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같은 여자
에세이 <다정한 얼룩>의 교정을 마치고 제목을 정할 무렵이었다. 그때만 해도 표제도 부제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편집자님과 나는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교정지 뒷면에다 생각나는 대로 여러 문장들을 끄적거렸다. 주제가 '내 인생의 남자들' 이었기에 이를 드러낼 이름들을 고심하고 있었다. 부제의 후보들 중 이런 제목이 있었다. '나를 스친 남자들과 나를 키운 여자들에 대하여'. 그건 기억에 꽤 남는 문장이었다. 이 책은 내 인생의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실은 내게 많은 영향을 주고 나를 살린 여자들에 대한 헌사가 숨어있으니. 나를 키운, 나를 키운, 나를 키운. 나는 여러 번 이 대목에서 멈칫거렸다.
책이 무사히 출간되고, 코로나가 횡행하던 시절 우리는 작고 은밀한 북토크를 열었다. 조촐하게 모여 앉아 피자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나는 준비한 피피티로 마치 발표나 연설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건 작가로서의 자의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과연 나는 나를 작가로 부를 수 있는가. 경외하고 사모하는 그 거룩한 호칭을 내 이름 뒤에 살포시 얹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시작해, 결국 우리는 머나먼 미래의 어떤 순간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이 세계 안과 밖을 거닐고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로 마쳤다. 모여 앉은 이들은 모두 책을 사랑한 나머지 그에 깊숙이 얽혀있던 이들이었기에 얼굴 가득 밝은 웃음이 번졌다. 그제야 울렁임이 가라앉던 나는 '저 사실, 오늘 TED 느낌 살려봤습니다.'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반은 농담이었으나 차콜색 폴라티에 회색 뉴발란스 운동화만큼은 진심이었다. 그 자리에서 배윤민정 작가님은 '모녀서사' 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다. 모녀서사. 듣는 순간 확 와닿는 느낌이 있었다. 딸이라면 누구나 설명 없이 알 수 있는 개념이었다.
343쪽의 분량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빠에 관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그 이야기의 언저리에서 조연처럼 등장했다.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삶을 꾸려갔는지, 그게 나에게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었는지.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면 343쪽은 우스울 만큼의 서사시가 흐를 것이다. 엄마라는 단어는 아무 때, 어디에서나 나에게 강렬한 감정을 선사했다. 나와 달이 극심한 갈등을 빚는 동안, 마지못해 상담을 간 적이 있다. 같이 상담받는 것이었다면 거부했을 것이다. 나 혼자 하는 것이라기에 요청에 응했다. 상담사를 만난 첫날, 나는 크리넥스 반 통 정도의 울음을 터뜨렸다. 배우자와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나는 줄곧 엄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런 이런 사람이에요. 나에게 이런 이런 행동과 말을 했어요. 그래서 나는 이런 감정을 느꼈죠.' 나는 두서없이 그러나 미주알고주알 오늘 당장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마치 결심하고 작정한 사람처럼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 서술의 곳곳엔 눈물이 배어있었다. 마지막 말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카르멘? 카르멘 같은 사람이에요.' 문장을 마치며 눈물을 마저 닦았다. 상담사는 내 말을 이렇게 받았다. '묘사하는 게 지금 본인 모습 그대로네요.' 그건 몇 년이나 흐른 지금도 잊히지 않는 답이었다. 나를 사무치고 서럽게 만들던 엄마의 모습이 바로 나라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엄마 나이 스물셋에 나를 낳았으니, 그것도 첫째였으니 모든 것이 시행착오였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울컥 솟아오르는 것은 달라서 원망이나 분노는 예상 못한 곳에서 찾아오곤 했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이 문장은 지난 장면의 아무 때고 붙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대들며 말해보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 말을 들은 카르멘 같은 여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미안해, 엄마가 잘 몰라서 그랬어. 엄마가 많이 미안해. 우리 딸 마음 아프게 한 것 평생 갚으며 살게.' 그러면 카르멘 같은 여자와 카르멘 같은 여자가 낳은 딸은 함께 끌어안으며 펑펑 울었다. 너무나도 극적인 장면이었다. 인생의 어느 한 번엔 이런 허심탄회한 순간을 함께 맞이해도 좋으리라. 우리에겐 그게 좀 잦았다는 게 문제였을 뿐.
올해로 환갑을 맞는 엄마에게 여행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혹시 엄마랑 아빠도 오실래요? 와서 같이 놀면 좋을 것 같은데.' 엄마는 대뜸 말한다. '좋아, 너무 좋지. 엄마 꼭 가고 싶다. 그런데 아빠랑은 안 갈란다. 엄마 혼자 갈래.' 5년 전, 아빠의 환갑 때 엄마가 가고 싶어하던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 간 것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나 보다. 정작 환갑을 맞았던 아빠보다 들뜨고 즐거워한 것은 엄마였는데. 나는 뭐,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엄마에게 스페인은 어떤 곳일까. 딸이 그토록 좋아하는, 그래서 책에도 여러 번 쓴 곳이라는 것은 안다. 딸이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난 곳이란 것도 안다. 그때 당연한 수순으로 살짝 걱정을 곁들여 누구랑 가냐고 물었을 때, 친구 셋이랑 함께 가는 거라고 뻔뻔하게 답했으나 사실 홀홀단신 혼자 갔던 곳이란 것도 뒤늦게 알았다. '간도 크다, 어떻게 혼자 가노. 안 무서웠나.' 라고 물었으나 이제 엄마가 그곳까지 혼자 가야 한다. '당연히 여행이니까 좋기도 좋을 껀데, 사실 나는 우리 손주 보러 간다. 같이 지내면 얼마나 좋겠노.'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엔 벌써 기쁨이 어려있다.
우리가 비슷한 성격, 그래서 닮은 부분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왜 이 여행에 자청해 엄마를 끌어들인 것일까. 이미 싸울 것은 자명하고 다만 그게 각자 다른 귀국만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언제 우리가 이런 조합으로 다시 여행할 수 있을까를 상상해 본다. 하루라도 젊은 날, 하루라도 건강한 날에 조금 고생스럽고 힘들더라도 북적이며 투닥거리며 지낼 날을 꿈꾼다. 무더운 여름날의 스페인, 카르멘을 닮은 여자와 그를 닮은 딸. 기대가 일렁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