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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행/악인 (1)

<철감색의 봄> 리뷰 (1)

by 상준

잠깐. 일단 이 이야기를 듣기 전에 진정했으면 좋겠어요. 일단 저는 절대 범죄를 옹호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글에는 불쾌한 표현이 다수 있으니까 혹 범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으시다면 글을 읽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거실을 지나가다가 같이 보게 되었어요. 저는 그게 요즘 유행한다는 <눈물의 여왕>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차은우가 나오는 겁니다. 차은우랑 김수현을 둘 다 쓰면 출연료가 장난 아닐텐데라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까 <원더풀 월드>라는 다른 드라마였습니다.


지나가다 아주 일부분만 본 드라마고 내용을 엄마한테 대충 들은지라 내용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권선율(차은우 역)이 은수현(김남주 역)한테 복수하는 이야기더라고요. 은수현이 권선율의 아빠를 일부러 차로 치어 죽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권선율의 아빠는 은수현의 아들을 차로 치어 죽게 했습니다. 권선율은 아빠와 은수현의 아들 사건을 단순히 불행한 사고로 알고 있었는데, 11화에서 사고 당시에 음주운전을 한 데다 은수현한테도 굉장히 뻔뻔하게 굴었다는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 됩니다. 권선율이 녹음 파일을 들으며 우는 장면은 지금까지 삶의 목표였던 복수가 전제부터 무너지는 비극적인 장면이었죠. 네? 잠시만요.


은수현은 권선율의 아버지를 고의로 죽였습니다. 권선율의 아버지는 은수현의 아들을 사고로 죽였습니다. 음주운전이긴 하지만, 권선율의 아버지가 목적을 가지고 은수현의 아들을 죽인 건 아니잖아요. 권선율이 녹음파일을 듣고 나서도 이 둘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권선율이 녹음파일을 듣고 복수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람들이 악행과 악인을 다르게 보기 때문입니다. 은수현은 고의적인 악행을 저질렀지만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었으므로 악인은 아니고, 권선율의 아버지는 고의는 아니었지만 극악무도한 음주운전을 했고 또 유가족을 대하는 그 뒤의 행동들이 그가 악인임을 보여줬으니까요. 물론 다음화에서 반전이 있다고 하지만 그 화는 안 봐서 잘 모릅니다.




세상에는 그 죄목만 언급하더라도 분위기가 싸해지고 변명을 조금이라도 하려는 순간 죄를 저지르는 듯한 극악무도한 범죄들이 꽤나 있습니다. 위 매체에서도 그려진 음주운전이 그중 하나가 될 수 있겠네요. 학교폭력도 있습니다. 많은 연예인 분들이 학교폭력에 연루되어 악인으로 낙인찍히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우리는 아무런 이야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악인으로 낙인찍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변명”도 듣지 않으려 하죠. 그러므로 주인공이 악행을 하는 많은 이야기들은, 주인공이 악행을 하되 악인으로 낙인찍히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그 방법은 그 인물의 악행에 설득력 있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거겠죠. 위 이야기의 은수현을 예시로 들 수 있겠네요.


<타코피의 원죄>에서 마리나가 끈질기게 시즈카에게 학교폭력을 한 이유도, <당신의 과녁>에서 최엽이 어떤 사람을 15년 동안 가두려고 계획을 세운 이유도. <데스노트>에서 라이토가 공책에 이름을 써서 사람들을 죽인 이유도 나름대로 뭔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유가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놀랍게도,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아도 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 같은 논리적으론 잘못되었지만 직관적인 게 좀 더 와닿습니다. 설득력과 논리성은 또 다른 문제이니까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유보다도 공감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치 <기생충>,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나오는 장면처럼요.


작가들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자신과 완전 다른 인외적인 존재인 악인을 악행을 저지른 평범한 사람 정도의 위치로 끌어내리곤 합니다. 사실 이를 독자들에게 얼마나 잘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지가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번에 리뷰할 만화는 타츠마루 작가의 <철감색의 봄>입니다. 악행의 수위를 과연 만화에서 다뤄도 될지까지 높인 문제작이에요. 이 만화를 보면서 과연 악행과 악인의 경계선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만화의 초반에서부터 주인공은 죽은 친구의 여자친구를 강간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 문장을 쓰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 나쁜 악인이네요. 그러고 나서 나름의 이유가 나오는데요.


(좋아했던 애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내용상 여자친구입니다.)


이 이유를 납득하실 수 있으신가요? 사실 납득하기 많이 어렵죠. 아무리 친구를 잃어서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성욕은 아니지만 이상한 이유로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다니요.


인물의 상황이 나온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 상황에 우리를 대입해 봅니다. 그리고 그 인물의 행동을 우리도 따라 할지 판단해 보는 거죠. 그래서 복수물은 그 동기가 명확하고 공감하기도 쉬워서 요즘 많이 유행하는 것 같습니다. 악행에 그만한 이유가 부여되니까요.


하지만 이 만화는 복수 따위는 없습니다. 하루키를 죽인 건 비극적인 교통사고였지 후카이시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작중에서도 소이치는 자신이 악당이라는 말을 계속 반복합니다.


소이치는 계속해서 피지도 않던 담배를 피우면서 자신이 악인임을 억지로 되새깁니다. 그런데 왜 소이치는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악인이 되려는 걸까요.


제 생각은 다음번 글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그때까지 만화를 읽어와 주세요. 생각도 알려주시면 더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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