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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디테일의 매력

<알몸인 꿈과 꿈을 이뤄주는 라인> 리뷰

by 상준

알몸인 꿈과 꿈을 이뤄주는 라인 (全裸の夢と叶えるライン)

카시키 타쿠토 작가의 단편.


가끔씩 이야기를 쓰다보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해야하나? 독창성이라고 해야하나? 음식으로 따지면 뭔가 미원같은 걸 안 넣어서 밍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단편만화다.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니 리뷰를 보기 전에 만화를 보면 좋겠다.



스포일러.





이 단편만화는 스토리가 정교하다던지 엄청난 반전이 숨겨져 있다던지 그렇지는 않다. 근데 이 만화를 읽으면서 나라면 이런 스토리를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인 알몸인 상태에서 듣는 피아노 꿈. 작가가 이런 소재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


거기다가 뭔가 모르게 하나 하나 중요하게 쓰이지도 않는 설정들은 오히려 이 주인공들이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진짜 작가 자신에게 일어난 개인적인 일을 뚝 떼어서 만화로 만든 듯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피아노 꿈도 작가가 직접 꾼 꿈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미지를 스스로 생각해서 만들었지는 않았겠지 설마..




물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정교하게 만든 스토리도 좋지만, 이 만화가 매력있는 이유는 현실에서 겪지 못했다면 알 수 없었을 디테일들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나는 새벽에 친구네 어린이집 차를 몰래 친구가 가지고 나와 그 차를 타고 같이 한강에 간 적이 있다. 어린이집 차에는 아이들이 전부 다 내렸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차량 가장 뒷 문에 벨을 달아 놓는다. 그 차를 세우고 내릴 때마다 그 벨을 누르지 않으면 벨이 계속 울린다. 주유를 할 때도, 한강에 주차할 때도 그 벨을 계속 내려서 눌러야 했다. 그래서 그 차를 타고 한강을 갔다오는 동안 너무 웃겼다. 애초에 거기에 다녀온 것도 그냥 그러면 재밌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게 됐다.



사람들은 은근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과 그에 대한 그들의 생각들에 관심이 많다. 괜히 요즘 인스타 일상툰들이 유행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만화들은 오히려 개인적인 일과 생각을 잔뜩 넣으면 넣을 수록 매력적이다. 즉 디테일이다.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쓸 수 없는 디테일, 그러니까 어린이집 차를 타보지 않았더라면 나도 아마 영원히 벨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뭔가 이 만화에서 라인이 꿈을 이뤄주는 데에 굳이 거창한 이유를 대지 않고 "그냥!"이라고 이유들을 떼우는 것도 너무 좋다. 그때 갔던 한강이 읽으면서 계속 생각났다. 이런 디테일을 창작물에 넣는다면, 단번에 창작물은 왠지 현실에 있을 것만 같고 등장인물들은 실존하는 느낌이 든다. 단번에 매력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직접 경험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시끌별 녀석들>, <이누야샤>등 일본 로코 만화를 거의 창립한 타카하시 루미코 작가는 경험은 상상력으로 커버할 수 있기에 중요하지 않다고도 했고, 경험이 꼭 필요하다면 그건 그냥 그 작가의 재능이 부족한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걸 가지고 <아오이 호노오>의 작가 시마모토 카즈히코는 유튜브에서 드립을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림이 정말 예쁘고 작품에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넘치지만 사람 자체는 되게 괴팍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작품에 녹여내는 걸 중요시한다. 불을 표현하려면 불을 접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예술관이다.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고 나서 자신의 것이 없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 "자신의 것"이라는 건 다른 사람의 창작물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꺼내온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내 생각에는 이렇다. 이런걸 생각으로만 만들 수 있다면 사실 경험따위 아무런 상관도 없다. 이런 쓸데없는 디테일들을 하나하나 챙길 수 있다면, 이렇게 현실에서 일어났을 법한 일을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서 생각해 낼 수 있다면 경험따위 뭐가 중요한가. 그렇지만 나는 전혀 그만큼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오늘도 지금까지 나한테 일어났던 일들과 그 디테일들을 어떻게든 창작물 속에서 써먹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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