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랑 가나요
혼자 여행할 때는 거슬리는 게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거리를 두면 그만이다. 내키지 않는 게 있으면 안 하면 된다. 일정부터 비용까지 모든 것은 내가 정하면 되니 갈등이라는 게 생길 여지가 없었다. 오늘은 온종일 미술관에서 보낸다! 내일은 바다에서 하루를 보낼래! 이렇듯 혼자 여행할 때 너무 좋았으니 함께 가면 더 좋을 거야. 사랑에 빠진 나는 스스로 만든 전제를 믿어버렸다. 그래서 달에게 제안한다. 우리 같이 가자! 긴 여행을 떠나자! 쉽게 제안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합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쏭달쏭했다. 여행에서 만나는 많은 순간들에서 나는 이제껏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모습들을 만난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에서의 데이트와 다르게 여기에선 제법 삐걱거리고 있다. 생각이 다르고 과정이 다르며 결정 또한 다르게 내린다. 서로 다른 사람이니만큼 그게 당연한 건데 11년 전의 우리는 그걸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니 다툰다. 너는 왜 그러냐면서 다투고선 언제까지 그렇게 꽁하게 있을 거냐면서 다툰다. 급기야 한낮의 볕이 쨍쨍한 거리에서 하루 간의 작별을 고하고서 길을 떠난다. 오늘은 좀 따로 다니자. 이따 숙소에서 만나, 하고. 그러다 다시 만나면 어딘가 머쓱해진다. 다툼의 원인은 이미 흐려진 지 오래.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지 말자. 다툼도 쉽고 화해도 쉬워서 우리는 그걸 계속 반복한다.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서도 길가의 까페 테이블에서도. 상대의 잘못을 비난하느라 심취한 나머지 홀랑 가방을 도둑 맞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걸 수습하러 같이 뛰어다닐 이도 곁에 있는 사람 뿐이다. 경찰서를 찾아 또 한참을 기다려 손짓 발짓을 하며 겨우 도난신고서를 받아나올 땐 이미 무엇 때문에 다투었는지는 다 잊은 뒤였다.
그때는 화나는 마음 눌러가며 휙 돌아서 저녁에 만나, 하고 걸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엔 그게 좀 어려울 듯하다. 아직 말은 서투른 허나 눈치는 빤한 꼬마가 있기 때문이다. 20년 5월에 태어난 꼬마는 이제껏 다른 나라에 가 본 적이 없다. 단 한 번 바다를 건너 제주에 다녀온 게 다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줄곧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공공의 장소에서 맨 얼굴을 만나본 적이 없는 아마도 원래 세상이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그래서 많이 가여운 꼬마다. 그러나 우리끼리라면 매일이 맨 얼굴이니, 꼬마는 우리의 삐쭉하고도 빼쭉해지는 심경의 변화를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 말에 뼈가 담긴 어조를 느끼면 모른 척 외면하곤 한다. 저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장난감 자동차 굴리기나 블럭 맞추기 등을 한다. 그러다 다툼의 임계점을 지날 때면 화가 나 있다. 예민해지고 민감해진다. 감정적 누수가 잦은 나는 슬픔이나 분노의 크기와 상관 없이 감정이 고양될 때면 그게 좋은 감정이나 싫은 감정이나 구분 없이 눈물이 잘 난다. 나의 눈물을 보고선 꼬마는 달려와 안긴다. 그러고선 달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우리 엄마 울게 만들었다 이거지. 그건 마음이 쿵 내려앉도록 귀엽지만 그렇다고 그 귀여움 보고자 계속 싸워선 절대 안 될 일이다. 결국 이러거나 저러거나 셋이서 영차영차 힘을 합해야 할 일이다. 일단 체력이 좋으며 체력의 회복 탄력성 역시 월등하게 우수한 꼬마. 하루하루 커가며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관심이 지대하다. 분주하게 에너지를 다 써도 낮잠 한 번 쿨쿨 자고 일어나면 백퍼센트로 회복되어 있다. 바라보고 있으면 감탄을 넘어 찬탄에 이른다. 그 페이스에 맞추려면 나는 열 번의 낮잠도 모자랄 터. 지금은 그 놀라운 에너지를 어린이집에서 많이 쓰고 돌아오지만 셋이 떠날 그곳에선 그도 바라기 어렵다. 결국 내가 우리가 체력을 키워야 한다. 이건 느슨한 바람 아니고 반드시 해내야 하는 거다. 형광펜으로 밑줄 진하게 쳐 두어야 할 대목이다.
더불어 먹고 마시며 자는 스케줄도 좀 세심히 세워야 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한다. 어디 갈래? 뭐하고 싶어? 저녁은 뭐 먹을까? 그날에 하고 싶은 일들을 크게 몇 개 생각해 놓고 적절히 조합해 여행을 꾸렸다면 이제 조금 더 배려를 곁들여야 한다. 이건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 사이 괴리가 클 것 같다. 가장 좋은 건 자꾸 해 봐서 경험치를 쌓아놓는 것인데 지난 2년 간의 세상에선 도무지 어려운 일이었다. 억하심정 가지지 않고 상쾌하게 살아가기 어려운 한국에선 더더욱 그렇다. 엄마와 꼬마. 언제 어디서나 제일 처맞기 쉬운 존재의 조합이다. 엄마 자리에 아빠만 들어가도 양상은 많이 달라지는데 같은 뭔가를 해도 아빠는 대견하고 멋지고 자상한 캐릭터가 되는 반면, 나를 향하는 시선은 어딘가 박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엄마니 엄마의 포지션에서 꼬마와 함께 해야 한다. 그러니 어딜 간다고 하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에 익숙하다. 부득이하게 도움을 구하고 청하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고작 몇 걸음 앞서 들어간 사람이 힘껏 손 놓는 바람에 면전에 쾅, 출입문이 닫히는 것은 이제 서글프지도 않다. 꼬마와 짐, 무거운 유아차 등의 조합에 호의로 베푸는 손은 별로 만나지 못했다. 어디 잘 하나 못 하나 보자, 이런 경계어린 시선은 많이 느껴봤지만. 언제나 허둥지둥하며 반사적인 인사-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와 고갯짓을 하고 다니는 나. 멀리서 보면 고장난 태엽인형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사실 공공장소, 공공영역에서 별다른 방어도구 없이 꼬마와 함께 한다는 건 적잖이 두려운 일이다. 그것도 다른 나라라면. 물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성인 남성이 기준인 사회에서 나나 꼬마는 조금 혹은 한참 미달이니까. 결국 이로써 각 사회의 문턱 높이를 체감하게 되지 않을까. 자국민이란 어드밴티지는 내려놓고 생김새도 말도 다른 외국인이 된다. '근데 스페인은 아이에 대해 정말 관대한 사회라 하더라고요. 그러니 괜찮을 거예요.' 걱정하는 내게 다정히 들려주신 스페인 책방 사장님의 한 마디, 이 한 마디에 오직 의지해 볼 뿐이다.
더불어 여행 메이트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셋이 떠나 셋이 돌아오는데 일정 중반에 선수 교체가 한 번 있을 예정이다. 나와 꼬마는 여전히 세트로 다닐 테고 조금 먼저 달이 떠나는 대신, 새로운 이가 바르셀로나로 날아온다. 바르셀로나는 당연히 처음, 스페인도 처음. 혼자 장거리 비행기 타는 것도 처음, 그런데 중간에 경유도 한 번 해야 하는 일정. 스페인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자신 없는, 허나 즐겁고 설레기만 해서 흔쾌히 제안을 수락한 엄마, 바로 우리 엄마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