이라 사람 사는 냄새가 제대로 나는 뉴타운.
아직도 저렇게 동네 군데군데에는 사람 사는 안내문들이 많다. 출입도 금지하지만 소변도 금지한다니. 출입과 소변이 참으로 잦은 곳인가 보다 싶어서 어딘가 봤더니 '고물상'이더라. 서울 한 복판에 고물상이라.. 그러나 그리 놀라울 것이 아닌 게 연남동 끄트머리에도 있다. 그러고 보면 내 아주 가까운 곳에 '고물상'이 두 군데나 있는 셈이다. 뭔가 재밌다.
아주 어린 시절, 모래내 시장은 지금보다 3~4배 이상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 어린 시절이라 작았던 키만큼 세상이 커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한 해 한 해 좁아지는 시장을 모두 봐온 사람으로서 그 시절 모래내 시장은 꽤나 화려하고 번성했던 것이 맞으리라 본다. 그 시자 한 복판을 차지하고 있던 <은좌극장> 그 당시에는 '동시상영'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표를 끊고 들어가면 2편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일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물론 100% 정확하게 '동시상영'은 맞았지만 꼬꼬마 어린아이가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동시상영'의 의미를 정확히는 모르겠다.
은좌극장에는 항상 야시시한 그림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이것부터 재밌네. 근사한 프린트물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붓으로 그린 그림이 걸려있던 시절부터가 기억 남다니. (아, 내 나이 마흔 하나...--) 언니들이 많이 덜 입었던 포스터였기에 사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도 부끄러웠었다. 그래서 드나드는 사람도 죄다 아저씨들이나 털이 덥수룩한 사람들이었고 대체로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갔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나저나 나의 첫 영화 '우뢰매'는 어디서 봤더라...? 신촌에서 본 것 같은데. 아이들이 미어터져서 복도 계단에 앉아서 봤던 나의 첫 영화. 녹색극장? 신영극장? 아, 기억이 안 난다. 너무나 궁금한데. 검색을 해도 딱! 이거다 싶은 이름이 매칭 되지 않는 이 안타까움...
이곳의 정체는 무엇일까? 분명히 횟집이란 간판이 있는데, 유리창에는 영양탕과 삼계탕을 판다. 육해공군을 모두 파는 뷔페 같은 곳인가? 장사는 하는가?
이빨은... 금수에게나 붙이는 단어인데. 사람에게는 자고로 '이'라고 해야 맞는데. 아직도 종종 이런 웃픈 일들이 발견되곤 한다. 물론 지금도 대화 중에 자꾸 "내 이빨이... 내 이빨은..." 하는 경우가 많긴 한데... 쯧쯧, 이 만큼은 사람 취급받으면서 살자, 이것들아
이렇게 위풍당당할 수 있는가. 조금의 양보 없이, 배려 없이 도로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 잡은 배너. 누구 하나 치우는 사람도 없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마치 이 도로는 자신의 것인 양. 사진 아래는 핸드폰 번호까지 떡하니 노출되어 있다. 와, 이건 뭐지? 뭐 이리 당당하지?
모래내 시장에 가면 슥슥 무심하게 손으로 쓴 간판? 미니 배너? 종이 슬로건? 등이 많다. 요즘 인터넷 판매처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붙여보니 대단히 우습다. 그때그때 급하게 필요해서, 혹은 공들일 필요가 없어서 무심하게 써 내려간 안내문들은 언제나 정겹다. 그리고 군고구마를 볼드체로, 국내산은 Light로 표현한 것도 뭔가 재미있다. 성급했던 것인지, 의도했던 것인지 의심할 필요도 없이 명백하다. 급히 마무리 지었으며, 추가 안내할 필요가 있었으리라. 이런 스토리가 묻어나는 안내들이 좋다. 이게 재래시장의 매력이려니...
딱! 한 잔만 더! 를 외치는 술꾼들에게 딱 어울리는 네이밍인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찰칵! 조금만 더 마시기를 원하는 늘 갈증을 느끼는 알콜러들아, 오라, 모래내시장으로
진짜 고사머리, 돼지머리를 내놓고 파는 곳은 많지 않으리라. 눌린 머릿고기는 대량으로 팔기도 하고 여느 시장마다 소량으로 팔기도 하지만 돼지머리가 방긋 웃으며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래내시장에는 있다. 그래서 이 곳이 참 좋다. 없는 게 없는 시장이다. 사람 빼고는 다 파는 곳이라, 사실 나는 살 게 마땅치 않기도 하다. 하하~
아마 요즘 어린아이들은 잘 모르리라. 기름집. 내 기억에도 가물가물하기만 한 걸. 기름집이라 그런지 벗겨지지 않을 것 같은 기름때가 잔뜩 묻은 간판이 주는 세월의 흔적이 참 좋다. 살짝만 고개를 들어도 볼 수 있었을 텐데, 길을 걸으면서도 내내 핸드폰만 보느라 못 봤던 간판인데.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들고 나오니 고개도 들고 이 간판도 보게 되는구나. 가끔은 핸드폰 말고 사진기를 들고 거리에 나와봐야겠다. 놓으니 보이게 되는 풍경들이 많구나.
이걸 보고 군침 흘릴 여자는 많지 않으리라. 그러나 나는 쉬이 지나치지 못한다.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발길을 돌린다. 한참을 망설였을 때는 아마도 컨디션이 안 좋았을 때려니 싶다. 혹은 먹으면 힘이 나는 음식을 유난히 찾게 되는 그 나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중년'까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미 그즈음으로 가고 있기에 조금은 서글퍼진다. 에잇, 개고기 미꾸라지와 '중년'의 상관관계라니.
맨숀. 나도 너무 오랜만에 본 단어라 굳이 녹색창에 검색해보았다. 맨숀은 고급 아파트의 속칭으로, 본래는 대저택을 뜻하는데 한국에서는 민간 아파트 건설업자가 공동주택에 대하여 호화스러움을 연상시키기 위한 호칭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우연히 빼꼼 고개를 내밀어 보게 된 이 풍광이 너무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한 컷. 앗! 유리창에 아저씨가 계셨었네. 처진 입꼬리가 너무 건조하다. 아마도 인생이 즐겁지 아니하신가 보다. 사는 게 힘들고 퍽퍽하고 고단 할 테지.
미싯가루? 나는 미숫가루로 알고 있는데... 미숫가루의 옛말인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찾아보니 '미싯가루'의 뜻은 이러하다. "미숫가루"(찹쌀이나 멥쌀 또는 보리쌀 따위를 찌거나 볶아서 가루로 만든 식품)’의 잘못된 표현. 아, 그런데 미싯가루가 더 입에 착착 붙는다. 오타가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곳
우리 동네에는 아직도 요상꾸리한 술집들이 있다. 재개발 때문에 아직도 상업 중이라는 말도 있던데,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밤이면 밤마다 꼬박꼬박 문을 열고 있다. 여름이면 조금 헐벗은 언니들이 의자를 밖에 내놓고 앉아있기도 하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 게, 한 켠은 미래 도시마냥 정돈이 잘 되어 있고 깔끔하고 깨끗하기가 최고인데 그 한 쪽 이면에는 아직도 이런 곳들이 그득하다. 물론 이전만큼의 호황기는 아니고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며 이주비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이 둘의 공존이 나는 늘 재미있다. 지나치며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이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까막눈 할매들은 아마도 위치를 기억해서 가겠지? 예전에, 아주 예전에는 집에서 미용실을 하시는 분들도 꽤 많았다. 미용실 허가를 낸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한창 유행하는 1인 전용 미용실(ㅋㅋ)들이 많이 있었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찾아간 어느 집 지하에서 나는 세 달이 지나도 풀리지 않을 뽀글뽀글 빠마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빠마였다, 파마가 아니었다. 아마 풀지만 않았더라면 1년도 거뜬했을 짱짱함을 자랑하던 그곳. 그곳에 가면 늘 손님은 없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다린다기보다는 그냥 가던 길에 오던 길에 들러 수다를 떠는 곳이었을 테다.
지금 함께 없는 사람들을 한 사람씩 소환해서 도마 위에 올리고 어찌나 요리를 하시던지. 그러나 내심 그 얘기가 재미있어서 머리를 만져줘서 졸린 가운데도 잠을 떨쳐내려 노력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그 아주매들은 참으로 맛깔지게 말도 잘하고, 없던 말도 잘 지어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에는 소설가들이 참 많아~
아직도 모래내시장에는 멋쟁이 아줌마, 아저씨들이 드나든다. 물론 구로디지털단지에도 그렇다. 지하철 역 앞에 무도장이 있기 때문에 세상 멋을 모두 부린 아줌마, 아저씨들이 드글댄다. 그러고 보면 모래내시장은 더 전통이 있는 곳이렷다. 연배도 조금 더 위인 것도 같고. 그럼에도 불고하고 신세대 무도장이란다. 이런 센스쟁이~
'쿠바'에 가서 춤을 추는 게 내 버킷리스트에 있는 것이라, 10년 전인가? 스윙댄스를 배우러 갔었다. 스윙이라 생각했지만 첫 입문으로 배운 것은 <지터벅>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스텝부터 배웠었다. 스텝스텝 락 스텝~ 발로 밟는 스텝보다 입으로 내뱉는 스텝이 익숙해질 무렵, 파트너의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춰 어설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라? 어! 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완전히 여자가 된 기분이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음악에 맞춰 멋을 부려 촥~ 한 바퀴 돌려줄 때, 치마가 파르르~ 빙~ 큰 원을 그릴 때! 그때, 아, 내가 여자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세상에서 최고로 짜릿했다. 아, 이 맛에 아줌마들이 장바구니 들고 왔었구나. 집에서 부엌데기 취급받고 무시당하고 사람 취급도 못 받던 아줌마들이 여기선 '여자' 취급을 받았겠구나. 그래서 미쳤었겠구나... 격한 공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후에 아주 후에 알게 되었다. <지터벅>은 원래 발음이고, 이게 일본을 통해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지루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 나는 그때 "지루박"에 미쳐있었었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9년 2월 3일, 어느 비 오는 날의 모래내시장 옆 우리 동네. 같은 시간 속에 존재하는 공간이라고는 상상하기가 힘든 상반된 모습이다. 그래서 더 묘하고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