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설 엄두가 안 났다. 그러나 그래야했기에 처음으로 혼자 떠났다.
두려웠다. 혼자 떠나는 여행도, 네가 없는 빈자리도. 모든 것이 두렵기만 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혼자가 될 것을 알았기에 준비를 해야만 했다. 우리에게 함께 할 미래는 없었음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내 꾹꾹 감정을 눌러담아 모르는 척 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문을 걸어나가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기를 꿈꿨었다. 니가 없어도 씩씩하고 용감하게 살기를 바랬었다.
하늘이 너무 맑았다. 내 마음도 몰라주고 제깟 녀석은 무에 그리 좋다고 쨍긋인지.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은 늘 눈물이 핑돌게 만든다. 특히나 늦가을 청명한 하늘은 시큰하기까지 하다. 보고싶었다. 그 와중에도 니 생각이 많이 났었었다.
언젠가부터 노란색만 보면 빠짐없이 사진에 담곤했다. 네가 좋아하는 색이라서. 아주아주 늙어 호호할배가 되면 노란색 스포츠카를 몰고 싶다던 너. 색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아마도 영원히 떠오를 것 같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색이 있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 색들과 마주하기 때문에. 네가 그리워서라기 보다는 그냥 자동반사적으로 네 생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함께 늙어갈 미래를 꿈꾸기도 했었다. 나 역시도 당신이 나보다 행복하길 바란다. 40년 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문득 지금도 바보같은 단꿈에 빠지곤 한다. 지금 나는 꿈꾸는 것 밖에 달리 할 것이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또 바보가 되더라도 꿈을 꿀 수 밖에 없다.
바다는 쉼없이 일렁이고, 내 맘도 수십번 망설이다가... 끝끝내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무슨 미련이 남았던건지 또 전화를 하고 말았다. 아주 짧은 통화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바보같이 혼자 동영상을 찍었다. 너에게 이 풍경을 전하고파서, 지금의 내 마음을 전하고파서. 이런 내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가끔은 도를 지나친 내 사랑이 참 밉기도 하다. 조금만 천천히, 조금만 숨돌리며 달려왔어도 지금과 같았을까? 문득문득 짙은 후회가 남는다.
해피엔딩이 아닌 영화는 안 보고 싶다.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특히나 로맨스에서는. 현실에서도 벅차도록 슬프고 아픈데, 영화에서만큼은 더없이 행복하기를 꿈꾼다. 그래서 '초원사진관'을 지나며 나도 돌을 던질뻔 했다.
길 위에서 네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앞을 보고 걷다가, 발을 보고 걷다가, 보도블럭을 보고 걷다가, 주변 풍경을 보고 걷다가. 그렇게 쉼 없이 네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떨어져있어서 오히려 더 그리움이 짙었고, 하필 여행을 혼자 간거라 네 생각을 할 시간이 차고 넘쳤다. 아마도 내 마음이 전해졌다면, 너도 역시 꽤나 피곤했을지도 모른다.
마른 낙엽조차도 몇 잎 남아있지 않던 10월의 마지막 날, 그렇게 혼자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을 걸었었다. 걷다가 사진을 찍다가 잠시 쉬며 그림을 그리고, 너에게 편지를 썼었다. 함께 오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이 순간을 함께 즐기고 싶었다. 읽는 동안만이라도 너 역시 낭만에 젖기를 바랬다.
고우당. 일본식 건물이라 그런지 살짝 음산스럽다. 안은 또 얼마나 어둡게. 삐거덕거리는 나무 소리가 어둠을 더했다. 무서워서 어찌 잘까 걱정했는데, 사온 막걸리 댓병 마시고 엄청 잘 잤다. 다다미방이라 바닥은 따듯 뜨끈했고, 방안 가득 뜨순 온기를 더했다. 그래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곯아떨어졌고, 왼종일 펴지도 못하던 아픈 허리도 씻은듯이 나았다.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없이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살다보면 참 희한한 곳에서 용기를 얻곤한다. 아마 이 날이 그날이었으리라.
가을은 아름답지만 쓸쓸하다. 아름다움은 순간이요, 쓸쓸함은 꽤나 짙고 깊다.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왜 이런 현실에 놓이게 되었는지, 왜 우리는 이렇게 떨어져있어야 하는지. 수 십번, 수 백번 생각해도 억울하기만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널 갖을 수 있을지 제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된 마당에 돌아보니, 그때 조금만 고민할껄 그랬다. 괜히 부화가 난다. 쳇.
아름다웠던 당신이여, 잘지내는가?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고 소식도 전하고 있긴한데. 마음만 먹으면 만나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은데. 가끔은 그때의 당신이 그립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우리 사이는 더 사무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