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지내다 보니 도시의 모습이 훤하다. 익숙한 곳에 서서 지난날과 더 지난날, 아주 먼 옛날까지 회상한다. 오랜만의 방문에서 나는 이 도시의 건재함을 확인한다. 그리고 안도한다. 사이에 깊고 넓은 협곡, 코로나19의 그늘이 있으므로. 그때 갔던 미술관에 가서 같은 그림을 보고, 전에 좋았던 레스토랑에서 변함없는 맛에 기뻐한다. 그때는 정말 바쁘고 발 디딜 틈 없었던 곳이었는데 이젠 어딘가 열정이 사라져 있는 가게도 본다. 아무런 흥미와 기쁨 없이 그저 멀뚱히 서 시간만 죽이고 있는 직원을 본다. 비슷한 업종의 새로운 가게가 엄청 성업하고 있는 것도 본다. 그곳엔 상냥한 열정이 있다. 이 멋진 가게에서 일한다는 자부가 눈에 보인다. 흥망성쇠를 논하기에 4년은 충분한 시간인가 보다.
그러나 때론 한 달도 충분한 시간이다. 꼬마는 몇 개의 스페인어를 배웠고 그걸 때때로 요긴하게 써먹는다. 지나가는 아기를 보면 ‘올라, 베베!’ 수줍게 말하고 레스토랑의 직원에게는 ‘올라, 세뇨라.’ 라고 인사해 환한 응대를 받는다. 택시에서 내릴 때는 ‘아디오스’ 와 ‘그라시아스’ 를 번갈아 써먹는다. 그렇다. 꼬마가 한 달 동안 배운 말만 잘 써도 세상의 많은 어려움들이 보다 쉬워질 것이다.
나는 이 도시에 무엇을 보러 왔지. 같음과 다름을 보러 왔지.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아서 버스 앞자리의 아주머니는 요리 동영상을 열심히 보고 있다. 알고리즘의 마법은 희한해서 두어 개의 요리 영상 다음은 식칼로 양배추를 조각하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감탄하며 양배추 조각에 빠져들었다. 물론 나도 뒷자리에서 열심히 훔쳐보았다. 신기하네, 재미있네, 하면서. 밀라 씨네 집, 까사 밀라에선 100년도 더 전의 모습을 만났다. 그때 살던 사람들의 집을 재현해 놓은 공간을 차례로 거닐었다. 거기엔 아기 욕조도 있고, 풍로의 불을 다스릴 때 쓰던 손부채도 있었다. 꼬마는 구식 타자기의 자판을 눌러보며 '컴퓨터!' 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자기 지금 일하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그렇지, 밀라 씨도 그 시절 재택근무를 한 모양이구나.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삶을 살고 있네. 심지어 우산과 지팡이의 모습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어. 꼬마는 지팡이 손잡이를 만지며 '할아버지들이 이거 들고 공원에 가요.' 이런 말을 한다. 맞아. 할아버지들은 지팡이를 들고 공원에 가지. 그리고 우리도 공원에 가지.
출국 전날엔 오전 오후 둘 다 공원에 갔다. 아침엔 바다 병원 앞 공원 놀이터, 오후엔 미로공원이었다. 이젠 어디에 무슨 미끄럼틀이 있고 어떤 놀잇감이 있는지 훤히 다 안다. 동네 아이들은 여전히 신이 나 뛰어놀고 있다. 꼬마도 열을 올리고 있지만 나는 어딘가 시무룩하다. 떠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린 것이다. 저녁엔 본격 짐 싸기에 돌입하면서 가방 안을 재정비했다. 그리고 이제는 가방 안에서 짐만 될 진라면 매운맛으로 저녁을 먹는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계란도 풍덩풍덩 빠뜨려 끓였다. 뜨겁고 맵고 짠 국물을 마시며 내가 돌아갈 곳의 정체성을 혀로 느낀다. 아, 내일 아침이면 바쁘고 다급하고 복잡한 세상으로 떠나는구나. 인천공항에서부터 말도 안 되게 빠르겠지. 사람들은 척척 눈치껏 줄을 서고, 모든 절차는 일사불란하게 처리될 거야. 내야 할 서류가 있다면 이미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이 한가득인 세상. '오, 무슨 서류 말씀이신가요? 잠시만요, 세뇨라. 그게 내 가방에 있던가? 오, 이건가요? 아, 이게 아니라고요?' 하던 사람들 속에서 한 달을 살려다 돌아가려니 벌써 멀미가 나려한다.
어지러운 마음 달래려 마지막 밤은 또 모리츠 맥주공장에 가고 말았다. 엄마에게 꼬마의 잠 재우기를 부탁하고서 나는 홀가분하게 그러나 적당히 슬픈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스페인 책방의 에바 사장님을 만나 마지막 술을 홀짝이는 밤. 아직 여정이 많이 남아있는 사장님의 얼굴은 밝다. 나는 웃음 사이로 한숨을 폭폭 쉬며 맥주를 마신다. 어쩌다 보니 한 달 사이 여섯 번이나 오게 된 모리츠. 물론 4년 전에도 왔었다. 그때도 지금도 맥주는 맛있다.
갔던 곳에 가고 또 갔던 곳에 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이 도시가 좋은가 보다. 오래 지내면 싫증이 나거나 덜 좋아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과 다르다. 여전히 좋아한다는 걸 안다는 거, 그것도 큰 수확이다. 컴퍼스의 침을 바닥에 꽂고 빙글 돌려 연필을 착지시킨다. 다시 연필심을 축으로 삼아 이번엔 침을 빙글 돌린다. 그리고 반복해 나아간다. 책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뒤뚱거리며 전진한다. 수학 시간을 때우던 놀이처럼 이렇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인생을 살아왔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내가 착지할 수 있는 지점을 가늠해 본다. 저기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한 뼘 한 뼘, 나는 삶을 밀고 나갔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자세와 마음가짐은 분명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엄마는 삶이 곤두박질치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할 때-그게 지금의 내 나이였다-한 줌의 포기 없이 일어섰다. 내가 그 나이 되어보니 솔직히 그냥 포기하고 제 살 길 찾아 떠났다고 해도 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원망이야 하겠다만 그것도 엄마의 선택, 엄마의 인생이니까. 그렇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고, 풍파가 닥쳐올 때마다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을 사는 사람. 그래서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 내겐 엄마처럼 비장한 기운은 없으나 나 역시 가늠하고 선택하고 밀고 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무사히 완수하고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지퍼백 가득 넣어온 비상약을 쓸 일 없었으니 참으로 다행이야, 생각하면서.
여행을 준비할 때와 지금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금리가 오르고 주식이 떨어지고 환율 상승에 경제 위기설도 들린다. 나도 돌아가 다시금 개미처럼 일해야 할 것이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마음껏 방만했던 날들이여, 안녕. 샹그리아 연못에서 하몽만 걸치고 노닐던 날들이여, 아디오스. 그런데 그 기억에 개미처럼 일하는 날들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보람과 동기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여기에 오겠지. 가 본 곳에 또 가고, 봤던 그림 또 보고, 레스토랑에선 여전히 맛있구나 감탄하려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많이 올라갔네, 매번 했던 말을 다시 하려고. 그때도 바다는 푸르고 공기는 맑겠지. 마음껏 수영하고 달콤한 낮잠을 자야지. 여행의 추억들을 성실하게 복습하고 철저히 예습해 서울대 아니 바르셀로나 대학에 가려 한다. 가서 낮잠 자는 고양이들을 구경하고 오래된 도서관으로 스며드는 학생들을 봐야지. 예전에 썼던 글을 보며 지금 하는 다짐에 힘을 얻는다. 그땐 그걸 '거짓말 같은 시간' 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어쩌면 미리 다 알고 있었는지 몰라. 어떤 차원의 나는 지금을 미리 살아봤는지 몰라. 햇살 아래 우리를, 놀이터에서의 우리를. 그래서 다시금 결심한다. 꼭 돌아가겠노라고. 다시금 이 도시를 누비며 기꺼이 방황하겠다고. 그때 내 사랑은 더욱 무르익고 꼬마는 더 자라 있고 무사히 10주년을 넘긴 나와 달도 더욱 굳건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맑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