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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에서 표정을 더 잘 쓰는 법

<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너는 방과 후 인섬니아> 인물 표정 탐구

by 상준


표정이란 무엇인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얼굴 위에 도드라지는 어떠한 패턴이다. 우리 인간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표정을 더 잘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진화했다. 서로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어야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배우가 직접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만화나 애니메이션에는 그렇지 않다. 실제 인간이 없기 때문에, 만화나 애니메이션 속 인물들은 주로 표정에서 도드라지는 패턴 몇 개만을 가지고 와서 표정을 짓게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화를 낼 때 눈썹이 안쪽으로 모이고, 입꼬리를 내린 표정을 짓는다. 직접 사진과 만화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angry-man-boss.jpg?type=w966 이미지: Freepik.com





이 표정의 패턴을 만화 속에서 따와 표현해 분노를 전달한 장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1710826480.jpg?type=w966 타코피의 원죄 4화






<타코피의 원죄>의 그림체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만화적으로 과장된 부분이 많고, 단순화 한 부분이 많지만 분노한 표정의 패턴은 모두 지켰다. 따라서 이 장면은 마리나의 분노를 대상인 인물인 시즈카와 독자들에게 매우 잘 전달하고 있다.




수많은 연출에서 얼굴을 제외하고 손, 허리가 펴진 정도, 자세 등으로 감정을 전달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꽤나 성공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표정이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수많이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더 이상은 식상하게 느껴진다. 예전 글에서도 많이 말했던 주장이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주인공이 서럽게 운다고 해서 같이 슬퍼지는 사람은 더욱더 줄어들고 있다.




표정의 직접적인 설득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써먹기 위해서 가장 적절한 표정을 작품의 가장 적절한 순간에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적절한 표정과 순간이란 어떤 것인지 다음 두 작품을 보면서 알아보고자 한다.




<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 <너는 방과 후 인섬니아> 스포일러.





<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는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23년 10월에 파일럿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무려 1억 뷰를 달성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맞는 음악과 매력적인 설정, 신선한 스토리 등이 있겠지만 마지막 장면이 남기는 큰 여운을 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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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에서 어느 날 디지털 세계로 소환당한 주인공 폼니는 계속해서 원래 세계에 돌아갈 방법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곳을 탈출할 수 없다고 듣는다. 이곳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며 언젠가 '추상화'당해 자아를 잃고 미쳐버리는 운명 외에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미 포기한 먼저 온 인물들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폼니는 결국 탈출구라고 써진 문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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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문으로 들어간 폼니는 끝없는 방을 마주하게 된다. 방을 하나 건너 새로운 탈출구를 열면 다른 방이 있고, 또 다른 방이 있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을 연 순간, 아무것도 없는 공허에 도착한다. 폼니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케인에 의해 구출되고 케인의 고백을 듣는다. 사실 이 문은 케인이 탈출구를 원하는 모두를 위해 만든 가짜 탈출구였던 것이다. 탈출구 너머에는 뭐가 있어야 하는지 몰라 미완성으로 둔 것이었다. 결국 폼니는 이곳을 영원히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 사진과 같은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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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표정을 분석해 보려고 한다.




먼저 눈에 띄는 점은 눈썹이 내려간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슬프거나 우는 사람이 짓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입꼬리는 올라가 있다. 이는 웃는 사람의 표정이니, 눈썹과 입이 서로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얼굴 자체에서 모순이 생기기 때문에 이 표정은 시청자들의 뇌리에 더 잘 남을 수밖에 없다.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눈동자는 극단적으로 작아져 있다. 사실 이는 고통스럽거나 놀란 사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기법이다. 눈을 크게 떴을 때 보이는 흰자의 크기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눈동자를 작게 그리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 표정이 아니라 기법인 이유는 실제로 사람이 놀랐을 때 눈동자가 작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폼니가 탈출하려는 모든 희망을 잃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눈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서커스이기 때문에 폼니는 웃어야 한다. 표정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비극성이 오히려 폼니의 입꼬리가 올라갔기 때문에 더욱 와닿는다.





<너는 방과 후 인섬니아>의 45화에도 비슷한 표정이 있다. 먼저 작품을 소개하자면, 고등학생인 남주인공 나카미와 여주인공 마가리가 서로를 알게 되며 순박한 사랑을 쌓게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도 나오는 주제인 '불면증'은 나카미와 마가리가 동시에 가지고 있는 병으로써, 서로를 잇는 역할을 한다. 불면증은 두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아픈 과거의 상처에 의해 생긴 것으로써, 둘은 서로를 알아가며 고통스러웠던 불면증을 점점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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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정은 나카미가 자신의 상처를 마가리에게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어째서 나카미가 잠에 들 수 없었냐면, 나카미가 어렸을 때 잠든 한밤중 아무런 징조도 없이 나카미의 엄마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나카미는 잠을 자면 내일이 되어 불행한 일이 징조 없이 다가올 불안에 휩쓸렸기 때문에 결국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 나카미는 마가리와 같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그 불안감이 없어졌기 때문에 마가리의 곁에서 잘 잘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카미는 담담한 말투로 자신의 불안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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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이 표정을 분석해 보려고 한다.




사실 눈물만 가리고 보면 그냥 멍 때리고 있는 표정 같아 보이기도 한다. 마가리에게 얘기하고 있지만 눈동자는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눈썹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고, 입꼬리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이 표정에서 가장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는 것은 나카미의 눈물이다.




눈물은 어떤 감정이 격해졌을 때에 나오는 것이라, 특별히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 나카미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모순적이다. 하지만 나카미가 담담하게 자신의 불안을 말하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남들에게는 내일이란 그저 일상적인 것이지만 나카미에게 내일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잠이 들면 내일이 와버려라는 말은 이 장면만 툭 잘라놓고 보면 당연하고 뜬금없는 웃긴 말이다. 어디 짤로 잘라서 써먹어도 괜찮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독자들이 이 장면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나카미의 눈물, 더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담담하게 고백하는 나카미의 표정의 모순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두 작품이 슬픔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보여주는 방식과 슬픔의 종류가 다르다. <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에서는 정말 극적인 슬픔이라고 한다면, <너는 방과 후 인섬니아>에서는 담담하지만 깊은 현실적인 슬픔을 준다. 각자의 표현 방법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에서 활용하고 있는 얼굴에서 나오는 표정의 이미지 모순은 독자에게 여운을 남기거나, 아니면 오히려 감정을 더 잘 전달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표정을 비추어 주는 순간 또한 가장 감정이 극적으로 다다른 순간에 클로즈업을 사용하는 것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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