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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몬주익에 가는 날이다. 정확히 말하면 몬주익 요새. 처음 이곳을 찾았던 때는 이천십년. 어떻게 이런 곳을 마라톤 마지막 코스로 삼을 수 있지, 스페인 놈들 대단해. 이런 생각들을 했다. 활짝 펼쳐진 바다를 보고선 아! 대서양이야! 라고 생각했다. 쯧쯧, 그건 지중해였는데.
이천십일년엔 달과 함께였다. 해가 너울너울 저물던 때, 이곳이 마음에 들었던 우리는 잔디밭에 퍼질러 앉았다. 눈 아래로는 바르셀로나 전경이 펼쳐졌다. 나란한 두 발. 나는 그 모습을 필름으로 남겼다. 그 사진은 다음 해, 우리의 청첩장 앞면이 되었다.
그리고 세번째 찾은 몬주익이다. 그냥 오를까, 아니면 케이블카를 탈까. 나는 당연히 케이블카를 주장했다. 우리는 편도티켓을 산다. 내려올 때는 또 가야할 다른 곳이 있어서다. 매표소 앞에 줄을 서는데, 우리 앞에 한 가족이 있다. 어른 넷, 그리고 꼬마 둘. 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꼬마들을 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다시금 몰래 살펴보니 그들 여섯은 모두 특별한 옷을 갖춰입었다. 그것은 평범해 보이는 반팔 티셔츠, 그러나 모두의 가슴엔 퀸의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퀸 패밀리인 셈이다. 우리는 몰래 속닥거렸다. 엄청난 팬들인가봐! 라고.
요새로 들어서는 곳에 또다른 매표소가 있다. 원래 돈을 내고 들어오는 곳이었나? 기억이 흐릿하다. 그냥 들어왔던 것 같은데 하며 미심쩍은 표정으로 줄을 선다.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려니, 직원이 말한다. 지금은 무료 입장 시간이야. 건네준 티켓엔 0유로란 글자가 반짝인다. 일요일 오후라 그런가 보다. 이럴 때 기분 참 좋다. 우리는 괜히 어깨를 들썩이며 요새의 바깥으로 나선다.
다시 만나는 풍경. 그 사이 달라졌을 많은 것들을 우리는 알아채지 못한다. 햇살과 바람은 여전했으므로. 그 옛날 함께 사진을 찍었던 장소를 눈으로 찾는다. 이쯤이다 싶은 곳에 걸터앉아 나란히 발을 모은다. 괜시리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니, 함께 떠난 긴 여행에서 홱 토라져 싸우던 기억은 이미 가물가물하다. 정말이지 대단한 에너지로 불같이 싸우곤 했는데. 그러나 나는 여기서 깨닫고 만다. 싸우곤 했는데, 는 싸우곤 하는데, 로 바꿔야 한다. 그 옛날 시시콜콜 싸우던 기억이 희미해진 것은, 늘 새로운 아젠다로 갈음되어 그런 것. 나는 달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자는 모습 안쓰러우면 게임 끝난 거란 말이 떠오른다. 뒷모습 역시 비슷하다. 나의 마음은 남몰래 촉촉해진다. 이렇게 함부로 나약해져선 안 될 일인데.
해가 사위어간다. 아마도 오늘 저녁 이곳에서 작은 영화제가 열리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영화가 상영되는 곳으로 향한다. 예전에도 몬주익에서 내려가는 길에 야외 상영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우리는 손을 맞잡고 하산하기 시작한다. 구글맵을 켜 방향을 찾는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대신, 산등성이를 타고 꼬불꼬불 걸어야 한다. 완만한 경사의 아름다운 산책로가 펼쳐진다. 걸어가는 사이, 우리 머리 위로 케이블카가 지난다. 커다란 야자수들 사이로 도시의 모습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한다. 맑디 맑은 하늘 아래, 아름다운 도시. 마음이 쿵쿵 뛴다. 쿵쿵 뛰는 곳으로 향해 더욱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