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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새가 되어, 얼음 띄운 오렌지 주스와 어젯밤 포장해 온 하몽을 먹는다. 짠맛과 상큼함이 잘도 어우러진다. 그걸 주워 먹으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두드리는 시늉만 하지 않기 위해, 미간에 주름도 잡아본다. 하루에 정해둔 페이지만큼 규칙적으로 작업하자는 다짐은 살포시 흩어진 지 오래. 시간 내어 공들여 들여다보고 있기엔 바깥의 날씨가 아깝다. 결국 결론은 하나. 작업 시간에 연연하지 말고, 틈틈이 짬을 내어 집중력을 퍼붓기로 한다. 어째 어릴 적 눈높이 수학을 풀던 때와 다르지 않다. 훔쳐볼 정답지가 없다는 것만 빼고. 그러니 나가기 전 잠깐, 낮잠을 자는 대신 또 잠깐,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다시 잠깐. 스타카토로 짜내는 원고다.
오늘은 저녁에 갈 곳이 있다. 그러므로 그 언저리로 동선을 짜 본다. 오전과 점심 무렵은 비교적 한가하기에, 우선 나가서 밥을 먹기로 한다. 달이 찾아낸 곳은 천장이 높은 커다란 벽돌 건물의 브런치 까페다. 들어서니 벽 쪽의 냉장고엔 색색깔의 음료들이 가득하다. 음료들엔 추상적인 이름들이 붙어있어, 맛을 짐작하기 어렵다. 들어간 재료들을 읽고 있노라니, 몹시 건강에 좋으면서 맛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렴, 무섭도록 정직한 유기농일테니.
달은 에그 베네딕트와 까페라떼를 시키고, 나는 무엇 무엇들이 잔뜩 들어간 스무디를 시킨다. 베리류의 단맛에 의지하려는 얄팍한 시도다. 그러나 불려진 치아씨드의 생김새를 보며 올챙이 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는지. 교실 뒤편의 어항은 내게 공감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시각과 후각을 압도하는 슬기로운 생활. 입술을 보라색으로 물들이며, 달이 한 입 권하는 당근은 한사코 마다한다. 이제 난 먹고 싶지 않은 야채는 거절할 수 있는 어른이니까. 눈높이 수학을 풀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기도 하고. 어항의 물을 갈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다.
식탁 위 팬시에는 동하지 않던 마음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새 슬그머니 바뀐다. 아직 개시하지 않은 2층은 조용했다. 방처럼 구획이 나뉜 공간에는 너른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있다. 테라스 자리는 싱그러운 식물들로 가득하고. 은은한 볕이 그위로 내려앉는다. 이런 곳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 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선택적 사교성이 꿈틀댄다. 예전처럼 한 상 거하게 차려낼 용기는 나지 않지만, 시켜먹으면 또 어떠랴. 음악을 틀어두고, 술을 따르면서 지난날의 부끄러운 일화들을 들춰내는 밤. 열 명이 머리를 맞대면, 흐릿하던 역사들이 화려하게 재구성되었다. 삼인성호보다 십인성호가 훨씬 손쉬운 것은 자명한 이치. 싸이월드가 망해도, 아니 망했기 때문에 각색은 더욱 요란해진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급조한 건배를 하고, 연말 이벤트로 넘어가면 또 사단이 났다. 번호를 적은 제비를 뽑아, 각자 준비해 온 선물을 건네는 시간. 포장을 풀고 받은 선물의 쓸모없음에 화를 내던 친구 덕에 모두가 웃는다. 마치 신년운세에서 흉괘를 뽑은 사람처럼 진지한 화였다. 선물을 준비해온 친구는 그 선물의 귀함을 열심히 설파하지만 설득은 어려웠다. 아직도 기억한다. 무려 모로코에서 사왔다는 포푸리와, 향기와 용도 모두 애매하던 에센스.
이국의 까페에서 친구들을 떠올리는 기특한 나. MACBA 앞 광장에 앉아 뜨거운 볕을 정통으로 맞는다. 실시간으로 익어가는 얼굴. 요란하게 보드를 타는 사람을 보며, 우리는 우리 옆집에 살던 작은 친구를 생각한다. 쟤보다 훨씬 잘 탔는데 지금은 더 잘 타겠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고, 그들의 마음도 그럴 것이란 좋은 착각에 빠진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