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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뇌와 새로운 세계

<가여운 것들>, <천국대마경> 리뷰

by 상준


<가여운 것들>을 후딱 보고 왔으니 빨리 리뷰를 적어야지~




<가여운 것들>을 개봉 첫날에 보고 왔다. 영화값이 너무 비싸서 원래는 헌혈을 해서 티켓을 받으려 했지만 할인이 되서 그냥 보고 왔다.



스포일러.













엠마 스톤은 작 중에서 벨라 백스터라는 인물이다. 벨라 백스터는 재미있게도, 어른의 몸에 아이의 뇌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작품 속 갓윈 백스터라는 벨라의 '아버지'격 인물이 임산부의 시체에서 태아의 뇌를 꺼내 시체에 이식했다. 갓윈 백스터는 벨라를 자신의 역작인 '실험체'로 보고 벨라를 통제하려 들거나, 아니면 '딸'로 보며 부성애를 베풀려고 한다. 벨라는 갓윈에 의해 집 안에만 가둬두고 크다 벨라가 던컨 웨더번이라는 남자를 따라가며 세상을 살피게 된다. 처음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벨라가 여러 경험을 통해 점점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며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게 영화 내용이다.




뇌이식이라는 소재는 현실에서는 이뤄진 적이 없지만 지금까지 창작물 중에서는 얼마나 많이 이뤄졌는가. 현대 사회는 우리의 모든 지성과 생각이 뇌라는 징그럽게 생긴 부드러운 것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제로 나는 뇌가 너무 징그럽다고 생각하는게, 당장 알탕에 있는 고니도 어렸을 적에 징그러워서 못 먹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징그러운 것을 다른 신체에만 옮길 수 있다면, 우리는 생각을 간직한 채로 다른 사람의 몸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차은우의 몸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차은우의 몸으로 사는 세계는 지금 내가 사는 세계와 같지만 완전히 다를 것이다. 따라서 다른 몸이 된다는 소재는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이며, 이를 활용한 플롯은 정말 많은 작품에서 쓰이고 있다. 예시를 들면 <너의 이름은>, <뷰티 인사이드> 등이 있다.




이 영화에서 벨라는 자신이 원해서 자신의 친엄마의 몸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남에 의해서 뇌이식을 당하게 되는 작품이 하나 더 있다. 아마 이 영화를 리뷰하는 중에 이 작품과 붙혀서 리뷰하는 블로그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이시구로 마사카즈의 <천국대마경>이다.







천국대마경





<천국대마경>의 여주인공인 키루코는 사실 남자이다. 어떤 의사가 원래 몸의 주인이었던 키리코에게 그녀의 남동생의 뇌를 이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 만화와 영화가 겹치는 부분은 뇌이식만이 아니다. 그건 바로 성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벨라를 지켜보게 되다가 헉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건 바로 벨라가 자위를 혼자서 알아내는 장면이다. 벨라는 너무 기쁜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찾아낸 '기분이 좋아지는 법'을 공유하려고 한다. 이 좋은 걸 왜 다들 안하냐는 벨라의 말에 맥스라는 인물은 그 행동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상류 사회에 맞지 않다고 벨라를 말린다.




다만 키루코의 남동생은 학생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누나와 자신에게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고, 일어나보니 자신이 누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끔찍한 사고에서 누나가 살고 동생이 죽었다고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원래 몸과 누나의 정신은 사라졌다. 더군다나 '누나'를 겨우 살려냈다는 의사는 사라졌다. 키루코는 누나를 잃은 슬픔과 동시에 이따금 고개를 드는 좋아하는 여자의 몸을 얻었다는 음흉한 기쁨을 느낀다. <천국대마경> 애니메이션에서 커튼 넘어로 자위를 하는 듯한 키루코의 모습이 벨라의 모습과 겹친다.




몸이 바뀌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세상이 바뀐 것이다. 뇌만이 우리 세상의 전부라면, 어느날 우리 뇌가 정말 바뀌더라도 바뀐 것을 인지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직 뇌이식이 개발되지 않았지만 약간의 상상을 한다면 당연하다. 아마 우리는 우리의 몸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느낀다는 것은 몸에서 뇌에 직접 전달하는 전기신호같은 것이니 모든 몸이 전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가장 극명하게 느끼려면 몸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 감각의 절정에 이르는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다.




두 인물이 점점 성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몸을 알게 되면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부분이 흥미롭다. 그리고 성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두 인물의 모습도 비슷하다. 두 인물 모두 각자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많은 일을 보고 겪으며 이를 통해 성장한다. 벨라의 세계는 현대에도 없는 과학 기술과 그에 비해 옛날 시대(잘은 모르겠지만 18~1900년도?)가 섞인 것 같은 신비한 세계이고, 키루코의 세계는 대재해 후 모든 것이 붕괴되고 사람을 먹는 괴물이 돌아다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느낌의 세계이다. 직접 이야기 속에서 세계를 겪는 주인공에게도, 이야기를 보고 있는 독자 입장에서도 처음 겪는 세계라 나와 인물이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여운 것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벨라가 가난한 자들이 있는 마을을 내려다 보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이 좋은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침대에서 자는 줄 알았던 벨라는 이들을 내려다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벨라는 세상에 대해 더 성숙한 시각을 가지게 된다. 남들을 돕고 본인이 직접 가난을 겪어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 장면 전후로 벨라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가난한 자들의 모습과 충격받은 벨라





<천국대마경>에서는 키루코가 계속해서 찾아다니고, 항상 존경했던 인물에게 배신당하는 장면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것도 아주 끔찍하게 배신당하는데, "그 장면"이라고 검색하면 바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반전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겪고 난 키루코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큰 혼란을 겪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 존경했던 인물과 원래 자신이 찍혀있던 사진을 잘게 찢어 강에 버린다. 존경했던 사람이 배신당하고 나서 키루코는 더이상 예전과 같은 세계에 살지 못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생각이 정말 내 머리속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생각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겪어보지 않은 세계를 겪게 되면 사람의 생각은 바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에게 세계란,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될 수도 있고, 지금까지 그가 보고 알았던 형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뇌를 감싸고 있는 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그려내는 창작물에서 인물에게 새로운 몸을 부여하는 건 그 인물에게 다른 세계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이세계물이 현대 사회와 완전 다른 판타지 세계에 인물을 보내는 데에 지금은 한정되어 있지만, 어떻게 보면 뇌를 이식하는 것 또한 이세계물에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새로운 세계를 인물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보여주어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게 창작자의 숙명인 것 같다. 생각을 개조한다기 보다는 그 작품을 보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생기지 않았을 작은 조각을 독자의 뇌 한구석에 박아놓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조각은 언젠가 독자를 "성장"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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