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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노 이니오의 장르 비틀기

<용사들> 리뷰

by 상준

세상이 밝고 깨끗한 것으로만 가득 차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건 바로 더럽고 추악하고 불편한 것으로부터 영원히 고개를 돌리면 된다.


팀플 조장을 정할 때의 불편한 침묵을 생각해 보자. 우리 모두는 조장을 하기 싫어하지만 어느 한 명은 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아무도 입 밖으로 조장을 하기 싫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런 불편한 침묵은 눈치싸움 끝에 포기한 한 명이 조장을 자진해서 하거나 가위바위보로 정하기 전까지는 계속된다.


그러나 그냥 우리는 그때까지 모른 척하고 태연하게 앉아있다가 가위바위보를 이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의 세상은 항상 밝고 희망찰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행복한 우리에게 굳이 세상의 불편한 것들을 끌어모아서 눈앞에 대령하는 작가가 있다.




아사노 이니오는 대표작 <잘 자, 푼푼>으로 유명하다. 만화 좀 읽어봤다는 사람이 <잘 자, 푼푼>도 안 읽어봤다는 건 조금 가소롭긴 하다. 사실 농담이고, 그냥 아사노 이니오 특유의 감성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만화이기 때문에 만화 힙스터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만화이다.


<잘 자, 푼푼>의 한 장면



아사노 이니오의 만화들은 전반적으로 암울하다. 결말도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보다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찜찜하게 만화가 끝난다. 이야기 속 수많은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무위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실에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한다.”




<잘 자, 푼푼>을 정말 리뷰하고 싶었지만 만화가 워낙 방대하고 할 말도 많기 때문에, 8부작 단편만화 <용사들>을 대신 리뷰하려고 한다. <용사들>은 최근에 유행하는 용사물을 비꼬아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보통 용사물이라 하면, 정해져 있는 클리셰가 있다. 용사가 동료들과 협력해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마왕을 무찌른다. 특히 그 기원이 <드래곤 퀘스트>로 대표되는 일본 jrpg 게임이라 용사물은 2000년도 이후 일본 만화나 웹소설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용사물 그대로의 클리셰를 답습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최근에 유행하는 <장송의 프리렌>은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고 나서의 후일담을 다룬다. 거의 늙지 않는 엘프이자 용사 파티의 멤버였던 프리렌이 과거 용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던전밥>, <무직전생> 등을 보더라도 조금씩 용사물을 비틀고 있다. 오히려 원래의 용사물을 찾으려면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같이 다시 게임을 뒤져봐야 한다.


용사물이 원래 추구하는 역경의 극복과 희망을 이니오는 어떻게 암울하게 만들었을까? 먼저 8부 동안 거의 모든 화가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 보자. 이 만화 속 마왕은 용사 파티 한 명 한 명에게 나쁜 마음이 파고들어 만들어진다. 방금까지 동료였던 인물이 마왕이 되어 죽여야 한다.


이니오는 여기서 더 나아가 동료들 사이 관계도 비튼다. 기존 용사물에서 동료는 생사를 같이하는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면, 이 만화에서 동료는 말 그대로 그냥 동료일 뿐이다. 오히려 친구보다 못한 직장 동료의 동료 같다는 느낌이다.


"대단히 원통한" 동료의 죽음 (<용사들> 2화)


이 만화를 읽으면 드는 생각인데, 이니오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사람의 입체성을 정말 잘 표현해 냈다. 아무리 불쾌하더라도 기어이 사람 본성의 악을 포착해 내 독자들에게 들이미는 것이다. 이니오가 가장 잘하는 독자들이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꽉 붙잡고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악을 잊지 못하게 보여주어 각인시킨다.


위선을 잘 포착한 장면(<용사들> 1화)


원래 하려던 말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어째서 이니오는 용사물 플롯을 활용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든 것일까? 특히 <잘 자, 푼푼>, <소라닌> 같은 작품들은 용사물, 판타지라기보다는 현실과 딱 붙어있는 데 말이다. (요즘 연재하고 있는 <MUZINA IN TO THE DEEP>은 좀 SF 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정통 판타지는 아니니깐.)


장편만화는 이야기를 빌드업하는 과정이 있다. 기승전결 중 기와 승이 이에 해당한다. 장편만화는 충분한 기승을 깔아 두어 독자를 서서히 이야기 속으로 침전시킨다. 하지만 단편만화는 어떤가. 단편 속에서 기와 승을 쌓는다면 아마 무슨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만화가 끝나버릴 것이다.


이때의 용사물 클리셰가 상당한 도움이 된다. 마치 어떤 밑그림 위에 그림을 고쳐나가듯, 충분한 설정 없이도 독자가 스스로 설정을 채운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채워진 설정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작가는 이야기를 비틀기 시작한다. 이때 독자의 머릿속에서 생기는 것은 일종의 부조리이다. 그렇게 독자의 기대를 하나씩 뒤집어 가며 결말마저도 원래 용사물과 반대되는 비극을 만들어 독자의 머릿속에 정말 큰 여운을 남긴다.





평생 길 위를 다닐 것 같던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한정된 장소에서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생각한 전화기는 사람들이 손에 들고 다니고 있다. 이야기도 진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장르를 비틀어야 하고, 그렇기에 많은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용사물(판타지)을 비틀어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은 많지만, <용사들>처럼 현실의 추악한 면들을 포착하여 그려낸 작품은 얼마 없다. 단지 비틀기를 위한 비틀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작가는 누구나 할 수 있을 장르 비틀기를 넘어서 자신 할 수 있을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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