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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일요일 오후. 오늘 갈 곳은 맥주 공장이다. 그곳에서 갓 만든 맥주를 마음껏 먹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예전에 달이 출장길에 근처 브루어리에 들러 맥주를 사 온 적이 있다. 상표도 없는 커다란 페트병에 든 맥주들. 갓 만들어낸 맥주의 맛은 놀랍도록 좋았다. 그리 민감하지 않은 혀로도 좋은 것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처음 흑맥주의 맛에 빠지기도 했다. 그 이후로 선택지가 있다면 흑맥주를 고르게 된 나다. 물론 더울 때는 도수가 낮고 쨍한 맛의 동남아 맥주를 마시고, 이도 저도 고를 수가 없다면 카스도 달게 마시는 나지만. 그래도 오늘 밤은 기대가 된다. 술을 콸콸 마실 예정이므로 어디서 시간을 좀 보내다 이른 저녁에 가자며 고른 곳은 호안 미로 공원. 맥주 공장까지의 동선에 있기도 하고, 앞에 붙은 호안 미로란 이름 때문이기도 했다. 구글맵의 사람들은 '여기저기 개똥이 널려 있는 혼잡한 곳'이란 평을 내리긴 했으나, 아직 맑은 정신일 때 개똥도 피할 수 있다 싶어 그곳에 가기로 한다.
사실 여기에서부터 반했다. 옆으로는 탁구대가 여럿 설치된 공간이 있고, 나무에 가방을 걸어둔 사람들이 탁구를 치고 있었다. 나는 잠시 필름을 갈아끼우느라 멈춰 섰다. 그러다 고개를 드니 이렇게 아름다운 흙길이 펼쳐져 있다. 푸른 잎들 가득한 쪽으로는 어른들을 위한 운동장이 종목 별로 마련되어 있다. 조기축구회 같은 모임들이 일요일 오후의 경기를 즐기고 있다. 튀는 공 사이 웃음이 흩어진다. 풀잎 사이로 그걸 잠시 구경하다 눈을 떼자 커다란 개가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 우리는 개와 적당히 떨어져서, 그러나 개가 가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다시 말썽을 부리는 카메라를 잠시 점검하는 사이, 아까 건너온 길에 해가 저물고 있다. 누가 가꾼 것일까? 아마도 그런 거겠지. 덤불에 각각 피어난 꽃들이 어여뻤다. 뉘엿뉘엿, 이럴 때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말과 함께 해가 지려한다. 낮은 각도의 볕이 공원 전체에 내려쬔다. 우리는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커다란 개를 따라 도착한 곳은 넓은 공원의 안마당. 온통 흙밭인 이 곳엔 아이들이 엄청나게 모여있다. 저물녘 공기 중으로 퍼지는 비눗방울이 너무 아름다워 걸음을 멈췄다. 이리저리 흩날리는 비눗방울을 따라 아이들이 뛴다. 그건 자유롭게 추는 군무 같았다. 공원의 곳곳엔 구획 별로 놀이 공간이 섬세하게 들어서 있었다. 자그마한 울타리가 쳐진 곳엔 아직 걷지 못하는 아가들이 놀고 있다. 공원의 가장자리에는 강아지 놀이터가 있다. 커다란 개, 작은 개, 더 작은 개. 모두들 달음박질치며 논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왜 그랬을까. 왜 그곳에서 우리의 마음이 쿵쿵 뛰었을까.
자리 잡은 벤치에선 나무들 사이에 설치한 놀이기구가 잘 보였다. 놀이기구라 해봐야, 나무 사이에 묶은 줄과 거기에 매단 타이어가 전부다. 왼편, 아마도 놀이의 시작점인 그곳엔 작은 계단이 있었다.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기다릴 때의 바로 그 자세로 엄숙하게 열을 맞추고 섰다. 머리 위로 기대가 피어오른다. 그러다 제 차례가 오면 타이어 밑에 매달린 작은 발판과 줄에 온몸을 기대 무게를 싣는다. 그러면 그 아슬아슬한 그네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간다. 놀이의 재미를 아는 아이들은 더 과장스런 몸짓으로 반동을 이용해 스릴을 즐긴다. 보는 우리가 어어, 쟤 좀 봐라, 할 정도로. 하도 요란스레 타던 아이는 곧 엄마의 손에 끌려나간다. 우리는 조용히 웃는다. 눈 앞에 있는 작은 철봉과 구름사다리엔 아이들과, 손녀와 함께 나온 할아버지가 있다. 정말 별 것 아닌 높이인데, 할아버지는 손녀가 한 발 한 발을 뗄 때마다 찬사를 늘어놓는다. 손녀는 그걸 듣고 다시 용기 내어 한 발을 조심스레 내딛는다. 이상하게 마음이 찡하다. 그건 내 마음속 무엇을 건드렸다.
스물여덟에 결혼한 이후, 아이 이야기는 먼 다른 곳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난 때였을까. 엄마와는 진지하게 이야기하다 둘 다 눈물을 보인 적도 있다. 정동의 까페에서의 일이다. 엄마는 부산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내내 울었다고, 나중에서야 이야기해 주었다. 그날 까페에서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도저히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고. 이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키울 자신이 없다고. 엄마는 내 말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한편으론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회한으로 다가왔나 보다. 결국 내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 것. 다 커버린 내가, 서른이 훌쩍 넘은 내가 미래를 밝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 엄마의 잘못처럼 여겨졌나 보다. 나는 그때 그 모든 것이 짜증스러웠다. 더불어, 그렇게 마음으로 누군가를 늘 그리고, 보듬어야 하는 자리가 엄마라면 그걸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무겁지 않나. 눈 감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자리라는 것이.
이어 환경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덮치고, 피로와 스트레스로 내리 앓았다. 나는 다분히 염세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삶이 즉 고통인데, 무엇하러 작은 생명을 이 고통 속에 던지려 하나. 언젠가 농담처럼, 아빠도 손주 보고 싶어? 물었을 때, 여간 해서 그런 소리 않는 아빠가 아니, 여간해선 좋다 싫다는 감정적 동요 자체를 하지 않는 아빠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것을 보았을 때. 마음이 적잖이 찌르를 울렸지만, 나는 웃음으로 넘겼다. 나는 아빠를 좋아하지만, 아빠를 많이 미워하기도 했어. 아빠가 바란다고 해서 내가 그걸 이뤄줄 의무는 없어. 내 안의 열다섯이 그럴 때 고개를 들었다. 아이를 생각하기엔 내 삶의 무게가 너무 버겁고, 나는 나와 살아가는 것, 삶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찼으니까. 그리고 두려웠다. 내가 사라질까봐. 내가 뭐라고, 그러나 나에겐 나라는 존재가 중요한데, 그것이 송두리째 사라지거나 달라질까봐. 나는 그것이 몹시 두려웠다.
호안 미로 공원에서의 시간이 그 마음 위로 내려앉았다. 이곳의 아이들은 너무나 해맑게 놀고 있다. 그 뒤로 가로로 긴 도서관이 놓여있고, 일층엔 어린이용 작은 의자들과 책상이 있다. 어떤 눈총도 받지 않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고 논다. 나는 버스에서 본 것들을 겹쳐 떠올린다. 바르셀로나의 모든 버스들은 저상 버스다. 어떤 것들은 버스 둘을 이어놓아 아주 길다란 모습으로 움직인다. 버스의 중앙에는 유모차나 휠체어가 자리할 공간이 널찍하게 놓여있다. 그 날, 버스엔 사람들이 많이 들어차 있었다. 어느 정류장에서 유모차를 미는 엄마가 탔다. 유모차를 세울 공간에도 사람들이 서서 떠들고 있었다. 누군가 통로에 들어선 유모차를 보고선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미안하다는 제스처와 함께 서둘러 자리가 마련된다. 엄마는 유모차를 밀며 안전한 공간으로 이동했다. 다시 수다가 이어졌다. 거기서 놀라운 것은 엄마의 태도였다. 허둥지둥거릴 것도 없고, 유난하게 감사 표시할 것도 없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동. 주변 사람들의 눈빛 역시 서울의 온도와는 달랐다. 나는 서울에서 종종 그런 눈빛들을 보았다. 너에게 양보를 해 주었으니, 그에 합당한 감사 인사를 하는지 보자, 그런 눈빛들. 선의를 베풀었지만, 기대한 감사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 비난할 준비가 되어있는 눈빛들. 이곳 혼잡한 버스 안에선 그런 눈빛들이 읽히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일상이었다. 배려해야 할 대상이 왔으니, 당연히 배려한다. 끝.
그게 나에겐 충격이었다. 아이와 함께, 아이의 짐을 구비해서 대중교통을 타고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 나의 도시에선 그것이 고행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모차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공간과 부피를 차지하는 것 자체가 죄스러운 일이고, 아이의 본능적인 반응에 주변을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허둥지둥하는 사이 쏟아지는 눈총들. 그렇게 고통받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결론은 쉽게 돈과 연결되었다. 카시트와 짐을 싣고도 넉넉한 자동차, 사나운 공기질과 널뛰는 기후에 안전하게 아이를 풀어놓을 곳은 당연하게 돈을 요구했다. 호환마마 아니 그보다 더한 혐오에서 피난처를 찾으려 할 때 필요한 것들. 나는 본능적으로 지금보다 더욱 약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는지 모른다. 그것도 온전한 나의 선택으로 인해 벌어질 일. 어쩌면 피해갈 수 있는 비난들을 덧입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공원에서 나의 겁을 보았다. 내가 상상한 갑옷들이 필요 없는 공간을 만났기에. 돈이 없어도 된다.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 아래, 아이를 풀어놓아도 된다. 온통 평지인 이 도시에서 유모차를 밀며 산책할 수 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과 공원들. 그 사이를 왕복하는 사이 아이는 걷고 뛸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작은 희망을 봤다. 나 같은 염세주의자에게 그 희망은 작은데 결코 작지만은 않은 거였다.
한참을 그렇게 벤치에 앉아있었다. 비눗방울을 만들던 아저씨가 짐을 정리하고 있다. 다가가 거꾸로 놓은 중절모에 2유로를 놓는다. 아저씨가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출구 쪽에 이르니 커다란 조각상이 보인다. 미로 이름을 붙인 것은 이 조각상 때문이었나 보다. 우리는 그 이름에 홀려 여기에 왔고, 그의 예술세계보다 더 큰 것을 보고 돌아간다. 우리는 마음 한 구석에 호안 미로 공원을 크게 점 찍는다. 기억할 만한, 기록할 만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